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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번 찍어 넘은 ‘흑번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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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흑번이 먼저 무너질 것인가, 누가 먼저 상대의 흑번을 무너뜨릴 것인가. 최근 벌어졌던 9차례의 타이틀전에서 한결같이 흑을 쥔 쪽이 이기고 있다. 초반부터 더욱 적극적이고 과감한 작전으로 ‘선착의 효’를 극대화시키고 있는 요즘이다. ‘흑번 파괴’의 해법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제8회 LG배 결승5번기 제3국 ○이창호 9단 ●목진석 7단 - 장소 : 서울 그랜드 인터콘티넨탈호텔 - 날짜 : 2004. 03. 30 - 결과 : 222수끝, 백불계승  장면1 (오버페이스) 초반 23수까지는 결승1국의 ‘리뷰’. 24수째부터 이창호가 먼저 방향을 틀었다. 당연히 연구가 있었을 터. 흑▲로 산 데까지는 호각. 백이 두텁지만 좌상에 패의 부담을 안고 있다. 이창호는 두터움을 배경삼아 일단 우상 흑을 공격하며 매듭을 풀어나갔는데 흑4가 오버페이스. 목진석은 1국에서 이런 수를 두어 재미를 봤으나 오늘은 주변 여건이 많이 다르다. 이창호의 역공이 반상을 수놓는다. 실전진행1 (양쪽이 바빠진 흑) 1국과 사정이 다른 점은 상변쪽에 강력한 백의 두터움이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 백1로 상하를 째고나가자 흑은 양쪽이 바빠졌다. 흑2부터는 A로 후수 한눈을 보장받기 위한 공작. 그렇더라도 12의 보강이 불가피하다. 17로 가르는 백의 손놀림에 가속이 붙었다. 참고도1 (창창한 승부) <장면1> 흑4로는 1로 머리를 눌러서 자중하는 편이 무난했다. 백4까지 약간의 실리를 허용하지만 흑도 우하에 집을 챙기고 있다. 그리고 이쪽을 두텁게 해두면 위쪽 흑일단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 이점도 결코 적지 않다. 앞길이 먼 승부로 이어졌을 것이다. 참고도2 (두터운 처리) 아예 흑5부터 이 부분을 결정지을 수도 있을 법하다. 이렇게 상하의 흑이 손을 맞잡으면 막강한 세력의 위용을 뽐낸다. 또 흑A부터의 팻감이 많이 생겨 노림으로 남겨 두었던 좌상 백을 패로 공격하는 수단이 한층 가시화된다. 장면2 (성급한 패싸움) 요즘 바둑은 한쪽 귀를 비워둔 채 두어나가는 경우가 다반사. 오죽하면 ‘나머지 빈 귀를 차지하는 쪽이 진다’는 ‘괴담’이 나돌까. 1에 둠으로써 우하는 백이 발언권을 장악한 모습. 낙심한 목진석은 흑2부터의 패싸움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는데 이것 또한 성급했다는 지적. 패싸움이 벌어지면 가장 중요시되는 게 팻감의 수효. 안타깝게도 흑은 팻감이 모자란다. 실전진행2 (패를 걸고 패를 지다) 백은 좌상 패를 지더라도 다른 곳을 적당히 연타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하 흑을 잡아들이는 것도 한 방편. 그러나 이창호가 30수 넘도록 좌상 패를 고집하는 이유는 그곳의 가치가 더 크기도 하거니와 의외로 자체팻감이 많기 때문. 결국 팻감이 모자라는 흑은 4, 6 두 곳을 차지하며 절충하는 정도인데 그 사이 저울추가 백쪽으로 확연히 기울었다. 참고도3 (우하가 급선무) 팻감이 부족할뿐더러 설령 팻감이 많더라도 흑은 우하를 먼저 도모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면 백도 우선 좌하귀를 차지할 텐데 좌상에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안고 있어 내내 껄끄러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을 것이다. 역시 이창호가 먼저 ‘흑번의 고개’를 넘었다. 당당히 실력으로. ‘철옹성 흑번’을 돌파한 이창호는 대회 네번째 우승에 성큼 다가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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