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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부처, 시간에 무릎 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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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다고 나무랄 사람은 없다.” 뤄시허의 우승 인터뷰는 승부와 심리적 요소의 상관 관계를 암시해준다. 마음을 비우니 부담감이 사라졌다.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을 벗자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이창호를 이기고 우승해야 진정한 챔프라고 공공연히 내비쳤던 중국. 뤄시허는 이창호를 넘었고 패권도 차지했다. 완전한 우승. 또한 중국의 삼성화재배 ‘10년 숙원’을 이루었으며, 예선부터 출전해 정상에 오른 첫 기사로도 등록됐다.  제10회 삼성화재배 결승3번기 제3국 ○뤄시허 9단(중국) ● 이창호 9단(한국) - 장소 : 삼성화재 본관 - 날짜 : 2006. 01. 13 - 결과 : 360수끝, 흑5집반승 장면 (화를 부른 끝내기) 1992년 동양증권배 우승을 시작으로 십수 년을 군림해온 이창호. 꿈쩍 않던 위상이 세월의 무게와 풍파에 조금씩 흔들린다. 1, 2국에서의 믿기지 않는 착각. 결승에서 외국기사에게 패한 건 처음이다. 시간에도 졌다. 좀 더 득을 보려고 한 치열함이 화를 불렀다. 백1, 3은 끝내기의 상용 수법. 자체로는 수가 된다. 다만 가의 곳 패가 변수. 일방적 활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실전진행1 (기민한 찬스 포착) 끝내기에서 약간의 이득을 챙기면 미세한 우세가 보이는 형국. 이창호는 그 찬스를 기민하게 포착했다. 백1의 끊음이 음미할 만하다. 흑A로 젖혀잇는 끝내기를 당하기 전의 날카로운 일침. 흑도 2로 찌르고 14로 이어 타이트하게 맞섰다. 참고도1 (아무것도 안 된다) 단순히 큰 곳을 끝내기하면 흑에게 당장 2, 4를 선수로 당한다. 그 뒤에 백A로 끊어봤자 아무것도 안 된다. 흑B로 몰아잡아서 그만. 우상 흑집은 22집이 확정되며 상변 백집은 젖혀이음을 당한 만큼 줄어든다. 참고도2 (손해) 뤄시허는 32강부터 한국의 조한승, 송태곤, 이세돌, 최철한을 연파했다. 한결같이 쟁쟁한 톱 클래스. 그의 기량이 결코 평가 절하될 수 없는 대목이다. 판이 거듭될수록 기세가 치솟으며 마침내 폭발했다. A로 젖혀잇는 수를 남겨 두려면 흑1쪽에서 막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백2, 4를 선수로 당해 더 큰 손실을 입는다. 참고도3 (최선) 결과적으로 이 끝내기가 최선이었다. 백1을 선수하는 것으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우상 흑집은 22집. 백이 반집 정도 두텁지 않을까 하는 검토진의 조심스러운 진단이 있었다. 참고도4 (의도) 치열하게 둔 의도는 이 그림에 있다. 조여붙임을 강요시키며 놓고따내게 만드려는 것. 흑집은 A로 따내서 20집이 된다(서로 따낸 돌의 개수를 뺀 계산). 〈참고도3〉에 비해 2집 더 이득이다. 이 코스는 백이 이긴다. 실전진행2 (간과한 대목) 문제는 이창호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는 사실. 백6까지가 절대일 때 흑7로 패를 따내는 수를 경시했다. 물론 귀에서는 큰 패를 만들었다. 하지만 백이 꼭 이겨야 하는 절박한 입장의 패. 흑의 안위와는 관계 없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흑7, 9로 빵따내는 사이 우변 백이 분단됐다는 점. 그로 인해 흑에게는 A, 또 B부터의 팻감이 무려 9개나 생산되는 팻감공장이 차려진 것이다. 참고도5 (양패) 3시간 바둑에 단련된 이창호에 비해 ‘속기 명수’ 뤄시허에게 2시간 바둑은 준비완료 상태나 다름없다. 장거리 주자가 단거리를 소화할 수는 있어도 전문적인 스프린터로 나서려면 훈련을 요한다. 새로운 틀에 적응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중대한 승부처가 도래하자 뤄시허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강인함으로 맞받아쳤다. 이제와서 당연한 〈실전진행2〉 백8에 이창호는 한참을 망설였다. 수읽기 혼선. 마음 먹은 대로 진척되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 것이다. 우상은 백3으로 따내도 흑4로 양패의 형태. 그렇다고 백5로 다른 끝내기로 돌아서는 건 얘기가 안 된다. 선수로 할 수 있었던 백A만 없앤 꼴이니까. 참고도6 (참혹한 팻감) 필사적인 패, 이겨가는 과정이 참혹했다. 백A로 호랑이 입에 집어넣어 ▲로 빵따냄당한 것은 고사하더라도 백1에 두어 흑2의 끊김을 자청하고, 백7로 축을 나가는 팻감은 눈뜨고 보기 어렵다. 패는 결국 이겼지만 손해가 누적되는 바람에 승부에서는 지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중국의 추진력이 무섭다. LG배 우승을 확정지은 데 이어 삼성화재배도 가져갔다. 2월에 속행될 농심배마저 우승한다면 한국바둑의 위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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