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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해당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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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해당화(海棠花)!! 안개숲에 햇살이 비치듯 뽀얀 기억의 장막이 걷히면서 한떨기 꽃다운 이름이 떠올랐다. 해당화?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관목으로 동북아시아에 분포하며 바닷가 모래땅에 자생하는 높이 1∼1.5m의 붉은 그 꽃? 아니, 내가 아는 '해당화'는 꽃이되, 그런 꽃이 아니다. 꽃은 아니지만 그 어느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곳의 옥호(屋號)다. 조금 더 상세히 말하면 베이징(北京) 시내에 있는 북한식당 '평양랭면관(냉면·북한문법에는 두음법칙이 없다)'의 이름이다. 그곳에는 제4회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베이징대회 체류기간 내내 한국선수단의 마음을 사로잡은, 꽃보다 아름다운 여인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인(美人)은 아니다. 나는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한때 남쪽의 신문, 방송들이 일제히 북한 여성응원단에 보냈던 그 찬사를 경멸했다. '남쪽에는 그보다 훨씬 예쁘고 세련된 여성이 많은데 무슨 얼빠진 소리냐. 그것은 무지와 과장으로 포장된 값싼 환대였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알겠다. 아시안게임을 지켜본 많은 국민들, 특히 북한 여성응원단들을 가까이서 본, 분단 이전의 온전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진 많은 어르신들이 왜 그토록 어여뻐했는지 알겠다. 베이징에서 선수단 일행을 '평양랭면관 해당화'로 안내한 사람은 조훈현 9단이었다. 처음에는 근처에 다른 한식당도 있는데 굳이 멀리 이전했다는 그곳까지 찾아갈 필요가 있겠나 싶었는데 도착해서 문을 들어서는 순간 과연,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간편하고 단정한 한복차림(흰 저고리에 검정 주름치마)의 여성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우리를 맞았는데 그 기이한 체험이라니(음성으로 들려드리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실린 평양말씨가, 저들도 우리와 한핏줄이라는 동질감 속에 거부감 없는 미묘한 매력의 이질감을 안겨준다. 우리 눈에 익은 서구형 미인은 아니지만 화장기 없는 맑은 얼굴이 신선하다. 식당 1층은 만원이었다. 2층으로 안내돼 10인용쯤 돼 보이는 방에 자리를 잡았는데 차례로 맛본 음식은 대체로 상큼하고 맛깔스러웠다. 그 중에서도 선수단의 입맛을 사로잡은 최고의 메뉴는 이 집의 대표선수인 평양랭면이 아니라 통김치. 적당히 숙성된 상태에서 전체적으로 시원한 느낌을 주는 그 맛에 감탄한 일행 중 한 사람이 물었다. "이거, 여기서(베이징) 재배한 배추로 담근 김친가요?" "아닙네다. 모든 원자재는 조국에서 옵네다." 기다렸다는 듯 즉시, 흘러나오는 평양말씨. 남쪽이든 북쪽이든 지방말씨가 감칠맛 나는 것은 높낮이의 성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직된 정형에서 벗어나는 리듬의 자유로운 일탈이랄까. 그런데 원자재, 조국이라니? 음식에 관련된 말까지 스스럼없이 끼어든 산업용어. 한핏줄을 만났다는 가슴 두근거림이 순식간에 '아, 저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사회의 구성원이었지'라는 이질감으로 바뀌면서도 그 생경함이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식사시간 내내 이들이 보여준 친절과 재치가 그 모든 이질감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정 수준의 상식과 예를 갖춘 사람이라면 의례적인 친절과 성의를 다한 친절의 차이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우리 일행이 진정으로 즐거웠던 것은 그런 차이를 알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해당화에서 느낀 최고의 맛은 그 어떤 음식에서가 아니라 이들이 보여준 최선의 서비스, 이 땅에서 너무도 흔히 말하는, 그러나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고객감동'에서 나온 것이다. 셋이 앉아서 갈비 3인분을 시켰을 때 '3인분은 많습네다. 2인분만 시키시디요'라고 권하는 도우미가 있는 식당이라면, 누가 다시 찾고 싶지 않을까. 우연히, 손님들이 떠난 빈방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식탁을 공들여 깨끗하게 닦아내는 도우미의 모습을 보았다면, 누가 그 집을 다시 찾고 싶지 않을까. 서울의 한 식당에서 가축 몰리듯 이리저리 내몰리다가 문득, 그리운 이름 하나를 떠올렸다. 며칠 드나들며 낯이 익었다고 조금 지나친 농을 건네면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면서도 '그런 농담은 예의가 아닙네다'하고 밉지 않게 받아치던 얼굴. 바쁜 시간에 까다로운 주문을 해도 '참고하갔습네다'라며 미소를 잃지 않던 사람들의 얼굴이 꽃처럼 피어올랐다. 아아, 다시 그곳에 가고 싶다. 꽃이 아니되 꽃보다 더 아름다운 이름. 그리운 해당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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