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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는 거저먹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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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한 바둑을 역전시키는 것보다 유리한 바둑을 지켜내는 것이 더 어렵다’. 한판을 승리하기까지는 힘들고 먼 여정. 쉬이 갈 길을 매몰차게 다그치다 구렁텅이에 빠지고, 매조지할 장면을 안일한 자세로 추격을 허용한다. 유리한 쪽에서는 어렵게 풀어나가도 안 되고 느슨해도 곤란하다. 이래저래 질타를 받는다. 마(魔)가 끼었다, 패신(敗神)에 홀렸다는 넋두리를 늘어놓지만 근본 원인은 스스로의 마음가짐. 상대를 이기려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먼저 이겨야 한다. 첫 돌을 놓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방심은 금물이다. 유리한 국면을 닦아나가는 힘,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제9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5번기 제2국 ○장쉬 9단(일본) ●위빈 9단(중국) - 장소 : 상하이 왕바오허호텔 - 날짜 : 2005. 03. 30 - 결과 : 242수끝, 백1집반승 장면1 (문제의 헤딩) 1국 때도 그랬듯 장쉬는 초반에 커다란 문제점을 드러냈다. ▲의 침입을 둘러싼 공방에서 백1로 헤딩한 수가 과잉 의욕. 과연 일본 일인자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난조의 구렁텅이 속으로 급격히 빠져든다. 실전진행1 (실속없는 악수 연발) 이해하기 어려운 행마가 거듭된다. △는 흑1과 교환돼 대악수. 장쉬의 당초 구상은 위쪽에 힘을 쌓은 뒤 ▲를 압박할 방침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일 그랬다면 백6은 대체 영문을 알 길이 없다. 14까지는 △, 2, 4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천하의 대악수. 흑은 양쪽을 다 둔 모습이다. 참고도1 (단순한 붙임)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곧장 머리를 붙여가는 이 그림과 비교해 보자. 실전에서 장쉬가 얼마만큼 이적행위를 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흑을 뻗게 해준 자체가 실리 면에서 상당한 손해일뿐더러 A를 엿보며 백B로 다가서는 수를 없앴다. 참고도2 (변화도 OK) 다른 변화를 생각한다면 흑이 4쪽으로 뚫고나오는 수인데 적당한 때에 백A 한수만 활용하면 그만이다. 실전처럼 여러 수에 걸쳐 이적행위를 미리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곳이었다. 참고도3 (밑붙임) 잔뜩 악수를 둔 이상, 그 수들의 체면을 조금이라도 살리기 위해서는 ▲를 좀더 강하게 핍박하는 수단을 짜내야 했다. 한 가지 예로 아래쪽으로 붙여가는 백1. 이에 대해 흑2로 움직이는 수는 백9로 씌움당하므로 불가하다. 참고도4 (흑2가 호수) 혹시 백1로 막을 작정이었던 게 아닐까. 이것은 흑2 한방에 무너져 내린다. 상하 백을 분단시키는 효과를 지닌 흑2. 이 수로 그냥 4, 6으로 몰고나가는 것은 백A, 흑B, 백C로 건너서 백도 안심이다. 장면2 (구차한 도강) 뜻밖의 횡재를 한 위빈. 푸근한 기분에 방심이 움텄다. 무사안일주의로 질 수 없는 판을 망가뜨리고 만다. 아직은 드넓은 반상. 영토 확보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야 할 마당에 2선을 넘어간 흑1. 이건 ‘목숨만…’ 하는 태도나 다름없다. ‘승부는 거저먹기가 아니다’라는 승부사 서봉수의 경구가 생각나는 장면. 실전진행2 (공터가 옥토로) 한국이 빠져 흥미가 반감된 데다 내용 또한 밋밋해서 이번 결승전은 역동감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바둑의 자존심 장쉬. 상대방의 완착이 있었지만 그 틈을 타서 공터였던 우상일대를 개척한 수순은 모처럼만의 활기찬 동작이었다. 참고도5 (우상 주인은 흑) 흑1이 승리를 확정짓는 요처. 우중앙의 주인은 흑이 된다. 하변쪽은 백A가 싫었겠지만 흑B면 거의 연결 형태. 집이 약간 깨질 뿐이지 공격당하면서 잃을 건 없다. 무엇보다 우상에 흑의 두터움이 쌓이면 백은 그곳을 견제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이 밖에도 위빈의 안일한 태도는 곳곳에서 감지됐고, 평정을 잃은 듯 절대선수를 미루다 역끝내기를 얻어맞으며 뼈저린 역전패로 이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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