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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침략자인가 조력자인가”…2000승 이창호 9단의 반전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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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중앙일보_SUNDAY가 만난 사람] “AI는 침략자인가 조력자인가”…2000승 이창호 9단의 반전 대답 ☞클릭 세계 최초 2000승 달성한 이창호 9단 창검이 번득이는 종횡 19로의 바둑판에서 ‘이창호’라는 존재는 독보적이다. 그는 솜방망이 하나 들고 적수들을 모조리 꺾었다. 솜방망이는 아프지 않다. 상대는 자신이 지는 줄도 모르고 졌다. 1990년대, 그러니까 이창호 전성시대 얘기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2026년 10월 26일, 이창호가 또 하나 역사에 남을 기록을 세웠다. 세계 최초로 2000승을 달성한 것이다.(생애통산 2000승1무830패) 11세에 프로가 되었고 14세 때 국내 첫 우승, 그리고 16세 때 세계대회서 처음 우승하며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던 이창호가 50대에 접어들어 또 하나 불멸의 기록을 만들어냈다.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열린 2026 레전드리그에서 최명훈 9단에게 불계승을 거두며 2000승 고지에 오른 것이다. 이창호 9단에게 전화를 걸어 소감부터 물었다. ![]() ▲ 1992년 이창호 5단(오른쪽)과 린하이펑 9단과의 동양증권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결승 대국. 이 5단은 린하이펑 9단을 격파하고 16세 나이로 세계 대회 첫 정상에 오른다. [중앙포토]
“큰 영광입니다”라고 이창호는 말했다. “40년이 됐네요. 바둑을 너무 좋아해 쉬지 않고 바둑을 두었는데요, 오늘은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완주에서 막 올라온 이창호는 지친 기색 없이 명랑했다. 긴 인터뷰인데 예상과 달리 말도 잘 했다. 이창호는 어릴 때 눈부신 계산능력을 보여줬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AI의 화신’이라 할 만했다. 소년 이창호가 100수 언저리에 반집 승부를 내다보는 모습에 놀란 나는 글을 쓰면서 ‘신산(神算)’이란 별명을 붙였다. 그러자 어떤 대학교수가 어린아이에게 신(神)자를 쓴다며 항의해왔다. 사실 ‘소년과 바둑’은 당시 세계 바둑의 중요한 테마였다. 특히 일본에서 소년 이창호에 대한 관심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들의 궁금증은 한마디로 이랬다. 인생을 모르고 바둑의 고수가 될 수 있느냐. 이 말을 풀어보면 이창호란 소년이 바둑을 제패한다면 바둑의 가치가 작아지거나 흔들리는 것 아니냐. 이창호에게 물어본다. Q. 일본에서는 40세 명인이 진정한 명인이란 말이 있죠. 바둑의 경지가 높아지고 동시에 인생도 알아야 진정한 명인이란 얘기죠.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A. “맞는 말인데요. 현실은 조금 다르지요. 일단 체력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경륜이나 깨달음보다 앞서는 게 현실이지요. 40세 명인에 동의합니다. 그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건 이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내 능력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바둑 말고 끌린 건 공부…학자 될 생각도 이 이야기는 이창호에게 ‘전생 고수’라는 이상한 별명이 붙은 것과 관련이 있다. 소년의 바둑이 기존의 명인들을 넘어선다는 것은 전생의 고수의 환생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이창호는 틀림없이 전생의 고수였다는 추론이었다. (훗날 일본에서는 ‘고스트 바둑왕’이란 만화가 대히트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데 그 만화에서 전생 고수가 등장한다.) 1993년 러시아의 볼가강 유람선 알렉산더 푸쉬킨호에서 조훈현 9단 대 이창호 6단의 국수전 도전기가 열린다. 예전 유럽으로 유학 간 이창세라는 전직 프로기사가 돈을 많이 벌어 후배들과 대회를 초청한 것. 재미있고 정다운 세계 최초의 선상대국이 됐다. 한데 이창호가 대국이 끝나자마자 혼자 귀국하는 일이 벌어졌다. Q. 기억하시나요. A. “제가 그랬나요.” 이창호는 비행기 타는 것을 싫어한다. 가끔 복통이 일어나기도 한다. 공항 수속도 혼자 해본 일이 없다. 그런 이창호가 배에서 혼자 내려 서울까지 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수능시험 때문이었다. 다음날이 수능이었고 그는 수능을 보고 싶어서 열심히 달려왔던 것이다. 이창호는 공부를 했으면 아주 잘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수학은 아주 뛰어났을 것이다. 더구나 이창호는 노력하는 사람이다. ‘노력이라는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다. Q. 그런데 수능을 보지는 않았어요. A. “…….” 당시 관철동 한국기원에는 4층에 젊은 기사들이 모이는 연구생실이란 게 있었는데 그곳에서 동료 선배들이 이창호에게 수능은 필요 없다고 설득했다. 그들은 이창호가 한눈을 팔다가 바둑이 피해를 입으면 큰일이라고 걱정했다. 특히 이창호가 좋아하는 선배 유창혁이 그랬다. 그때를 함께 회상하다가 내가 물었다. Q. 이 9단은 혹시 바둑 말고 다른 삶을 꿈꾸어 본 적은 없나요. (잠시 침묵한 뒤)“공부, 학문이 끌린 적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잠자면서도 바둑만 생각했으니까 다른 생각은 없었지요. 하지만 막연하게 학자도 좋겠다 싶은 적이 있었어요.” Q. 독서광으로 유명한데요. 책은 바둑 바깥 다른 삶을 알아보는 창인가요. A. “독서광은 잘못 전달된 것이고요. 그냥 이리저리 책을 봅니다. 취미 정도지요.” 이창호는 수도자 같은 구석이 있다. 사막을 흐르는 강 같은 느낌. 아득하고 멀고 막연하다. 강수(強手)를 좋아하지 않고 두터움에 몸을 맡긴다. 그래서 솜방망이다. 상대가 통증을 못 느끼는 솜방망이. 그는 테니스를 할 때도 스매싱을 하지 않는다.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스매싱할 실력이 안 돼서 ….” 실력이 약해도 다들 스매싱은 한다. 그게 본능이다. 이창호는 안 한다. 억제한다. 여기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창호는 유력한 강수를 찾아내고도 사용하지는 않았다. 한방의 유혹을 떨치고 그냥 느릿느릿 기역자로 꼬부리며 미래에 대비했다. 90년대는 스피드 시대란 말이 유행했다. 이창호는 느린 바둑으로 스피드 시대를 정복했기에 더욱 깊은 울림을 줬다. 세월이 흘러 국수 이창호도 50대에 접어들었고 바둑은 AI 시대를 맞이했다. 많은 것이 변했다. 제3수에 삼삼(좌표 3의 三)에 파고드는 바둑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오랜 기간 바둑에선 삼삼 침입을 실속 없고 전략적으로 나쁜 수라며 금기시했다.) Q.이 국수가 이런 삼삼 침입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궁금합니다. A. “충격이었죠.” 사실 초반부터 삼삼이라는 좁은 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바둑이 작아지는 느낌을 준다. 자연의 섭리를 대변하고 삶의 축소판으로 회자되는 무한대의 바둑이 블랙홀을 만나듯 삼삼의 작은 공간으로 축소되는 느낌을 준다. 처음엔 삼삼 침입을 거부하던 이 9단이 언젠가 TV에서 삼삼에 들어가는 모습이 보여 놀란 일이 있다. Q. 이제는 삼삼 침입을 받아들이기로 한 거지요. A. “AI로 인해 처음 2, 3년은 회의와 방황을 겪었죠. 하지만 지금은 AI로 인해 많은 고정관념이 깨져나가는 것을 보며 완전히는 아니지만 긍정적으로 변했습니다. 5선의 어깨 짚기(상대 돌의 대각선 앞머리(어깨 위치)에 돌을 놓아 상대의 진영 확장을 견제하는 수) 같은 것은 놀랍죠. 그 연장선에서 삼삼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신진서, 두터움으로 판 짜는 능력 돋보여AI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산한다. 과거 이창호와 복기를 하면서 이창호는 참 계가를 많이 한다 싶었다. 이런 이창호의 모습은 AI와 무척 닮았다. 100수 언저리에 반집 승부를 내다보는 이창호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 50대에 접어든 이창호는 계산이 안 돼 고심하곤 한다. 바둑에서 계산, 즉 형세 판단이란 참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신산이란 별호를 지닌 이창호가 가끔 계산이 틀려 역전패를 당하는 모습을 보면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랄까, 삶의 엄숙함에 새삼 고개를 숙이곤 한다. Q.이 9단은 올해 30승 14패를 거뒀더군요. 2000승이란 거대한 이정표를 세우긴 했지만 잘 지더군요. A.“승부를 떠나 바둑 두는 것 자체가 좋습니다. 인공지능 때문에 바둑을 보는 눈이 달라졌죠. 여기에 맞추려고 애를 쓰긴 하는데 쉽지는 않습니다.” Q.신진서 9단이 세계 최강자로 한국바둑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바둑을 평하신다면. A. “인공지능의 숨결이랄까. 그런 것이 느껴집니다. 그 속에서도 자기 스타일을 만들어 본인만의 두터움으로 판을 짜 나갑니다. 좋은 능력이지요.” 이 9단에게 “목숨이 다 할 때까지 지금처럼 바둑을 두어가겠지요” 하고 물었더니 쑥스러운 듯 웃는다. AI 시대가 왔다. 사람들은 저마다 AI에 대해 얘기하지만 사실 AI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AI를 따라가는 것조차 숨가쁘다. 그러나 인간 세계의 최고수였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강자였던 이창호 9단은 왠지 AI에 대해 분명한 느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AI는 침략자인가요, 조력자인가요, 방해꾼인가요.” AI는 결국엔 인간의 바둑을 파괴하는 침략자가 될 것이다. 아니다. 인간을 도와 바둑의 수준을 높이고 새로운 경지를 여는 조력자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방해꾼일까. 인간이 요순 시대 이래 5000년간 일궈온 바둑이라는 동네에 나타나 인간의 재미를 빼앗아가며 횡포를 부리는 방해꾼. 이 9단은 한참 생각하더니 “조력자” 쪽을 선택한다. 마치 다른 길은 없지 않으냐고 되묻는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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