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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그림자에 놀란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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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과 토끼의 싸움. 애시당초 체급이 맞지 않는 대결 구도였다. 여태 범의 매서움을 체험하지 못했던 토끼는 간간이 용기를 부려 봤으나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날카로운 앞발로 툭툭 건드려 오자 그 힘에 움찔거렸다. 사나운 위용을 몸소 느낀 뒤로는 그림자만 봐도 꽁무니를 빼기 일쑤였다. 그럴수록 더욱 치밀하고 강해지는 용맹. 이세돌의 당당한 진군에 한국의 8연패 위업은 한층 탄력을 받았다.  제18회 후지쯔배 24강전 ○나카오노다 도모미 9단(일본) ●이세돌 9단(한국) - 장소 : 일본기원 - 날짜 : 2005. 04. 09 - 결과 : 161수끝, 흑불계승 장면 (기발한 행마) 기본기 충실, 접근전 약세. 나카오노다는 정통 일본바둑의 틀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았다. 과감하게 싸울 곳에서 누차 몸을 사렸다. 이세돌의 힘에 눌렸다고 할밖에. 상반부의 광활한 흑집에 대항하려면 하반부에서 백집 30집을 만들어야 한다. 미생인 좌변 흑을 향한 백1이 일석이조. 이에 대한 흑2가 기발하다. 백1이 들여다본 모습이어서 행마법의 상식에는 어긋난다. 범상치 않은 수에 흠칫 놀랐는지 나카오노다는 엉뚱한 곳으로 꽁무니를 뺀다. 참고도1 (무미건조한 보강) 흑1은 단지 안위에만 신경 쓰는 수. 무미건조하다. 백2, 또는 A로 자연스럽게 리듬이 붙는다. 하변 일대의 백집이 힘 안 들이고 불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참고도2 (과감한 나가끊음) 싸움은 유리한 장소에서 벌이는 것이 상책. 조금 삐긋하더라도 균형을 맞출 여력을 지닌다. 반면 불리한 곳에서의 싸움은 실패가 패배로 직결된다. 형세가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므로 백1로 나가끊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세돌도 각오하고 전투에서 승부를 볼 작정이었을 것이다. 실전진행1 (선수 뽑기) 난데없는 △. 거꾸로 흑3을 당하는 게 싫었을까, 아니면 흑2로 받아줄 것으로 여긴 선수활용이라 생각했을까. 손해를 감수한 흑3이 선수를 뽑기 위한 조처. 백이 손을 빼지 못하게 응수를 강요하는 희생타이다. <참고도2>와는 달리 왼쪽에 백의 두터움이 없는 상태에서 흑7을 두게 됐다. 실전진행2 (이세돌의 진가) 세계대회에 첫 출전한 나카오노다는 5회 우승의 이세돌을 맞아 중반 초입까지는 그럭저럭 버텼으나 실력 차이를 부인키 어려웠다. 한눈마저 파는 바람에 악화 일로로 곤두박질쳤다. 백3은 흑4와 교환돼 악수. 백5까지 축적한 힘을 어디에 사용하려는 걸까. 흑10, 16, 22 등이 이세돌의 진가를 보여주는 수들. 참고도3 (기민한 잽) 흑1에 백2는 흑3의 젖힘이 맥. 백4는 귀의 백집이 관통당하므로 무리한 반발이다. 또 백4로 A는 흑4가 탄력적인 응수. 이를테면 흑1이 기민한 잽이었다. 참고도4 (적시의 활용) 좁은 곳에서의 세기(細技)는 이세돌의 강점. 흑1도 적시의 응수타진이다. 백2는 흑3으로 막히게 되므로 부질없는 저항. 백4 이하의 버팀은 무모하다. 참고도5 (밋밋한 연결) 거듭되는 최강, 최선의 수. 흑1은 가장 튼튼한 연결 수단. 하지만 이세돌은 밋밋해서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백은 2의 활용 한방이 들으면 하변 일단에 숨통이 열리므로 4부터 귀의 실리를 도려낼 것이다. 참고도6 (공수 겸비) <참고도5>에 비해 흑1은 수비와 공격을 겸하는 적극책. 백이 귀에 손댈 여유를 주지 않는 수이다. 흑5에 잇고 7로 씌우면 하변 백이 풍전등화. 죽지 않더라도 몹시 시달릴 운명이다. 30집을 장만해야 타산이 맞는 하변 백집이 실전에서는 반쪽이 됐다. 상변 흑집이 위력을 더하며 집차이가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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