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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잽으로, 한번은 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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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세계대회가 개막 팡파르를 울렸다. 명칭은 ‘중환배’, 주최국은 대만이다. 우승상금 7천만원은 메이저 대회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액수. 하지만 단순히 상금규모로 잣대를 매기는 건 곤란하다. 한중일에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던, 그래서 변방으로 취급받던 대만이 주최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다만 외교적인 문제로 한바탕 잔치를 벌여야 할 원년대회에 중국이 불참한 것은 바둑의 스포츠화를 지향하는 이즘,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제1회 중환배 16강전 ○이창호 9단 ●린하이펑 9단 - 장소 : 대만 징화호텔 - 날짜 : 2004. 09. 16 - 결과 : 274수끝, 백불계승  기보가 안보이시는 분들은 여기 클릭※ 장면1 (잽으로 기선제압) 두 기사는 1992년 동양증권배 우승컵을 다툰 일이 가장 인상에 남는 맞대결. 17세 이창호가 52세의 거목 린하이펑(林海峰)을 꺾고 최연소 세계챔프에 올랐었다. 그로부터 10여년. 소년은 천하를 호령하고 있고, 거목은 수액이 다한 듯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중반 초입까지는 포석교본을 옮겨놓은 듯한 흐름. 변화도 없고 진행도 거북이 걸음. 판이 출렁이기 시작한 때는 우상공방에서부터. 백이 타개하는 과정에서 흑4가 핵심을 벗어났다. 5로 숨길을 터놓은 다음 백7이 날카로운 잽이 됐다. 참고도1 (공격 속행) 〈장면1〉 흑6에 이어 백이 가로 보강할 걸로 여겼다면, 그래서 그 리듬으로 우변을 에워쌀 속셈이었다면 안일한 수읽기라는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어째서 흑1로 공격을 속행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다그쳤더라면 백도 실전처럼 우상 흑모양으로 손을 돌릴 기회를 잡기가 만만찮았을 것이다. 실전진행1 (뻥 뚫린 흑진) 의표를 찔린 흑, 마땅한 응수가 없다. 린하이펑이 그린 그림은 흑1에 이은 3, 5. 그러나 12로 가볍게 건너지 않은 흑7이 재차 엷은 행마여서 금쪽 같은 흑진이 돌파당하고 말았다. 백8이 따끔한 일침. 팽팽하던 실리의 균형에 균열이 생겼다. 참고도2 (강습은 불가) 좌우 백에 대한 얽기 공격을 편다면 흑1로 힘을 모은 후 3으로 씌워가는 수. 성립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아니, 승부끝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그물망이 완전치 못하다. 백18로 헤쳐나가면 흑A로 끊을 겨를이 없다. 백B의 축이 성립하므로. 장면2 (훅으로 마무리) 본격적으로 몸싸움을 벌인 곳은 우변. 린하이펑은 우상 실점을 만회하기 위해 번민을 거듭했다. 숙고 끝에 찾아낸 반격이 흑1. 과거 전성기를 연상케 하는 매서운 수로 비쳤다. 이에 대해 백3은 흑2로 끊겨 걸려드는 코스. 대응수단이 난감하지 않느냐는 기류에 휩싸일 즈음 이창호의 백8이 옆구리를 강타한 훅. 잔뜩 벼르며 튀어나갈 자세를 취하던 ‘이중허리’는 이 수에 풀썩 주저앉았다. 참고도3 (가서는 안될 길) 우하만의 문제라면 1, 3으로 간단한 삶. 하지만 백은 6쪽의 약점이 진작부터 신경 쓰였던 자리. 백11의 끊음에는 흑12로 축으로 잡고, 우변 흑도 16까지 거뜬히 수습된다. 백은 무엇을 두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모습. 패국으로 가는 길임에 다름없다. 참고도4 (수상전은 백승) 상하 백의 연결고리를 가로막는 묘책이 없다. 단순히 흑7은 백10으로 차단당해서 수상전에서 진다. 그렇다고 1, 3을 미리 결정지어 놓아도 사정이 달라지지 않으니 린하이펑으로서는 답답할 노릇. 그만큼 △는 위력적이었다. 예상치 못한 수로 의표를 찔리면 상처도 클 수밖에 없다. △를 꿰뚫고 있었더라면 애당초 ▲로 뚫지 않았을 텐데…. 실전진행2 (사실상 승부끝) 흑7, 9로 연결을 꾀한 수는 울며 겨자 먹기. 그 사이 백의 등이 두터워져 우변 흑일단은 그 자리서 말라죽을 처지로 전락했다. 사실상 여기서 종료 벨이 울렸다. ‘비오듯 낙엽은 떨어져 세월의 덧없음을 재촉하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중허리’는 그렇게 사스러져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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