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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바둑의 코드, ‘전투’를 생각한다.
대마 킬러 ‘가토 마사오(加藤正夫)’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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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처음 배울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익혔던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대다수의 애기가들은 바둑돌을 잡는 방법과 사는 방법을 제일 처음 알았을 것이다. 나 역시 바둑을 처음 배웠을 때 돌 잡는 방법과 살아가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았고, 바둑을 두면 온통 돌 잡는 것에만 관심을 쏟았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바둑돌을 잡는 것과 살리는 것.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이기도 하는 이 두 가지가 존재하기에 바둑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생각해보자. 만일 바둑에 바둑돌의 사활이 존재하지 않고 단지 누가 더 많이 집을 확보하는 가에 따라 승패를 겨루는 게임이라면, 이보다 더 재미없고 단순한 게임이 어디 있을까? 이런 관점에서 나는 바둑을 돌의 삶과 죽음의 향연에서 오는 승부 미학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최근 나는 프로 기사들의 기보를 보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감지했다. 요즘 두어진 대국의 상당수가 격렬한 전투 바둑으로 이어져 돌의 생사 여부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는 대국이 허다하다는 것인데, 예전보다 확실히 계가로 끝나는 것보단 불계로 승패가 갈리는 바둑이 많아졌다. 이런 것은 덤이 5집반에서 6집반으로 늘어난 영향이 크게 작용해 흑을 잡은 대국자가 덤을 극복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편으로 치부할 수 있겠다. 응씨배와 같이 7집반의 덤으로 승부를 가리는 대국을 유심히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큰 덤을 부담하려면 선착의 효를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전투란 매개체를 동원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이유이지 않을까? 흥미로운 사실은 세계랭킹 1위 이창호 9단의 변모하는 모습이다. 기다림과 참음의 대명사로 통하던 이창호 9단이 최근 전투를 마다하지 않는 싸움꾼(?)으로 변모한 걸 보면(물론 최철한 9단이나 이세돌 9단의 영향도 없질 않지만) 덤의 변천과 관련돼 현대 바둑의 공통적인 코드가 ‘전투’라고 말하는 듯싶다.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지나갈 때, 불연 듯 가토 마사오(加藤正夫) 9단이 떠올랐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살아생전 ‘대마킬러’라는 무시무시한 별칭을 가지고 있었던 싸움꾼의 대명사. 그가 남겨 놓은 기보 하나를 소개하겠다. 나는 이 바둑을 처음 보았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까지 프로 바둑에서 이렇게 많은 돌을 잡았던 바둑은 이제껏 구경하지 못했다. 장면 (가토 마사오 의 공격) 이 바둑은 1977년 제32기 본인방전 도전 7번기 제1국으로 가토 마사오 8단(당시, 흑)이 본인방 다케미야 마사키(武官正樹) 9단과 둔 바둑이다. 중반전이 한창인 장면으로 변화의 여지가 상당히 많은 바둑. 중앙 백대마의 사활이 전 국면의 쟁점으로 떠오르는 장면에서 흑은 1이하 7까지 강렬한 공격을 퍼붓는다. 실전진행1 (공격의 대가) 흑10에 백11ㆍ13으로 사는 것이 괴롭다. 흑18로 눈모양을 위협하며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흑30까지 공격하면서 실리를 챙기며 백을 괴롭히고 있다. 백은 공격당하면서 흑이 줄기차게 실리를 벌어들이자 더 이상 실리의 균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인데, 실전진행2 (킬러, 칼을 뽑다) 백1은 승부수. 설마 잡으러 오겠냐는 뜻이다. 흑이 한 번만 고삐를 늦춰버리면 형세는 알 수 없는 국면으로 다시 뒤바뀐다. 하지만 ‘대마킬러’의 본능은 이런 먹이감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법. 흑2ㆍ4는 칼을 뽑은 수. 이제 못 잡으면 흑도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된다. 흑14에 백15는 절대수, 좌상귀를 잡으러 가는 수가 있다. 백이 완전히 사지에 몰려버린 모습. 실전진행3 (백대마 전멸하다) 백1ㆍ3으로 최후의 몸부림을 쳐보지만 흑의 칼날에는 빈틈이 없다. 결국 흑22까지 어마어마한 백대마가 모조리 전멸해 버린다. 이 바둑을 처음 봤을 때 나의 기력은 상당히 미천했다. 바둑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단지 승패를 구분할 줄 아는 그런 미약한 수준이었지만, 이 바둑에서 가토 마사오 9단이 보여준 공격은 지금도 생생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만 한다. 마치 맹렬하게 질주하는 폭주기관차의 저돌적인 돌진과 같았을까...  옆의 사진은 가토 마사오 9단의 사진이다.(사진=일본기원 제공) 젊었던 시절의 사진인데 눈매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카로움이 정말 무시무시한 살인청부업자를 연상케 한다. 그런 그의 눈매가 중년에 접어들면서 인자한 우리네 아버지상으로 바뀌어 간 것을 보면 참 재미있는 것 같다. 중년 이후에 그의 바둑 기풍도 저돌적인 기풍에서 유연한 기풍으로 조금씩 바뀌어간 것을 알면 더 흥미로울 것이다. 가토 마사오 9단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반년이 훨씬 넘었다. 작년 12월 30일 갑작스런 그의 떠남은 많은 바둑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을 것이다. 떠나기 1년 전만해도 장쉬 9단과 본인방 타이틀을 놓고 최정상의 자리에서 자웅을 겨루었던 그였기에 아쉬움은 더해가기만 한다. 하지만 살아생전 남겨놓았던 기보는 그가 숨쉬었던 승부의 치열함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그의 기보는 아직까지 ‘대마킬러’ 가토 마사오의 강렬한 모습을 선하게 비춰주고 있기에 우리들은 조금이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바둑돌의 삶과 죽음.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도 삶과 죽음의 과정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기에 많은 현자들이 한판의 바둑을 사람의 인생과정으로 비유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가토 마사오 9단의 바둑을 보니 그의 다른 바둑도 감상하고 싶어졌다. 오늘은 그의 바둑에 흠뻑 취해보고 싶다. 기보내용이 보이지않는 분은 이곳 을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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