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동 부르스 (1)

                                                                                                 저니

  직장생활을 16년하고 나니 직장에 진저리가 났다.

 그때 그때 변신할 요량으로 바꾼 직장만도 대 여섯 군데이니 이정도면

 이력서를 써도 덕지 덕지 늘어진 것을 훈장이라고 자랑할 요량도 생기지 않는다.

염병할 내가 사장하고 만다 하고 회사문 박차고 나오니 막상 할 것이 없다.

양재동에 선배 두분이 계시는데 직장 잠깐 쉴때 들어가서 놀던 아지트이다.

두분 다 각기 하는 일은 다르다. Y선배는 주식을 쌀로 바꾸는 주식투자가 이시고

 K선배는 사무실 밖으로는 거의 나가지 않으면서도 국제 운송을 하신다.

난, 무슨일을 하느냐고?

나는 집에서도 하지 않는 설거지가 이곳에서의 나의 책무이다.

점심 시간이 가까이 오면 Y 선배가 집에서 공수해 온 신선한 식자재로

K선배가 요리사로 변모해서 청국장이다 김치찌개다 심지는 부침개까지 부쳐서

진수성찬으로 점심을 때우고 나면, 나는 그릇을 모아 설거지를 하는 것이

그날 가장 중요한 일과이다.

비빔밥이나 볶음밥을 하면 설거지의 양은 급격히 줄어서 후라이팬 하나에

숟가락 젓가락 몇개 딱으면 그만이지만, 계란 후라이까지 별도로 부치고

반찬가지 수가 늘어 그릇수라도 늘어나면  요즘 처럼 추운 겨울에 더운물

나오지 않는 세면대 위에서 나의 부드러운 손가락은 주부습진 초기 증상을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 따르게 된다.

손가락이 굵고 짧아서 송구공 하나도 제대로 잡고 던지지 못하지만

피부만큼은 여느 여인네 속곳보다도 부드러워서 내심 위안을 하고 있었는데

요즘 나의 피부는 더이상 섬섬옥수가 아니다.

'거칠어진 손마디가 안스러워~ ' 유행가 가사에 눈물이라도 왕창 쏟아내고

코끝이 찡해져야 한이 풀릴 기세이다.

가끔 안되보였는지 두 선배가 옷을 걷어붙이고 나서면, 나는 손사래를 치고

"제가 나와서 오직 하는 일이 이 일인데 뺏으면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

하고 나서고 부터 나는 양재에 묻혀 밥통을 유희하고 밥그릇을 희롱하는

세재의 거품속에 빠져사는 주부가 되었다.

일단 주부가 되면 잔소리가 심해지는가 보다.

"야 숟가락 너 ! 불만있냐? 왜 나의 손길을 거부하고 밥풀과 놀아나는 거야? !!"

" 후라이팬!  그대는 왜 기름때에 찌든 삶을 청산하길 거부하는고? "

차가워진 손끝에서 비명소리도 달래야 한다.

"키보드만 두드리지 말고 얘네들좀 달래봐라..길게 끌어봐야 네 손가락만 튼다.."

뭐 불만 가득할지라도 그렇게 한바탕 소란을 떨고나서 마시는 커피믹스 한잔.

세상에 어떤 보너스나 보상보다도 행복하다.

고생한 것은 손인데 누리는 것은 혀끝이니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사람이

번다는 말이 떠오른다.

오늘 재주만 곰처럼 넘는 나의 손가락에게 로션이라도 듬뿍 선물해주어야 겠다.

점심의 진수성찬에 혀끝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분노해서 쿠테타나 파업이라도

벌이면 큰일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