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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심과 흔들기로 구리 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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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이창호!”상투적이긴 해도 이보다 더한 표현이 있으랴. 실패는 한번으로 끝, 농심배 신화는 살아있었다. 불빛이 흐려가던 반상, 패색이 짙어가던 판세. 돌부처 이창호는 부동심으로 때를 기다렸고 칼자루를 쥐고 있던 구리의 공격은 시간이 갈수록 출렁거렸다. 잡으러 갈 듯하다 살려주고, 살려줄 듯하다 잡으러 가고…. 일관성을 잃고서 멋을 부리다 결국 자기 발등을 찍었다. 주장의 중책을 맡아 언제나 ‘이기면 우승, 지면 끝’이라는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쳐왔던 이창호는 월등한 단체전 성적이 말해주듯 팀원과 나라를 위해 개인전보다 이를 더 악문다. 제8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최종국 백 : 구리 9단(중국주장) 흑 : 이창호 9단(한국주장) 장소 : 중국 상하이 화팅호텔 날짜 : 2007. 02. 09 결과 : 277수끝, 흑2집반승 장면 (역전의 기운) 당겼다 늦췄다, 흑대마를 괴롭히며 국면을 주도하던 구리였지만 꿈쩍하지 않는 이창호의 부동심과 끈끈한 투혼을 완전히 뿌리칠 만큼 영글지 못했다. 흑1로 살자고 했을 때 백2의 붙임. 이창호는 돌연 상변으로 달려가더니 이윽고 흑7로 좌하에서 수를 내자고 한다. 거기서 백8과 흑9. 마치 선문답과도 같은 이 일련의 수순에서 역전의 기운이 싹텄다. 실전진행1 (흔들어놓은 응수타진) 변화무쌍했고, 짜릿하고 화끈했다. 난해한 공방전은 쉬어갈 겨를을 주지 않고 모든 장면을 승부처로 만들어 놓았다. 좌변에 통집을 허용할 수 없노라며 흑1의 응수타진. 상대방 태도에 따라 대마사활에 도움을 주거나, 혹은 귀에 맛을 남기려는 뜻이다. 백4는 눈을 빼앗는 급소. ‘공격 먼저’를 외친 이 수는 그러나 타이밍이 나빴다. 참고도1 (일단 받아야) 잔수가 강한 구리는 부분적인 전투에 강하고, 이창호는 집바둑으로 흐를 때 더욱 믿음이 간다. 이 판은 일찌감치 싸움바둑에 돌입했고, 대마 생사가 거슬린 흑이 시달리는 처지로 몰렸다. 좌하귀를 응수하지 않은 건 심했다. 일단 백1로 막아놓고 흑2라면 그때 백3으로 두어도 늦지 않았다. 이 모양이라면 실전처럼 흑A로 버티는 수는 안 통한다. 참고도2 (당한 꼴) 진작 제한시간을 소진하고 줄타기를 하듯 초읽기에 몰린 2시간은 보는 사람의 심장을 오그라들게 했다. 누가 냉정을 잃지 않느냐의 승부에서 구리는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발끈했다. 인내하면서 기회를 엿본 이창호의 부동심과 비교되는 대목. ▲로 껴붙였을 때 백1로 차단하면 흑2를 선수하는 자체로 귀의 삶이 확보된다. 그러고 나서 대마를 살리면 백이 많이 당한 모습. 실전진행2 (변화가 생겼다) 3번째 출전인 구리는 이번에 처음 주장을 맡았다. 이창호는 전 대회 출전, 전 대회 주장 기록. 경력에서 비교조차 안 된다. 흑2 빵따냄을 허용, 백진의 귀퉁이에 금이 갔다. 흑4는 실수였지만 구리의 욕심과 이창호의 흔들기가 버무려져 변화가 생겼다. 삶을 도모하는 과정에 10ㆍ12를 두게 되어 A에 붙여가는 맛을 만들어놓은 것이 상당한 플러스. 참고도3 (이을 수 없다) 이번 농심배는 침체에 빠진 이창호 개인은 물론 중국과 기싸움이 격한 한국바둑의 시험대. 단체전에서 지는 일이 없었던 한국은 지난해 초 농심배를 잃더니 CSK배와 강원랜드배를 거푸 놓쳤다. 백1로 한점을 이을 순 없다. 10까지 파탄. 참고도4 (젖혀서 완생) 이후의 실전진행은 흑이 살고 승부에서도 이겼지만 완생의 형태가 아니어서 불안한 요소가 없지 않았다. 흑1로 젖혔으면 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백2로 덤비는 건 무리. 백6까지 이쪽 눈을 빼앗더라도 흑7로 뛰어 반대쪽에서 눈을 만들 수 있다. 백10엔 흑11로 삶, 백10으로 A는 흑B로 역시 산다. 참고도5 (깔끔한 정돈) 변화가 생기면 불리한 쪽은 반갑고, 유리한 쪽은 조급해진다. <장면> 백2(본도 A의 곳)를 두는 데 구리는 그다지 뜸을 들이지 않았다. 초읽기에 몰린 상대에게 시간공격을 가하기 위함이며, 또 백B로 잡으러 갈 때(흑은 C에 껴붙여 삶을 도모해야 한다) 원군을 배치시키자는 뜻도 담겼다. 하지만 그 모두는 백1로 깨끗이 정리하는 것보다 나을 리가 없다. 흑은 여전히 대마가 신경 쓰인다. 실전진행3 (마침내 역전) △가 강한 태도였다면 백1은 느슨한 수. “너무 아쉽다. 유리했는데 늦추고 말았다. □에 젖힐 땐 그런대로 괜찮다고 여겼으나 이후 상대가 아주 강하게 나와 좌하귀 처리에 문제를 일으켰다. 이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국후 구리의 인터뷰. 백1보다는 흑2가 크다. 대마를 안정시키고, 상변 큰 수를 두고, 좌하귀도 살자 노심초사하던 국내검토진은 수많은 난관을 극복한 흑이 해볼 만해졌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7국까지 1승조차 못 올렸던 한국은 8국부터 14국까지 6승 1패의 호성적. 원조 이창호와 첨단 박영훈, 두 신산이 합작하며 대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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