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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
여류국수 교체의 현장, 그곳엔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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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46분 종국(終局)의 현장 11월 11일 오후 5시 46분. 경주 힐톤호텔 1층 오크룸. 오전 9시 30분부터 8시간 16분간 282수까지 끌어온 기나긴 승부가 끝났다. 바둑판이 정리되고 집 수가 확인됐다. 흑(조혜연 4단)의 1집반승. 입회인 윤기현 9단과 줄곧 검토실을 지켰던 장주주 9단이 대국실로 들어섰다. 뒤이어 취재기자들과 관계자들도 따라들어온다. 여기 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루이나이웨이 9단은 현기증이 난다는 듯 작고 가녀린 손으로 가볍게 이마를 짚는다. 도전기를 치르는 동안 감기몸살에 시달려온 여국수의 뺨은 다소 창백했고 도전자의 뺨은 아이처럼 붉게 상기돼 있었다. 여국수가 호흡을 가다듬을 때까지 도전자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채 기다린다. 이윽고 복기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서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곳을 짚어가며 선문답(禪問答)을 주고 받더니(바둑이 약한 사람들에게, 바둑판 이곳 저곳을 짚어가며 변화의 과정을 주고받는 프로들의 복기장면은 영락없는 선문답이다) 잠시 뒤에는 아예 처음부터 돌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8시간 16분간 사투를 벌인 두 기사의 얼굴에는 나른한 평화가 깃들었다. 곧 여국수의 자리를 내주어야 할 루이 9단의 얼굴에는 '나는 과연, 최선을 다했나'하는 아쉬움이 맴돌았고 그 여국수의 자리를 물려받을 조혜연 4단의 눈빛에는 '조금이라도 더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지가 실려있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창밖은 말끔하게 개어있었고 호텔앞 산기슭부터 하늘 높이 새 여국수의 교체를 알리는 상서로운 빛깔의 무지개가 커다란 반원을 그리며 떠올랐다(우리는 요 몇년 사이에 이토록 선명한 무지개를 본 적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대국실은 알 수 없는 경건한 기류에 휩싸였고 복기는 이례적으로 1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아름다운 저녁, 그들은 모두 승자였다 오후 3시무렵. 부산에 거주중인 조혜연 4단의 외조부 황진정 씨(82세)께서 달려오셨다. 열렬한 바둑애호가라는 노인에게도 어떤 예감이 있었나보다. 대국이 끝나고 복기까지 모두 마친 뒤 조4단의 어머니 황연숙 씨가 '그동안 혜연이를 많이 가르쳐주신 루이 사범님과 관계자 여러분들께 너무너무 감사드린다'며 저녁을 함께 하고 싶다고 제의해 인근 '이조 한정식당'에서 조4단의 가족과 대국자를 포함한 여류국수전 스탭 전원이 저녁자리를 갖게 됐다. 저녁자리가 더욱 기뻤던 것은 한국기원 소속 기사로 활약해온 이후 첫번째 타이틀 상실이라는 충격으로 마음이 불편하지나 않을까 우려했던 장-루이 부부가 흔쾌히 이 자리에 동참했다는 것. 승자를 축하하고 패자를 위로하는 몇 순배의 술이 돌고 자연스럽게 전, 후 여국수에 관한 덕담을 곁들인 이야기꽃이 만개했다. 호텔 로비에서 있었던 한국경제신문(주최사) 김재창 기자와의 인터뷰, 저녁자리에서 두서 없이 오간 조4단과의 대화를 간략하게 정리해본다.  -우승소감은?골이 띵, 해요. 어려웠어요. -언제 이겼다고 생각했나? 종반 끝내기 무렵에요. 1집반이나 반집은 이겼다고 생각했어요. -백의 패착은? 우상귀에서 날일자한 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 이 수로 중앙을 지켰으면 백이 좋았을 거예요. -누가 가장 기뻐하실 것 같나? 그야, 외할아버지죠(이 말은 어머니 황연숙 씨의 대답. 어디, 외활아버지뿐일까. 가족은 물론, 지켜보며 기대했던 모든 사람들이 함께 기뻐했으리라). -그동안 정상에서 루이 9단에게만 네번 도전했다가 네번 모두 패했는데 이번엔 특별한 준비가 있었나? 무슨 전지훈련이라든가... 전지훈련이요?(약간, 황당하다는 듯...무슨 전지훈련씩이나?) 그런 건 없었구요. 루이 사범님의 기보를 많이 놓아보았어요. -자기바둑에서 특별히 자신 있다거나 약한 부분은? 자신있는 부분은 없구요, 포석도 약하고 끝내기도 약해요. 아니, 다 약한 거 같아요. 공부 더 많이 해야겠죠. -세계최강 루이 9단을 넘어섰는데, 이제는 누가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나? 상대하기가 껄그러운 기사는? 다 세고 다 껄끄럽게 느껴져요. 아직은 제가 너무 약해서요.  -입단하기까지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입단은 김원도장에서 했고요(김원 사범님을 먼저 꼽겠다는 뜻?). 수원의 노근수 사범님께 많이 배웠구요, 임동균 사범님, 대구의 박영진 사범님...참, 많은 분들께 배웠어요. 옆자리에 앉아있던 어머니가 '특히, 임동균 사범님은 지도료는 필요없다. 내가 좋아서 가르치는데 무슨 지도료냐면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며 거든다. -바둑을 두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을까? 어렸을 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거든요(그럼, 화가나 만화가? 그러고 보니 조4단은 고스트바둑왕 같은 만화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마니아다. 딱 만화 주인공인 히카루보다는 승부사기질이 뚜렷하고 샤프하게 생긴 도우야 아키라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앞으로의 목표 같은 건 묻지 않았다. 진지하게 무엇을 묻기 어려운 여러 사람과의 저녁자리인 탓도 있었지만 '타이틀 획득, 남자기사들과 대등하게 겨뤄 이기고 싶다'는 말은 예전에 들은 기억이 있는 것 같기도 해서다. 뻔한 대답을 다시 듣기가 싫었다. 이쯤에서 기자를 감동시킨 장면 하나만 소개하고 끝을 맺자. 감기 때문에 저녁자리에서도 얇은 모포를 두르고 앉아있던(갑자기 조치훈 9단이 생각나는군...^^;;) 루이 9단이 조4단의 자리로 찾아가 여류국수 쟁취를 축하해주었다.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기꺼이 저녁자리에 합석한 것만으로도 고마운 입장이었던 조4단의 가족. "우리 혜연이가 항상, 루이 사범님께 가장 많이 배웠다고 해요. 정말,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배우고 있어요. 혜연이 정말 쎄요." 보기에도 흐뭇한 덕담이 오갔다. 몸둘 바를 몰라하는 앳된 얼굴의 새 여국수는 더없이 예뻤고(공개적으로 미인 선언! 조국수, 인심 한번 썼다!^^) 대국의 피로와 감기몸살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루이 9단 얼굴은 그 자리의 어느 누구보다 눈부셨다. 새 여국수를 비롯한 한국 여기사들이 부쩍부쩍 더 자라주기를 바라며, 아픈 패배의 자리에서 너그러운 대가의 면모를 보여준 루이 9단이 좀더 오래도록 정상에 남아 후배 여기사들의 성장을 위한 시금석이 되어주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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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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