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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오른 독사에 마비된 돌부처의 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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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까지 왔다. 최철한이, 세계최강 이창호를 상대로 스무살 최철한이 이렇게까지 힘을 낼 줄은 뜻밖이다. 한국바둑이 훨씬 세졌다. 허리 라인이 무척 두터워졌다. 이제 이창호만 있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이어온 ‘흑번필승’의 전개. 최종국은 돌을 다시 가린 결과 최철한의 흑이다. 찬스다! 제47기 국수전 도전5번기 제5국 ○ 이창호 9단 ● 최철한 6단 - 장소 : 한국기원 - 날짜 : 2004. 3. 2 - 결과 : 199수끝, 흑불계승  장면1 (열쇠는 초반) 권위 있는 타이틀 국수의 임자가 결정되는 중요한 한판. 몸도 마음도 경직될 법한데 두 기사는 일찍부터 치열한 몸싸움에 돌입했다. 최철한으로서는 이창호의 초반을 잡지 못하면 승부가 버거워질 거라는 생각도 품고 있었을 것이다. 싸움의 발단은 우하귀의 정석. 백1 때 흑2가 평이하지 않은 대응으로, 이 수가 불씨가 돼 불꽃이 활활 타오른다. 참고도1 (흔한 코스) <장면1>의 흑11로 1에 젖히면 가장 흔한 코스. 하지만 최철한은 8까지 백이 두터워지고, 그 두터움을 10의 협공에 이용하게 되므로 불만스럽다고 여겼을까. 본도는 백이 선제공격하는 입장. 게다가 백10은 우상의 포진과도 관계있는 수다. 실전진행1 (불꽃이 불기둥으로) 최철한은 애당초 흑3 때 백4의 젖힘을 의식적으로 유도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것이면 싸움이 되고, 싸움이라면 자신 있으니까. 흑5로 싹둑 끊자 불꽃이 불기둥으로 변했다. 허리가 끊기면 힘을 잃는 법. 백16부터 불문곡직하고 7선을 밀어준 것은 힘을 모아 하변 흑의 엷음을 추궁하기 위한 뜻이었는데…. 장면2 (착각했을까) 하변 흑을 괴롭히는 수단으로 가의 붙임 등도 고려됐으나 이창호는 축적한 힘을 백1에다 쏟아부었다. 여기서 대가를 받아내지 못하면 앞서 우변에 내준 흑모양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일련의 사고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지. 흑2의 건너붙임부터 8로 뻗으니 백 석점도 운신하기 거북해졌다. 참고도2 (지리멸렬) 백1로 막아서 수상전을 이길 수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이 싸움은 흑2의 젖힘이 급소여서 패가 난다. 그것도 흑이 먼저 따내는 패. 천지대패가 발생하면 먼저 따내는 쪽이 절대 유리하다. 그 도중에 흑14부터 18로 백돌이 둘둘 말리는 것도 견디기 어렵다. 생각할 수 없는 그림. 참고도3 (패는 백이 안 된다) 백1로 1선에 뛰는 수가 좋아 보이나 흑2로 찌른 다음 4로 막는 것이 그것을 능가하는 호수(흑2로 단순히 4는 백9로 붙여 수상전은 백이 이긴다). 이 진행의 결말도 패. 역시 흑이 먼저 따내는 패인 데다 흑에게는 A부터의 자체팻감도 있다. 패가 나서는 백이 당할 수 없다. 참고도4 (대책이 없다) 단독으로 수상전을 벌일 수 없다면 바깥으로 나가려고 해보자. 백1의 달림이 그 중의 하나인데 애석하게도 흑2로 건너붙임을 당하면 당장 출구가 막힌다. 흑10까지 백이 안 되는 모습. 또 백1로 4에 붙이는 변화도 흑A를 얻어맞아 탈출도, 수상전도 불가하다. 실전진행2 (방향 선회) 이창호는 총력을 기울여서 수읽기에 골몰했으나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는지 백1로 손을 돌렸다. 싸움의 주무대에서 벗어난 방향 선회. 최철한은 A로 응해주어도 별일 없을 듯한데 흑2, 4를 기분좋게 활용한 다음 흑6으로 확실히 자물쇠를 걸어잠갔다. 이것으로 승리는 내 것이라는 듯이. 실전진행3 (일방적 페이스) 집중투자한 보상으로 이익 환수에 나섰던 백△들이 속절없이 흑의 수중에 들어가 버렸다. 백의 대실패! 백1부터 ▲를 잡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반면20집 이상의 차이가 벌어졌다. 물꼬를 잘못 텄다고 하더라도 이창호가 이처럼 초반에 맥없이 무너지는 일은 일찍이 보지 못했다. 새로운 스타 탄생이다. 권위 있는 타이틀, 국수. 영예로운 타이틀, 국수. 스무살, 약관(弱冠)의 최철한이 바둑사에 길이 빛날 업적을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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