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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훈 九단의 “목숨을 걸고 둔다!” - 바둑과 경영 (2)
<제2강> 프로정신에서 기업가정신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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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이 글은 ‘SERI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양상국 九단이 ‘바둑, 경영을 만나다’란 주제로 바둑이 지니고 있는 경영적인 요소에 대해 강의한 내용입니다. 최근 사이버오로에서 <양상국 바둑사랑 55년>을 발간하면서 전편(총 15편)을 실은 바 있고, 이 가운데 월간『바둑』의 요청으로 강의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 적도 있습니다. ‘바둑과 경영’이란 큰 카테고리로 묶은 글이기는 하나 내용은 조훈현이나 조치훈, 이창호 같은 세계적인 기사들의 승부에 얽힌 에피소드와 바둑동네의 생생한 이야기를 곁들여가면서 바둑 속에 들어 있는 경영적인 면모를 살펴보는 것이므로 나름 읽는 맛이 있을 겁니다. 이미 많이들 알고 계신 내용일지언정 이 연재를 통해 바둑사를 반추하면서 긴 설연휴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사이버오로 회원을 위해 10편을 골라 명절연휴 기간 연재합니다. 모쪼록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사이버오로 임직원 일동 배례(拜禮). ○● 설특집/ 바둑과 경영 (1) 프로정신에서 기업가정신을 배운다 - 후지사와 九단의 “4판만 이긴다!” ☜ 클릭  <제2강> 프로정신에서 기업가정신을 배운다 조치훈 九단의 “목숨을 걸고 둔다!” 오늘은 ‘괴물’ 후지사와 九단과 ‘집념의 승부사’ 조치훈 九단 두 사람이 펼친, 바둑사에 길이 남을 대결을 복기해 보도록 하죠. 1983년 1월 13일, 마침내 올 사람, 27세의 조치훈 九단이 제7기 기성전 도전자로 왔습니다. 1980년 일본기전 랭킹2위 명인(名人) 타이틀에 이어 1981년 랭킹3위 기전인 본인방(本因坊) 타이틀까지 거머쥔 조치훈 九단은 일본바둑 최고 실력자로 등장했습니다만, 랭킹1위 기전인 기성(棋聖) 타이틀을 공략하지 못하고서는 실질적인 일인자로 인정받을 수 없었습니다. 1기에서 6기까지 타이틀을 사수하고 있는 후지사와 九단을 끌어내리지 못하고서는 진정한 세대교체를 이뤘다고 말할 수 없지요. 최강의 도전자를 맞이한 후지사와 九단의 기백도 대단했습니다. 그는 도전1국 전야제에서 “마치 기다리던 애인을 만난 기분”이라며 뜨거운 승부욕을 보이면서 “네 판만 가르쳐 주겠다”고 호언했습니다. 4-0으로 이기겠다는 말이지요. 이에 조치훈 九단의 응수도 재미있었지요. “당대 일인자인 슈코 선생한테 배우게 되다니 정말 행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판이 라도 더 많이 배우기 위해서 3승만은 하고 싶습니다.” 3승을 하고 싶다는 건 막판(7국)까지 가겠다는 표현인데, 이 말이 우리나라에는 “세 판만 배우겠다”고 말한 걸로 소개돼 더욱 팬들을 열광시켰죠. 어쨌든 조치훈 九단은 대선배 앞에서 4대3으로 이기겠다는 결의를 이렇게 에둘러 표현한 겁니다.  ▲ 조치훈 九단(왼쪽)과 후지사와 九단의 7기 기성전 도전7번기 최종국 종국 장면. 이 대국에서 도전자 조九단은 먼저 3연패를 당한 후 내리 4연승을 거두는 투혼을 발휘하며 일본 빅3(기성·명인· 본인방) 타이틀을 한손에 거머쥐는(대삼관 달성) 첫 기사가 됐다.
3연패 후 4연승의 대역전 드라마 초반 흐름은 후지사와 九단의 장담대로 되는 듯했습니다. 이번만큼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조치훈 九단이 뜻밖에 내리 3패를 당한 것입니다. ‘과연 괴물 슈코!’라며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막판에 몰린 조치훈 九단의 심정은 ‘한 판도 이기지 못하고 물러난다면 지금까지 쌓아올렸던 것이 한꺼번에 무너질 것” 같았기에 “정말 한 판이라도 이기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심정으로 도전4국부터는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고 마음을 비우고 두면서 거짓말같이 3연승을 올렸고, 결국 승부는 최종 7국으로 넘어갔습니다. 자, 운명의 도전7국. 백을 잡은 조치훈 九단이 들고 나온 포석은 양 3·三. 바둑판 양 귀퉁이 3의 三 좌표의 곳에 착점하는 포진을 말하는데, 소목이나 화점에 비해 위치가 지나치게 낮아서 극단적인 실리바둑을 구사하는 기풍이 아닌 한 기사들이 잘 쓰지 않는 포석입니다. 그런데 절체절명의 막다른 승부에서 이 수법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양 3·三 포석은 조치훈 九단이 반드시, 꼭 이기고 싶을 때 구사하는 필승포진입니다.  ▲ "오직 이 한 판이다!" 할 때 들고 나오는 조치훈 九단의 필승포석. 백2와 4가 양 3·三 포진이다.
이렇듯 비장한 각오, 결연한 자세로 대국에 임했지만 바둑의 형세는 흑(후지사와 九단)이 두터워 도전자(조치훈)의 비세였습니다. 양 3·三 전법은 실리를 취하는 데는 유리할지라도 대신 상대에게 두터움이나 세력을 허용하기에 바둑이 엷어지기 십상입니다. 아무도 후지사와 九단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형세였는데 종반에 이르러 흑이 ‘덜컥수’를 놓았고, 고전하던 조치훈 九단은 고공을 배회하던 매가 먹잇감을 낚아채듯 이를 놓치지 않고 극적인 백1집반, 역전승을 거두게 됩니다. ‘3 연패후 4연승’. 기적 같은 대역전 드라마가 펼쳐진 겁니다. 2007년까지 일본바둑사상 도전7번기 승부에서 3연패를 먼저 당한 후 4연승을 거둔 역전 드라마가 5번 등장했는데, 이 중 네 번이 조치훈 九단의 작품입니다. (2008년, 16년 만에 제63기 본인방전 도전 7번기에서 도전자 하네 나오키 九단이 타이틀 보유자인 다카오 신지 九단을 3연패 끝에 4연승으로 이기는 기록을 세우기는 합니다.) 왜 조치훈 九단을 ‘끈기의 화신’, ‘집념의 승부사’라 부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운이 따라준 면도 있겠지만 승부세계에서는 운도 실력입니다. 운이란 준비된 자, 주어진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자에게 더 많이 주어지는 법입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휠체어 대국’ 자, 여기서 아래 사진을 한번 봐주시기 바랍니다. 이 사진을 기억하시는지요?  ▲ 바둑사상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보기 힘들 ‘휠체어 대국’에 세계가 전율했다
그렇습니다. 1986년 1월의 저 유명한 휠체어 대국 장면입니다. ‘목숨을 걸고 둔다!’는 조치훈 九단의 승부정신을 이 한 장의 사진보다 더 생생하게 설명할 방법이 있을까요? 바둑이 생긴 이래 이보다 더 치열하게 바둑을 둔 사람이 있을까요? 기성전 방어전을 열흘 가량 앞둔 1986년 1월 6일 자정 무렵, 조치훈 九단은 평소와 다름없이 바둑공부를 하다 밤참 생각이 나서 집밖에 나섰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처음 병원에서는 전치 3개월이라고 진단했으나 4시간에 걸친 수술을 끝낸 뒤에는 생각보다 심각하다며 전치 6개월 이상을 요하는 중상이라고 수정 발표했습니다. 절대안정을 취해야하는 중환자이기에 담당의사는 당연히 이 몸으로는 대국이 불가하다는 판정을 내렸고 주위에서도 도전기 첫판만큼은 부전패로 하자고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조치훈 九단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기권이란 없다. 기권을 하느니 차라리 바둑판 앞에서 죽겠다. 아직 내게는 머리와 두 눈, 오른팔은 멀쩡하다. 이것은 바둑을 두라는 하느님의 계시다.” 결국 기성전 주최사인 요미우리 신문사가 마련한 특별기를 타고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조치훈은 병원용 침대에 누워서 대국지인 도야마(富山)로 이동했고 1월 16일, 마침내 바둑사에 전무후무한 휠체어대국을 선보입니다. 관우가 명의(名醫) 화타에게 독화살에 상한 왼쪽팔을 맡기고 태연히 부장 마량과 바둑을 뒀다는 삼국지의 얘기는 익히 들었어도 이 같은 중상을 입고 휠체어에 의지해 바둑판 앞에 나선 기사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도전1국은 예상대로 조치훈 九단이 완패하고 말았습니다. 린 하이펑 九단은 “7번기는 마라톤과 같은 것. 중상을 입은 몸으로는 견딜 수 없다”고 고개를 흔들었습니다만 이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조치훈 九단은 오른쪽 다리를 재수술 받은 뒤 나선 도전2국에서 마지막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정확한 수순으로 도전자를 압도하며 완승을 거둔 데 이어 3국마저 이겨 2대1로 역전시켜 버립니다. 비록 이후 4, 5, 6국을 연패해 토털 2대4로 기성 타이틀을 넘겨주기는 합니다만 이 정도의 파이팅만으로도 초인적인 일이라 다들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 1962년 여섯 살 나이에 작은아버지 조남철 九단의 손을 잡고 도일한 조치훈은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기타니도장 문하 100단 돌파를 기념하는 행사장으로 직행해 린 하이펑 五단과 특별기념대국(5점 지도기)을 두었다. 그만큼 일본바둑계는 한국에서 온 바둑신동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실제 이 꼬마는 18년 뒤 일본 명인 타이틀을 따며 정상에 올라선다.
 ▲ 어린 동생이 경솔하게 둘까봐 걱정한 형 조상연(왼쪽 관전하는 옆모습)의 조언을 듣고 내내 팔짱을 끼고 대국한 꼬마 조치훈. 그 옆에 작은아버지 조남철 九단의 모습도 보인다. “지고도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우리말도 채 익히지 못한 여섯 살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열한 살에 일본기원 최연소 입단기록을 세운 조치훈은, 이후 二단에서 五단에 오르기까지 승단대회에서 37연승의 신기록을 세운 바 있습니다. 이때 문예춘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난 五단이 되려고 일본에 온 사람이 아니다”고 말해 일본팬들로부터 건방지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으나, 이는 그가 얼마나 가슴 깊이 명인에 대한 꿈을 품고 자신을 채찍질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일 뿐입니다. 조치훈이 열여덟 살 때 일본기원선수권자인 사카다(坂田英男) 九단에게 도전해 먼저 2연승을 거두어 놓고도 3연패로 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청년 조치훈은 분하고 자책하는 마음에 밤새 울면서 혼자 사는 아파트까지 걸어갔다고 합니다.  ▲ 일본기원선수권전에 도전하던 무렵의 조치훈 九단 모습.
그의 바둑에 대한 열정,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이틀에 걸쳐 벌이는 도전기에서 종종 첫날 초반 50수도 채 두지 않은 시점에서 주어진 제한시간 8시간을 다 소비하고 늘 초읽기에 몰리는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꿈은 확고한 뜻을 세우고 치열하게 준비하는 자만이 이룰 수 있는 겁니다. 창업도 경영도 ‘목숨을 걸고 두듯’ 뼈를 묻는 심정으로 펼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돌아갈 곳을 머릿속에 그려놓고 창업하는 사람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직 내게는 생각할 수 있는 머리와 바둑을 둘 수 있는 오른팔이 남아있다”는 조치훈 九단의 단호한 출정 의지를 보면서, 그간 힘든 상황 앞에서 경기 불황과 어려운 외부 여건 탓만 해온 건 아닌지, 우리 기업인들은 한 번쯤 되물어 봐야 할 것입니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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