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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적시는 김수영 7단의 '투병대국'
두려움은 없습니다. - 용기잃지 않는 김수영 7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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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프로기사 김수영 7단의 투병 대국이 팬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  70년대 TBC 시절부터 현재 바둑TV 등 바둑 전문 방송에 이르기까지 유창한 언변과 재치있는 해설로 사랑을 받아 온 원로 기사 김수영 7단(61).그러나 그는 현재 췌장암이라는 병마와 하루하루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 제9회 LG배 통합예선 1회전을 두는 김수영 7단의 착점 모습.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토가 나더니 체중이 한달 새 근 25kg가 빠지더군요. 통증이 심해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밤을 새워야 했습니다. 병원에 가도 별 이상이 없다고 하고..." 이달 초 최종 컴퓨터단층 촬영 결과 원인이 밝혀졌다. 청천벽력의 췌장암 말기. 수술조차 불가능한 최악의 상황이었다. 병원 측에서는 항암 치료를 권했지만 김7단은 거부했다. 바둑판 위에서 평생 미학적 행마로 일관해 온 터라 항암 치료로 인해 더 이상 자신이 피폐해 지는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노 승부사로서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지난 해부터 기독교에 귀의한 그는 깊은 산이라도 들어가 삶을 정리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스승 조남철 9단의 사모님으로부터 온 전화 한통이 그의 마음을 돌리게 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병에 걸린 것을 모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사모님께 유언을 남기듯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해요. '내가 죽거든 모든 것은 수영이하고 상의해서 처리해라.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는 굵은 눈물을 흘렸다. 부모와도 같은 스승이 아니던가. 올해 82세의 스승보다 먼저 죽는 불효를 저지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는 이를 악 물었다. 죽어도 바둑판 위에서 죽겠노라고. 지난 21일 제10회 LG배 세계기왕전 통합예선장에 그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모습을 드러냈다. 독한 진통제와 구토약 기운에 당장이라도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는 한 판의 공식대국을 모두 소화해냈다. 김 7단은 당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대국장에 나올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4월 1일. 그는 제39기 왕위전 예선전을 치르기 위해 한국기원에 나왔다. 평소 당당한 체구였던 김7단이었지만 홀쭉한 뺨과 구부정한 허리, 느릿한 발걸음에서 완연한 병색이 느껴졌다. 하지만 표정은 밝았다. 몸은 좀 어떠시냐고 물으니 그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암도 결국은 내 일부가 아니겠습니까. 싫든 좋은 같이 가야죠. 그러다 정히 미안해 떠나 주면 고마운 일이고..." 김 7단은 오는 9일 아들의 결혼을 맞는다. 장남인 김창민(35)씨는 주목 받는 프로골퍼이기도 하다. "(바둑을) 둘 수 있는 한 둘 것이고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대국 시간이 다 되었다며 대국장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그는 어느새 말기 암환자의 병약한 모습이 아닌, 불꽃처럼 타오르는 승부사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지금 암과 바둑, 그리고 자신을 상대로 한 마지막 승부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두려움 없다-용기 잃지 않는 김수영 7단  "근심을 끼쳐 죄송합니다." 췌장암이란 병마와 싸우며 하루 하루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김수영 7단(61)은 연합뉴스 기자와 대면을 하자 이 처럼 말을 꺼냈다.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1일 한국기원에 나와 장주주 9단과 제39기 KT배 왕위전 예선 대국을 벌였다. 이달 초 암 판정을 받은 이후 LG배 세계기왕전 통합예선에 이어 두 번째 공식대국이었으나 아쉽게 승리를 일구지는 못했다. 일반인들에게는 바둑 해설자로 잘 알려진 그는 아무리 나이 어린 사람일지라도 하대하는 법이 없이 살아왔다. 늘 환한 미소와 함께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하는 그를 두고 과공(過恭)이라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지만 그렇게 평생 사람을 존중하고 사귀며 살아 왔다. "통증이 오늘따라 심합니다. 길게 얘기를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7단은 누워서 잠을 청해본 지 오래 되었다고 한다. 췌장암의 고통은 아는 사람만이 안다는 것. 폐암과 함께 극심한 고통으로 악명이 높은 것이 췌장암이고 누우면 고통이 배가된다 한다.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량의 진통제 복용과 함께 마치 스님들의 참선자세처럼 꼿꼿이 앉아 있는 것. 몇달째 앉은 자세로 밤을 새우고 있다는 김 7단은 "내가 죽어 화장을 하면 사리가 나올지도 모른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김 7단은 대국 중 잠시 짬을 내 요즘의 심경과 근황을 들려주었다. 다음은 김 7단과의 일문일답. --공식대국을 치른다는 것이 힘겨울 텐데 오늘 바둑은 어떤가. ▲포석은 잘 되었는데 아무래도 집중이 잘 안 된다. 통증도 심하고. 약 기운에 정신도 몽롱하다. 오후에 다른 스케줄이 있어 형세가 좋다고 해도 던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후 스케줄이라면 어떤 것인가. ▲서초구민 회관에서 열리는 조남철 경로바둑교실에 나갈 일이 있다. 지난 96년부터 노인들을 대상으로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두 차례씩 바둑을 가르치고 있는데 오늘이 그날이다. 몸은 아프지만 어르신들이 기다리실 생각을 하면 가지 않을 수 없다. --췌장암 말기로 상당히 병세가 위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췌장암은 암 중에서도 고통이 심한 병으로 장기가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있다. 하지만 마음은 담담하고 두려움이 없다. 많은 분들이 찾아와 용기를 주셨다. 내가 프로기사 생활을 꼭 43년 6개월간 했는데 요즘 들어 내가 그래도 헛되게 살지는 않았구나하는 마음이 든다. 기쁘다.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있다는데. ▲내 몸에는 암이 들어 왔다. 그리고 커졌다. 나는 근 몇 달간 거의 먹지도 자지도 못해 이미 몸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상태다. 암을 죽이려고 독한 약을 쓰면 견딜 수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바둑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상대의 대마를 무리하게 잡으러 가다가 오히려 이쪽이 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일단 암이 들어왔으니 더불어 잘 지내자는 마음이다. 그러다 제 놈이 미안한 마음에 나가주면 고마운 일이고... --바둑이 투병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물론이다. 나는 두려움이 없다. 두려움이 있으면 진다는 사실을 나는 바둑으로부터 배웠다. 평생 불교를 믿던 나는 지난해 연말부터 집사람 권유로 교회에 나가고 있다. 이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있다. 바둑에 비유하자면 지금 나는 상대방으로부터 대마가 몰린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 대마는 죽지 않았다. 천지대패(승부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패)가 났다. 위기 상황임에는 틀림없지만 냉정히 대처하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스승이신 조남철 선생님, 그리고 조훈현 9단, 이창호 9단, 유창혁 9단 등 바둑의 거장들은 대국에 임할 때 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모든 것은 하늘이 알아서 할 일이다. [서울/연합통신 - 양형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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