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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색해진 장고(長考)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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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간을 훌쩍 넘긴 사투. 대마사활을 둘러싼 피말리는 공방은 시간 초과에 의한 벌점 따위는 대수로운 손실이 아니었다. 60여일간의 휴전기 뒤에 재개된 반상최대의 승부는 충만한 기세가 맞부딪치며 세계대회 사상 최장대국 기록을 세운 ‘타협없는 전쟁’. 짙은 안개 경보가 내린 가운데 9시간이 지나도록 반상의 형체를 종잡기 어려웠다. 땀으로 흥건히 젖은 손. 정신이 아득해지고 집중력이 흐트러질 즈음에야 비로소 윤곽을 드러냈는데…. 제5회 응씨배 결승5번기 제3국 ○창하오 9단(중국) ●최철한 9단(한국) - 장소 : 베이징 곤륜호텔 - 날짜 : 2005. 03. 03 - 결과 : 172수끝, 백불계승 장면 (장고 끝의 패착) 우변에서 점화된 불길이 판 전체를 휘감아돌아 결국은 좌하 백에 대한 공격과 타개가 마지막 승부처로 떠올랐다. 백1로 붙인 쪽은 창하오. 이 변화구에 흑2가 패착으로 낙인찍혔다. 그 바람에 백3으로 껴붙이는 탄력 좋은 리듬을 주었다. 흑2는 벌점을 감수하며 본국 최장인 45분을 투입한 수여서 못내 애석하다. 실전진행1 (경과수순) 즐거웠던 때보다 그 반대의 시간이 길었던 흑. 인고(忍苦) 끝에 기회를 잡았다. 창하오의 조급한 공격을 틈타 좌상을 접수하는 과감한 단안을 내린 것. 방치했던 중앙에서의 효율적인 사석작전과 좌하 백 두점을 연계짓는 공격에 내내 흥을 잃고 있던 검토진도 활기를 찾았다. 최철한의 구상은 이랬다. 흑1부터 살리는 척하면서 5, 13 등으로 벽을 구축, 아예 백 두점을 통째로 거두어 들이겠노라는 통쾌한 역전 시나리오. 참고도1 (공격부터) 미리 결정지어 버린 <실전진행1> 흑13은 아쉬움이 남는 처리였다. 먼저 흑1로 잡으러 갔더라면 포획할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결정을 보류하는 이유는, 흑3 이하의 노림이 있어 흑7이나 A의 곳 등이 선수로 듣는다는 점. 모양이 미리 결정되면 백도 타개하기에 수월한 면이 있겠지만 보류된 상태라면 삶을 구하는 데 많은 제약을 받는다. 참고도2 (남는 형세) 바둑의 신이 와도 확답을 내리기 어려운 공방. 그렇더라도 패착의 오명을 쓴 <장면> 흑2는 1에 늘어두어야 했다. 물론 백대마를 생포하는 수단은 잘 안 보인다. 요컨대 적당히 살려주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 흑7이 유쾌한 활용이며 상변 9의 곳에 손이 가면 흑이 조금 남는 형세다. 참고도3 (위험한 버팀) 백도 4의 곳을 빼앗기면 승부가 힘들어지므로 그 곳을 막고 살 수는 없을까. 위험한 버팀. 23까지 전멸이다. 도중 백16으로 23에 두면 패를 만들 수 있지만 대마가 걸린 패여서 곤란하다. 실전진행2 (우격다짐) 흑1은 필사적인 안형 탈취(이 수로 12는 백1로 치받아 안형이 풍부해지므로). 하지만 우격다짐에 가깝다. 이 때는 백을 잡는 수도 타협하는 수도 사라졌다. 16까지 백의 선수 삶. 무모하다시피 강경하게 나간 걸 보면 3ㆍ三을 두드린 순간 최철한은 백을 잡았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듯하다. 참고도4 (패는 못한다) 세찬 공격수단이 보이지 않는다. 흑1은 부분적으로 강수지만 백6의 패가 만패불청의 위력을 지닌 큰 부담. 백에게는 8의 곳에 팻감이 있다. 그래서 흑3으로 6에 단속하면 백3으로 젖혀 탄력이 붙는다. 계속해서 흑A～흑G의 부호순으로 백이 선수로 산다. 결승대결 6번을 모조리 패했던 ‘비운의 엑스트라’ 창하오. 최대의 분수령이 된 3국을 ‘마라톤 대국’ 끝에 따냄으로써 주역으로 발탁될 꿈에 한껏 부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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