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수(好敵手)의  유형 5A

                                                                                                         저니

바둑에서 호적수(好敵手)라 하면 알맞은 상대요, 좋은 맞수라는 뜻이다.

호적수와의 만남은 언제나 서로의 가슴을 떨리게 하며 기쁨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호적수는 항상 나에게 내가 특별하다는 것과 그 이유를 알게 해준다.

이 호적수를 분석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상당히 함축적이고 의미있는 결과로 아래

정리된 다섯가지 유형으로 요약해 보았다.

-Appreciation(감사)-

첫번째 유형은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서로를 신뢰하며 표현할 수 있는 상호의존의

관계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부터 부모에 의존한다. 자라면서 친구에 의존하고 결혼해서

아내에 의존하고 남편에 의존한다. 나이가 들면 자식에 의존하고 더 나아가 신에 의존한다.

이 의존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하고 기대는 관계가 아니다. 어린왕자의 저자 쌩텍쥐베리가

"인간은 상호관계로 묶여지는 매듭이요, 거미줄이요, 그물망이다. 이 인간관계만이 유일한

문제다"라고 말했듯 바둑판의 호적수는 서로에 묶여진 인간관계의 매듭을 풀어가는 적으로

만난 익숙해진 동지이다. 호적수의 가장 깊은 속내는 서로 칭찬하기를 꺼리는 반면에

칭찬받기를 열망하는 것이다. 이 관계는 상호의존이며 그것은 서로에 대한 감사가 내재

되어있다.

-Ask(질문)과 Answer(답)-

두번째 유형은 바둑판에서 정석의 변화, 포석, 중반, 종반 끝내기 전과정에서 상대에게

나의 계획과 희망, 즐거움 그리고 걱정을 응수타진(應手打診) 하는 질문의 관계이다.

형세의 갈림길에서 그다음 무엇을 해야할지 확신이 서지 않을때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면 누군가 다가와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적절한 대응을 하도록 한다.

바로 그 누군가가 나의 호적수인 것이다. 나의 질문에 "내가 무엇을 도와줄 수 있겟소?"

하고 답을 하는 상대의 응수는 나의 현재가 어떻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장차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Affection(애정)-

세번째 유형은 끊임없는 대화로 관심을 나누는 친밀한 관계이다. 부부관계에도 애정의

척도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친밀함을 기준으로 한다면 많은 싸움을 하게 된다. 전화통을

붙잡고 이러쿵 저러쿵 한바탕 수다를 떨어놓아야 스트레스가 풀리고 친밀도가 유지되는

사람에게 전화를 끊어버린다면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하다. 인터넷 바둑으로 가까워진

호적수를 오프라인에서 만났을 때 그 거리를 조정하지 못해서 멀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경우에는 그간 서로에 대한 관계가 친밀하게 유지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물리적인

거리로 완충된 것이므로 현실에서 상대의 프라이버시의 거리를 완만히 좁히는 것이 요구

되어진다.

-Attention(주의)-

네번째 유형은 나에게 영감을 주는 멘토이자 가이드의 관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관계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반면에 나에게 좋은 호적수는 나의 변화를 요구한다.

변화 자체는 많은 갈등을 야기한다. 바둑판의 수 많은 변화도는 결과를 내 머리속에

머물도록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갈등 안에는 수 많은 타협 또한 존재한다.

타협은 변화의 결과를 물리적으로 양분하지 않고 비관적인 상황에서 낙관성을 발휘

하게 한다. 나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상대야말로 부정적인 장애물이 아니라 내 스스로

변화를 선택하고 스스로 결정하도록 주의를 주는 좋은 호적수 이다.

-Affirm(긍정)-

마지막 유형은 승부만을 겨루는 관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독립적 존재로 긍정적

으로 인정해 주는 관계이다. 맞수로서 상대방과 다양한(?) 힘을 겨룬다. 바둑 실력으로

뿐만 아니라 기운차게 거침없는 입심으로 상대방의 기(氣)를 죽이려 들기도 하고 구경꾼

들이나 주변 친구들의 호응을 긍정적으로 끌어내기도 한다. 영화 글래디에이터(Gladiator)

의 한 장면에서 민중이 악연의 코무두스와 막시무스를 맞수로 만든 것처럼 두 사람의 투지의

불꽃이  관전자의 열광 속에서 하나의 아름다운 영화로 전율하게 만들었다.

이상의 다섯가지 유형은 비단 호적수에 적용되는 키워드가 아니다. 서로간에 건전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이야기이다.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내가 상대에게

좋은 호적수가 되는 것은 상대에게 그가 특별하다는 것과 그 이유를 알게 해주면 된다.

2008년 기축(己丑)년 새해 벽두(劈頭). 나의 맞수에 감사하고 애정과 긍정하고 인정하는

속에서 발전적인 변화를 함께 모색하는 내가 되길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