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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기다림의 끝, 일본바둑에 희망 불어넣은 이치리키 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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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10년 전은 지금과는 다르다. 그로부터 10년 전은 또 다르다. 중세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일본은 바둑 선진국이었고 근현대에 들어와서 실력은 세계 최강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위상은 크게 바뀌었다. 오늘날은 한국과 중국이 세계 정상의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다. 일본은 우승은커녕 세계대회 본선에서도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그 기간은 길었다. 이야마 유타 9단 같은 천재가 나타났고, 일본을 다시 최강국의 지위로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이야마 유타 역시 세계대회 우승만큼은 해내지 못했다. 2005년 제9회 LG배에서 장쉬 9단이 우승한 일본은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이 끊겨 있었다. 한국과 중국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우승컵을 가져갔다. 한국은 조훈현·이창호·이세돌·박정환·신진서 같은 인재들이 세계 정상을 밟았다. 중국은 창하오·구리·커제 같은 각 시기의 절대강자뿐 아니라 막강한 실력을 갖춘 강호들이 돌아가며 세계대회 타이틀을 가져갔다. 바둑은 동아시아의 세 개 강국이 실질적으로 패권을 다투고 있다. 그중 어느 한 국가가 오랫동안 침체에 빠져 있다면 바둑 전체의 발전에서 좋지 않다. 일본 내 바둑의 열기 하락과 맞물려 일본이 주최하던 세계대회 후지쓰배는 2011년 제24회를 끝으로 명맥이 끊겼다. 그 이후 일본은 더는 메이저 세계대회를 개최하지 않고 있었다. 글로비스U-20과 같은 신예 세계대회를 개최하거나, 국제대회 형식을 갖춘 월드바둑챔피언십을 창설하는 등 노력을 멈추진 않았지만 세계대회 성적 부진 탓에 탄력을 받지 못했다. 세계 무대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자 하는 일본의 노력은 긴 세월을 지나 2024년 9월, 이치리키 료(一力遼·27) 9단의 손에서 빛을 보았다. 중국 상하이에서 끝난 제10회 응씨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 결승5번기에서 이치리키 료는 중국의 셰커(谢科) 9단을 3-0으로 셧아웃시키면서 우승했다. 상대는 신진서 9단과 동갑내기인 2000년생으로 응씨배에서 두번째로 결승에 오른 강자였다. 이치리키 료는 결승1국에서 벌점 2집을 받고도 341수 만에 흑으로 반집승했다. 2국에서는 259수 만에 백으로 8집반승했다. 3국에서는 238수 만에 흑으로 불계승했다. ![]() ▲ 시상식.
19년 만에 일본에서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자가 나온 순간이었다. 일본은 한을 풀었다. 응씨배로 따지면 한국이 6번 중국이 3번 우승했으나 일본은 처음으로 우승했다. 대형바둑판 공개해설장에서 요시카와 유카리 6단은 우승을 확인하며 하늘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일본에서 ‘홍도장’을 운영하면서 이치리키 료를 11살 때부터 조련한 한국 출신 일본프로기사 홍맑은샘 4단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치리키 료의 우승은 한 사람의 한 차례 감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본 바둑이 다시 날갯짓하는 걸 드러낸 사건일지 모른다. 우리는 격동하는 세계 바둑역사의 전환점을 목격하고 있다. 이치리키 료는 일본 내 최대 기전 기성(棋聖) 타이틀을 보유한 일본 일인자다. 천원・본인방전・아함동산배・NHK배도 보유 중이며 통산 타이틀 획득수 24차례를 자랑한다. 이치리키 료가 프로기사일 뿐 아니라 가호쿠신보(河北新報)사의 이사이기도 하다는 점은 독특하다. 2020년 와세대 대학 사회학부를 졸업한 뒤 2020년 4월부터 가호쿠신보의 기자로 활동해 왔다. 가호쿠신보는 이치리키 가문이 고조부 때부터 경영해온 지역신문사다. 이치리키 료는 바둑을 하면서 신문사에서도 일하며 가업을 잇는 경로를 밟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일본 매체들은 ‘올해 가호쿠신보사의 이사가 됐다. 두 가지를 함께 하면 세계챔피언을 지향하는 데 지장이 있지 않겠느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많았다.’고 했다. 이치리키 료는 “물론 그런 얘기를 듣긴 했지만 기존에 없던 것에 도전하고 통념을 깨뜨려가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10년 전에는 ‘대학 진학을 하고서 타이틀을 쟁취하는 기사는 없다.’는 말도 있었다. 나는 그런 생각들을 바꾸고 있고 계속해서 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이버오로는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는 이치리키 료의 생각과 철학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다. ![]() ▲ 중국 상하이에서 9월8일 끝난 제10회 응씨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 결승5번기 제3국에서 일본의 이치리키 료와 중국의 셰커가 대국하고 있는 모습이다.
- 최종국은 중반에 불리했다가 막판에 대마를 잡으며 승리했다. 극적인 승리 이후의 기분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 응씨배 우승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다. 결승3국은 극적인 승리였지만, 기쁨보다는 안도감이 컸다. ” - 일본 바둑의 현재 모습은 어떤가? “우승이 나왔다. 하지만 전체적인 수준으로 볼 때 한국·중국과는 아직 격차가 있다고 느낀다. 층의 두께가 아직 얇다. 집단연구 방식이나 세계대회 지원 체계는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과 중국은 사회적으로 바둑의 인기가 높고 실력 있는 기사들이 모여 연구할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 한국은 세계대회를 치르러 외국에 선수가 이동할 때 다른 선수들이 동행하면서 연구도 같이 하고 정서적으로도 돕는데 이런 점들은 일본에도 도입했으면 하는 것들이다. 기성·명인·본인방을 비롯한 일본의 7대 기전이 매년 지속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는 점은 일본 바둑의 강점으로 작용하리라 생각한다.” - AI와 창의성 그리고 자신의 바둑을 말해 본다면? “AI의 등장 이후 바둑의 포석 개념이 크게 변화했다. 하지만 나는 AI가 추천하는 수와 일치하게 두는 데 치중하지 않고 창의성을 발휘하려고 노력한다. 나만의 감각을 바탕으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전투적이다. 내 바둑 스타일의 기초는 10대 시절 홍도장에서 쌓은 것이다. 홍(맑은샘) 선생님께 큰 영향을 받았다. ” - 바둑으로 형성된 가치관은 무엇인가? 또 최고라고 여기는 경지는? “처음에는 이기지 못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면 결과를 낼 수 있다. 시행착오를 거쳐 ‘성장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찾아올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온 힘을 다했다고 느낄 만한 내용으로 승리를 거두는 것은 최고의 경지다. 바둑판 위의 세계는 한없이 넓고 깊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 기억에 남는 외국 선수, 기억에 남는 사건은? “중국의 커제(柯潔) 9단은 나와 동갑인데, 어릴 때부터 많은 세계대회에서 우승해서 크게 주목하게 됐다. 사건으로는 2016년 3월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 이긴 순간으로, 그때의 놀라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 바둑을 접한 순간부터 점차 바둑을 배워가면서 느낀 매력, 그리고 강렬했던 승부의 기억은 무엇인가? “다섯 살에 바둑돌을 잡았다. 승리를 거듭하면서 실력이 점점 느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그러면서 바둑의 매력에 푹 빠졌다. 프로로 데뷔했을 때는 안도감과 함께 드디어 출발선에 섰다는 느낌이 강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2016년 농심신라면배에서 이세돌 9단에게 이긴 대국(제18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1국, 286수 백 0.5집승)이다. 그 경기는 특히 알파고와의 대결로 이세돌 9단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후에 벌어진 것이었기에 더욱 뜻깊었다. 바둑은 내 인생에서 90%를 차지할 만큼 중요하다. 바둑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려준다. 또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바둑판 위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점 또한 바둑의 매력이다. 바둑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다.” - 본받고 싶은 인물은? “역사 속에선 혼인보 도사쿠(本因坊道策) 선생이다. 도사쿠 선생의 바둑은 약 350년이 지난 지금도 참고할 부분이 있다. 바둑 이외의 분야에서는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를 존경한다. ![]() ▲ 도열이 생경해 보일 정도다. 세계대회 시상식에서 일본 우승자와 중국의 준우승자가 나란히 섰다. 우승자는 일본의 이치리키 료(왼쪽), 준우승자는 중국의 셰커.
- 대국할 때와 쉴 때 자신의 모습은? “세계대회에선 국내대회보다 더 큰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낀다. 또 세계대회는 연전(連戦)이 많아서 정신적, 육체적 강인함이 더 많이 필요하다. 대국 후에는 항상 복기를 한다. 승부를 끝내고 나면 체중이 줄어들기 때문에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서 회복한다. 그 밖에도 노래방엘 가는 등 좋아하는 일들을 하면서 기분전환을 한다.” - 일본 바둑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약 50년 전 후지사와 히데유키(藤沢秀行) 선생님 등 일본기사들이 한국과 중국의 기사들을 지도한 것은 오늘날 한국과 중국의 바둑발전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일본도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 달리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실전적인 스타일이 일본에도 많아졌다. 일본의 바둑 인구는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이제 일본은 시대의 요구에 맞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홍보 방식을 개선한다면 증가세로 돌아서게 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중국은 호텔이나 대국장에 부채를 들고서 기다리는 젊은 바둑팬이 많다. 그런 팬들을 볼 때 열정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 최종 목표는? “일본 7대 타이틀을 동시 석권하고, 세계 최강이 되는 것이 목표다. 내 활약으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기쁠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의 바둑 수준을 더욱 끌어올리는 동시에 일본에서 바둑의 인기가 V자로 회복되도록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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