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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당당한 위너다! 챔피언이다!
변상일 9단에게 드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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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다. 이 정도 표현 수위로는 뭔가 부족하다. 마음이 아프다고 해야 하나. 1월 23일, 29회 LG배 결승3국에서 커제 9단을 꺾고 메이저 세계대회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던 변상일 9단이 이후 국내기전에서 내리 3연패를 당하고 있다. 01.26. KB국민은행 바둑리그, 대(對) 박민규 9단, 235수 백불계패. 02.04. 하나은행 바둑 SUPER MATCH 예선, 대(對) 현유빈 6단, 흑불계패 02.15. KB국민은행 바둑리그, 대(對) 금지우 5단, 152수 흑불계패 2023년 7월, 14회 춘란배에서 리쉬안하오 9단을 2-0으로 누르고 우승한 데 이어 2024년에는 28회 LG배 결승에서 신진서 9단에게 막혀 준우승에 그쳤지만, 연이어 29회에 재차 결승에 올라 정상에 섰다. 1년 6개월 새 세계대회 우승 2회, 준우승 1회면 월드클래스라 할만하다. 그런 기사가 두 번째 트로피를 들어올린 직후 통 힘을 못 쓰고 있다. 상대한 면면을 보면 랭킹17위인 박민규 9단에게는 그럴 수 있다고 쳐도(후절수 사활을 못봐 졌다. 변상일 같은 레벨의 기사라면, 평소였다면 눈 깜빡할 새 읽어낼 수 있는 모양을 놓쳤다), 랭킹34위인 금지우 5단이나 랭킹116위에 걸쳐 있는 현유빈 6단에게조차 진 것은 의외다. 물론 일시적인 슬럼프일 수 있다. 정상(正常) 코스로 천신만고 끝에 정상(頂上)에 오른 사람에게서 혹간 보게 되는 허탈감 같은 것이라면 잠시 집중 못할 수도 있다. 유난 떨 일도 아니다.  누가 바둑의 품격을 떨어뜨렸나? 그렇지만 다들 보셨다. 지난 1월에 펼친 29회 LG배 결승3번기는 2국 반칙승, 3국 기권승으로 승부가 가름되었다. 세계바둑대회사상 초유의 파국, 파행이었다. 이 사태로 인한 여파는 한중 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곳곳에서 화제가 되었다. 대회가 끝난 1월 말부터 2월 중순까지 쓰나미처럼 바둑계를 덮쳤다. 일찍이 이처럼 세계바둑계를 붙잡아놓은 이슈는 없었다. 특히 중국의 여론은 용광로마냥 펄펄 들끓었다. 억울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커제 9단을 옹위했고 한국기원을 맹비난했다. 변상일 9단을 비매너 기사로 몰아붙였다.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반응하는 법이다. 당연히 이길 것으로 생각한 자국의 선수가 반상이 아닌 반외의 규칙(사석관리) 위반으로, 그것도 한 판도 아닌 두 판 연거푸 내주면서 졌다. 앞뒤 따질 겨를 없이 격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대국 직후의 순간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허나 이제는 시간이 좀 지났다. 그러니 가만히 따질 건 따져봐야 한다. 사안에 대해 서로 입장 차가 크고 할말이 많을 테니 여기선 상치되는 주장에 대해선 일단 접어두자. 갑론을박, 이미 많은 얘기가 나왔다. 다만 한가지, 변상일 9단에 대한 과도한 비난만큼은 이제 거둘 때가 되었다. 그러길 바란다. 엄밀히 따질 일도 아니다. 성기게 따져 봐도 변상일 9단이 무얼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커제 9단과 중국은 분통을 터뜨리며 뒤끝(결승3국 불복 성명에 이은 중국리그 외국선수 참가불허)까지 보였지만, 애초에 사석 룰 위반을 변상일 9단이 저질렀는가? 심판 판정에 끝내 불복하고 대회장을 떠나도록 변상일 9단이 유도했는가? 거듭 말하지만 원인제공자는 커제 9단이다. 이는 그 어떤 변명으로도 감출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를 중국바둑계와 팬들은 애써 못본 척한다. 피해를 도드라지게 보이게 하고 그들 일인자를 위무하면서 심적 보상을 받기 위한 방법, 그 가장 손쉬운 방법은 누군가에게로 화살을 돌리는 일이다. 모든 탓을 외부로 돌려 사태를 정당화하는 것. 우리는 역사에서 이러한 사건을 많이 보아왔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 마녀사냥 같은 것으로 눈길을 돌려 분노와 울분을 잠재우고자 하는 행태는 쉽사리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변상일 9단이 결승2국에서 커제의 사석관리 룰 위반을 심판에게 알린 상황을 지적한다. 품격을 지켜야 할 기사로서 기도(棋道)에 어긋난 행동이었다 격분한다. 격조와 품위를 입에 올린다. 정녕 그것이 한 기사에게 야유를 퍼붓는 이유라고 한다면, 먼저 같은 잣대로 그들의 일인자가 그간 저질러온 ‘악동(惡童)’ 같은 언행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지적해야 옳지 않겠나. 우리편이 하면 로맨스인가? 이래서 늘상 말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바깥에서도 샌다고 했다. 한 국가의 위상을 대표하는 기사일수록 각별히 언행을 조심해야 하는 까닭이다. 팬들에게 사랑 받는 부피만큼 책무의 무게감 또한 막중하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새삼 중언부언하기 싫어 아래 유튜브 채널(프로연우) 하나로만 대신하겠다. 대국중 심지어 우리말로 ‘씨X’이란 욕설까지 내뱉은 정황도 보인다. 아무리 혼잣말이라지만 중국기사가 중국말이 아닌 상대방의 말로 비속어를 쓴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 현장 취재기자의 전언에 따르면, 결승2국에서 반칙패를 당한 커제 9단이 이튿날(1월 23일 결승3국) 대국장에 들어와 자리에 앉을 때 들고 온 보온병을 테이블에 쾅 소리가 나도록 힘껏 내려놔 그 소리에 변상일 9단을 비롯해 다들 깜짝 놀랐다고 한다. 분이 덜 풀린 것인지 아니면 상대에게 도발을 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었던 것 같다. 이 또한 씁쓸한 뒷얘기다.
룰대로 했을 뿐이다! 변상일 9단은 말한다. 이미 사석 룰 위반을 한차례 경고 받고 벌점 2집까지 당한 상대방이 (이 일로 잠시 대국이 중단되었고 피차 흐름을 방해받는 일을 한차례 겪고서도) 또다시 따낸돌을 바둑통뚜껑에 놓지 않고 테이블 한켠에 방치하는 걸 보는 순간, 그때부터 거기에 자꾸 신경이 쓰여 바둑에 집중할 수 없게 되더라고. 저거 반칙인데 괜찮나…. 그러던 차에 사석 룰 2차 위반을 뒤늦게 알아차린 심판이 대국장에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커제 9단이 착수 후 의자에서 일어서 바둑판을 벗어나던 참이었다. 다가오는 심판을 보고 그제야 엉거주춤 손짓으로 상황 해결을 요청했다. 변상일 9단이 한 행위는 딱 이 하나다. 이걸 고자질 행동, 비매너 행위라고 비난한다. 변상일의 어설픈 손짓으로 주심이 들어와 휘슬을 분 게 아니잖은가. 심판이 두번째로 대국장에 들어설 때, 승부는 그 순간 2회 경고누적 반칙패로 결정났다. 반칙을 범해 페널티킥을 내준 자국선수를 탓하기보다 그 선수의 반칙행위를 심판에게 어필한 상대선수를 더 문제라고 말하는 격이다. 한국의 사석관리 규정과 너무 엄한 2회 경고누적 반칙패 판정을 맹비판할 순 있어도 변상일을 욕해서는 안된다. 중국 지인이 전해주는 그쪽 분위기가, 앞으로 변상일 선수가 중국에 오게 되면 당분간 보디가드를 붙여야할 정도라고 하니, 어이없을 따름이다. 기자가 겪어온 바, 생각하는 중국바둑의 수준은 이렇지 않았다. LG배 결승 이후 3연패를 기록하고 있는 것쯤 장기적으로 볼 때 그리 호들갑 떨 일 아닐 수 있다. 문제는 변상일 9단의 ‘멘탈관리’다. 바둑승부는 그 어느 종목보다 심리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는 멘탈게임인데, 이번 상처로 트라우마가 생기고 장기적인 슬럼프에 빠질까 우려스럽다. 국가대표팀 코치진과 한국기원이 이 점을 각별히 챙기고 있겠지만, 필요하다면 전문가 심리상담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별한 사건이 생기지 않아도 여타 스포츠 분야에서는 평시 선수들의 심리와 정신 상담을 병행하며 멘탈관리에 신경 쓰고 있다.  변상일 9단과 국가대표 코치진에게 권하고 싶은 다큐멘터리가 있다. 넷플릭스에서 현재 방영하고 있는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에 대한 이야기다. 4부작 다큐멘터리 <베컴>은 그의 화려했던 행적만 소개하는 게 아니라 ‘월드컵 퇴장 사건’으로 매우 암울한 시기를 겪게 되면서 이를 극복했던 비하인드 스토리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시간이 없고 축구에 관심이 없다면 1,2편만이라도 꼭 보시라. 선수들에 대한 심리상담이란 걸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시절, 경기장 가는 곳마다 팬들의 야유와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베컴이 이를 견뎌내며 극복하는 모습과 이 과정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퍼거슨이 어떤 식으로 선수를 보호하고 도왔는지 참고하면 좋겠다.  ▲ 이미지/넷플릭스 화면 캡처
한시절을 수놓은 전설적인 선수라면 의당 화려한 시간만 있었을 것 같지만 이는 엄청난 시련을 이겨낸 결과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베컴은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숙적 아르헨티나와 16강전에서 맞섰다. 베컴의 비극은 이때 아르헨티나 시메오네 선수와 신경전에 말려 레드카드를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10명이 뛴 잉글랜드는 2-2 무승부로 경기를 마치긴 했으나 승부차기 끝에 탈락하고 말았다. 역대 최강의 드림팀으로 평가 받았던 잉글랜드는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혔거니와 아르헨티나와는 포클랜드 전쟁이란 역사적 앙금으로 우리의 한일전만큼이나 승부에 목숨을 건 ‘축구전쟁’이었기에, 돌발행동으로 퇴장 당한 베컴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망친 원흉이 되어버렸다. 도를 넘는 인신공격이 장기간 이어졌고 수많은 파파라치가 달라붙어서 괴롭혔다. 베컴의 심신은 극도로 위축되고 시나브로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이때 클럽감독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경이 취한 조처는 여론 몰매를 차단할 수 있는, 팬들의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섬'을 만든 것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베컴을 훈련장으로 들어오게 했고 베컴을 위해 울타리를 쳐줬다. “너를 위한 완벽한 섬을 내가 만들어 주겠다. 여론이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잊어라. 창문도 없고 문도 없는 이 섬에서 넌 우리 가족(맨체스터 유나이트 선수)들만 보고 살아라”고 했다. 이후 베컴은 눈부신 활약으로 1998-99시즌 맨체스터 유나이드의 트레블 달성을 이끄는 주인공이 되면서 멋지게 시련을 극복했다. 프리미어리그, FA컵, 유럽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우승하는 트레블은 맨유 역사상 최초의 업적이었다. 실력으로 원흉이란 딱지를 보기 좋게 날려버리고 다시 영웅으로 돌아온 베컴은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동안 세 번의 리그 도움왕에 올랐고 맨유에서만 해트트릭을 9회나 기록하는 등 전설적인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그대는 당당한 위너(Winner)다! <월간바둑>은 3월호 표지인물로 당연히 LG배를 석권한 변상일 9단을 내세웠다. 그런데 의당 뒤따르는 ‘커버스토리’를 이번호엔 싣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시점 외부에 노출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게다. 또 구설에 오를까봐 최대한 몸을 움츠리는 게 느껴져 더 마음이 아프다. 홍민표 국가대표 감독도 자주 접촉하며 여러모로 신경을 쓰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다 보니 웅크러들고 부담감을 쉬 떨쳐버릴 순 없겠지만, 그럴 필요 없다. 그대는 당당히 싸웠고 정당하게 이긴 ‘파이널 위너(final winner)’다. LG배 챔피언이다. 그러하니 더는 동굴 속에 머물 이유가 없다. 심판에게 고성과 삿대질을 섞어가며 거세게 항의하고 이도 모자라 대국장을 박차고 떠난 패자도 자기나라로 돌아가 라이브방송을 통해 자기목소리를 내거늘 어찌하여 부끄러움을 우승자의 몫으로 감내한단 말인가. 이쯤에서 한번 더 들려주고 싶다. 줄타기 곡예사 칼 왈렌다(Karl Wallenda)의 이야기를. 승부사에게 진짜 문제는 외부보다는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는 걸 수많은 기사를 보면서 느껴왔다. 칼 왈렌다는 1978년 푸에르토리코에서 23미터 높이의 줄타기 공연을 하다가 떨어져 생을 마감한 전설적인 줄타기 곡예사다. 줄 아래에 보호망을 설치하지 않고 생명을 걸고 줄을 탄 곡예사로 유명했는데, 그가 죽은 뒤 그의 아내가 한 증언은 자신감에 대한 교훈을 일깨워 준다. “칼은 그 줄타기를 하기 전 3개월 내내 이상하게도 떨어지는 것을 생각했다. 남편은 예전에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줄 위에서 걷는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떨어지지 않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것처럼 보였다.” 손흥민 선수의 이 인터뷰도 들려주고 싶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초심으로 돌아가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토트넘에서 첫 시즌은 정말 힘들었어요. 저에겐 웃는 얼굴로 즐기는 축구가 가장 중요했지만 첫 시즌은 그렇지 못했어요. 가끔 저는 자신에게 지나치게 가혹할 때가 있어요. 그게 지금 저를 여기 있게 해준 이유고 그 엄격함이 스스로 더 나아지기 위해 필요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곤 하세요. 흥민아, 어릴 때 축구 처음했을 때 어디서 시작했는지 생각해봐. 근데 너는 지금 어디 있어? 그냥 즐겨라. 절대 미소를 잃지 마라.” 멀리 길게 보면 이것도 다 바둑의 일부다. 변상일 9단의 장점 중 하나가 외부 일들에 무신경하고 무덤덤하다는 것 아닌가. 세상물정 모른 채 오직 바둑에만 골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 어깨에 묻은 검불 털어내듯 툭툭 털어버리고 특유의 빙긋웃음을 보여달라. 아무리 기분 좋아도 깔깔대거나 함박 웃어 보이는 법이 없다. 웃는 듯 마는 듯 슬며시 흘리기만 할 뿐인, 자신의 어눌한 말투마냥 우물거리는 특유의 그 웃음 말이다. 그걸 보고 싶어하는 무수한 섬들, 바둑팬들이 그대를 지키고 있다는 걸 절대 잊지 마시라. 그대는 당당한 위너다! 챔피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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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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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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