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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혁, 승자의 느낌에 관한 小考2
세월은 겸손을 가르치고 승자는 너그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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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전기자가 승부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전체의 흐름에 대한 '느낌'이다. 수에 관한 해설은 프로의 몫. 대부분 아마추어인 관전기자는 프로의 해설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말이 나온 김에 '관전기자 손종수를 위한 변론' 하나. 솔직히 손종수는 바둑이 약한 편이다. 재능도 없는 데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으니 당연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사실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겨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손종수 씨는 5급밖에 안된다'는 근거 없는 음해까지 즐겁지는 않다. 아마5단쯤 되는 관전기자들에게 두점으로 두는 정도가 정확한 손종수의 기력이니까 다음부터는 '손종수 씨는 아마3단밖에 안되면서'라고 비난해주시길…(재미없는 사족은 짧을수록 좋겠지. 여기서 그만!). 실재하지 않는 반 집까지 설정해 집의 많고 적음을 따지는 숫자로써의 승부는 대국당사자나 해설자도 괴롭지만 관전기자도 그다지 즐겁지 않다. 관전기자의 즐거움은 대국의 전체적인 흐름과 느낌, 분위기, 전장(戰場) 여기저기 파편처럼 흘려진 감상과 승부의 기로에서 보여주는 대국자들의 미묘한 표정과 움직임, 그런 것들로부터 온다. 볼 때마다 감동을 주는 이세돌의 수읽기 몰입 스케치 하나. 턱을 고이고 주먹을 말아쥔다. 말아쥔 주먹 엄지와 검지 사이로 도톰하게 오른 살의 고랑을 미미한 동작으로 입술에 문지르기 시작한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그 리듬이 마치 뇌리를 스치는 변화도의 흐름처럼 느껴진다. 수읽기에 몰입중인 이세돌의 얼굴은 마치 양수에 잠긴 태아의 모습처럼 평화롭다. 결승2, 3국에서 승리한 유창혁이 일관되게 보여준 것은 두 가지 상이한 생각과 행동이다. 수읽기에서는 계곡을 흐르는 물살의 유연함과 명징(明澄)함을 보여주었고 외양으로는 흔들림 없는 산악의 장중함을 보여주었다. 결승1국에서 이세돌의 스피디한 페이스에 말린 유창혁은 결승2국부터 의도적이라고 생각될 만큼 느린 대응을 보였다. 사유(思惟)의 속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바둑판으로 나아가는 손길과 동작 하나 하나가 이창호의 우보천리(牛步千里)였다. 그 안에서 '이 한판은 놓치지 않겠다'는 결연한 각오 같은 것들이 언뜻언뜻 비쳤다. 결승3국을 뚜렷하게 관통한 하나의 느낌은 '긴장감'이다. 세계대회 결승이라는 큰 전쟁터의 사선(死線)을 여러 차례 경험한 유창혁도, 담대하기로는 하늘을 찌르는 이세돌도 마지막 승부의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두 기사 모두 종반 끝내기에 이르러서는 긴장이 극에 달한 듯 간간이 돌을 내려놓는 손에 경련을 일으켰다.  제한시간 20분짜리 속기전에, 마지막 승부라는 긴장감 때문인지 실수도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실수를 적게 하는 쪽이 이기고 마지막에 실수하는 쪽이 지는 법'이라는 유창혁의 말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힘이 실린다. 결국, 그 말 그대로 마지막에 실수한 이세돌이 졌다. 유창혁은 마지막 승부처에서 혼신을 다하는 집중력을 보였고 이세돌은 끝낼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에 자신감을 버리고 물러섰다. 그 차이가 승자와 패자의 역할을 극명하게 갈라놓았다. 국후 검토를 마치고 이세돌은 가족과 함께 '약속이 있다'며 총총히 사라졌고 최후에 웃게 된 유창혁은 무관 탈출을 축하하는 꽃다발을 받으며 타이틀 획득 인터뷰를 시작했다. 지난해 LG배 세계기왕전 우승 이후 1년여만, 국내타이틀로는 스스로 '기억이 없다'고 할 만큼 오랜만인데 99년 배달왕기전(KTF배의 전신) 우승 이후 4년만인 것 같다. '승리의 희열은 짧고 패배의 고통은 길다'고 하지만 타이틀획득의 순간만큼은 누구도 기쁨을 감추지 않으리라. 유창혁은 국후, 관계자들과 제2기 KT배를 마감하는 저녁을 냈고 몇 잔의 생맥주와 '고래사냥'을 열창하는 여흥을 가졌다. 늦은 밤에 움켜쥔 유쾌한 기억 하나. 유창혁은 생맥주를 들이키며 '이세돌의 수읽기는 세계최고 수준이다. 나도 어렸을 때 수읽기가 빨랐다고 자부하지만 이세돌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며 스스럼없이 이세돌이 대기(大器)임을 인정했다. 승자는 너그럽고 세월은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친다. 참으로 좋은 밤. 언제까지 오만할 것 같았던 천재의 시간에 켜켜이 쌓이는 연륜은 아름다웠다. (유창혁, 승자의 느낌에 관한 小考1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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