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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바둑문화상 유감
바둑문화상의 권위와 축제에 대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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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되풀이되는 일에 무언가 새로운 기대를 갖는다는 것이 어리석은 생각일까. '2002 바둑문화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기자단 투표가 끝난 뒤 어김없이 예년과 비슷한 우울함에 사로잡힌다. 세계최강의 한국바둑을 대표하는 한국기원에서 수상하는 바둑문화상이라면 거기에 합당한 규모와 권위가 갖춰져야 하는데 그 진행절차가 그렇지 못하고 그 결과 역시 그렇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둑문화상은 매년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각 부문별로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두거나 인상적인 활약을 보인 최고의 기사들에게 주는 상이다. 수상자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선정되어야 하며 시상식 역시 많은 팬들의 관심과 성원에 부응하는 규모와 재미를 갖춰야 한다. 언감생심, 각종 영화상 시상식처럼 화려한 이벤트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팬들에게 많은 볼거리와 화제를 제공하는, 축제와 같은 이벤트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2002 바둑문화상 기자단 투표를 마치고 느낀 몇 가지 문제점과 아쉬움을 토로해본다. 최우수기사와 인상적인 기사의 혼동 바둑문화상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상은 역시 최우수기사상이다. 후보자 조훈현 9단, 유창혁 9단, 이창호 9단, 이세돌 3단을 대상으로 투표한 결과 총 투표수 18표 중 7표를 획득한 이세돌 3단이 선정됐는데 이 결과는 그다지 합당치 못하다. 물론, 이세돌 3단이 최우수기사의 자격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후지쯔배 우승과 국내타이틀 4개 획득이라는 기록은 최우수기사상 후보자로서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성적이다. 문제는 이세돌 3단의 자격이 아니라 그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이창호 9단이 수상자가 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먼저, 두 기사의 기록을 비교해보자(도표 참고).  이창호가 최우수기사 선정 투표에서 밀린 가장 큰 이유는 올해 세계대회 우승이 없다는 것인데 실제 내용은 좀 다르다. 세계대회라 해도 결국은 한·중·일 3파전으로 끝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이창호의 TV아시아바둑선수권전 우승과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우승 마무리, 게다가 제1회 도요타덴소배 결승진출의 기록이면 세계 무관 핸디캡은 어느 정도 커버되는 것 아닐까? 그밖의 기록은 이창호가 압도적으로 좋다. 다승부문에서는 1승 차이로 5, 6위에 랭크돼 있지만 승률부문에서는 이창호가 1위를 달리고 있는데 비해 이세돌은 30위권 밖에 있고 국내타이틀 획득도 질적인 면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창호가 방어하거나 탈환한 6개의 타이틀은, KBS바둑왕을 제외하면 모두 타이틀홀더의 프리미엄이 보장되는 도전제 기전의 타이틀인데 이세돌이 획득한 4개의 타이틀은 모두 타이틀홀더라도 이듬해 본선부터 다시 출전해야 하는 선수권제 기전의 타이틀이다. 또 있다. 이세돌의 타이틀은 모두 이창호가 아닌 기사를 상대로 쟁취한 것이고 그나마 2개는 신예기사만 출전하는 제한기전의 타이틀이다. 다시 말해서 타이틀의 함량과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창호는 올해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자신만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 1999년 제10기 기성전부터 2002년 제33기 명인전까지 이어진 15개 타이틀전(선수권전 제외)에서 단 하나의 타이틀도 잃지 않은, 이 빛나는 기록은 아예 최우수기사 후보 선정자료에 실리지도 못했다. 이창호가 80%에 육박하는 승률을 기록하고도, 선수권전을 제외한 모든 타이틀을 차지하고도 최우수기사 선정에서 밀린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이창호는 세계최강자이고, 세계최강자라면 그 정도 성적은 당연한 것'이라는 일반적 의식 때문이다. 일반의 의식은 그렇다 쳐도 바둑문화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선정위원의 생각까지 그렇게 치우치는 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 만일, '이창호는 지난해에 받았으니까 올해는 가급적 다른 기사를 주자'는 의식이 작용했다면 그건 더더욱 곤란하다. 선정위원의 눈과 생각의 기준은 수상 후보들의 기록과 실적으로부터 멀어져서는 안된다. 이제 결론을 내자. 앞에서 열거된 두 기사의 성적을 볼 때 선정위원들이 뽑은 MVP(most valuable player) 이세돌은 오히려 MIP(most impressive player)에 가깝다. 이세돌은 올해'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둔 기사'가 아니라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기사'였다는 얘기다. 상의 권위는 수상자의 적확한 선정으로부터 나오는 법이다. 차제에, MVP에 버금가는 활약을 펼친 기사를 선정하는 MIP부문이 제정된다면 선정위원들의 혼동도 사라지지 않을까. 바둑문화상을 축제의 아이콘으로 바둑문화상은 바둑계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어느 기사들이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지, 또 누가 바둑계 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했는지 일목요연하게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그런데 수상자 선정부터 시상식에 이르기까지 그 절차와 마무리를 보면 정말 우울해진다. 팬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축제나 이벤트로 발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규모가 점점 작아져 '이러다가 명예도 권위도 없는 유명무실한 상으로 전락하는 건 아닌가'하는 우려를 갖게 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기원의 열악한 재정이나 환경을 모르는 건 아니다. 실제로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국기원 형편상 실행되지 못할 것'이라는 예단으로 체념하는 직원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바둑문화상을 축제의 아이콘으로 만드는 일은 실무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좋은 기획은 유능한 실무자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지만 그 실행을 위한 여건(특히 재정적인)을 만들어주는 일은 전적으로 이사진 이하 집행부의 역할이다. 단체란, 비전과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유능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어도 비전이 없고 낡은 제도의 틀 안에 갇혀 있으면 제 기능이 발휘되지 않는 법이다. 기사들의 승단제도, 기전 및 기사랭킹제, 한국바둑리그 창설 등 산적한 문제들이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풀려나가지 못하고 정체돼 있는 가장 큰 이유도 거기에 있다.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다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한국바둑계가, 한해를 마무리하고 최고의 기사들을 선정하는 일조차 하나의 축제로 아우르지 못한다는 것은 진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언제쯤 영화상 시상식처럼 많은 볼거리와 재미를 제공하는 바둑문화상 시상식을 팬들에게 선보일 수 있을까. 한국기원 이사진 이하 집행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기대해본다 손종수 *이 글은 한국기원의 의사와 무관한, 선정위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나도 한마디 / 바둑문화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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