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정방폭포에서...

                                                        저니

국제혁신포럼에 초대를 받아 따뜻하게 몇 일 잘 놀고 먹고 올 생각으로

속옷 몇가지만 챙겨서 떠난 제주도.

제주에 도착하니 흔치 않은 눈이 내립니다.  "아 춥다 !"

여태껏 한번도 들어가보지 못한 신라호텔 객실에 들어가니 입이 딱

벌어집니다.  서울 촌놈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집에서도 차지하지 못하는 더블침대에 아이들 처럼 몸을 던집니다.

포럼이고 나발이고 첫날 부터 놀러다닐 구실을 찾으려 했었는데

소위 밥값은 해야 겠다는 의무감이 들더군요. '박수부대 하러가자..'

회의장에 들어서니  얼굴 까맣고 허연 친구들이 도통 알지도 못하는

대화들을 하는데 아는 척하기도 그렇고 해서 귀에다 통역기를 푹 꽂고

박수칠 때만 기다립니다.

같은 한국사람들 자리면 바로 눈을 지긋이 내려 깔고 잠이라도 청할텐데

이거 자다가 코라도 골면 국제적 망신인지라 졸린 눈을 왕방울  만하게

부릅뜨고 책상 위에 놓인 필기도구로 무의식적으로 적습니다.

적자생존....적는자는 졸지않고 생존한다는 신념으로...

저녁 때부터 저녁식사를 주는지라 점심을 해결할 요량으로 호텔내에

한정식집에서  들어갔다가 메뉴판의 가격표를 보고 '범 본 놈 걸음아

나살려라' 튀어 나와서 빵집에서 이천원짜리 빵두개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웠지만, 졸음을 참는 데도 에너지가 소비되는지 뱃속에서

아우성치는 소리와 통역기에서 나오는 여자 목소리가 오케스트라와

소프라노와 같은 하모니를 연주합니다.

연사의 마지막 멘트에 온몸의 내공을 실어 박수를 치고 비로소 밥값을

했다는 안도감과 박수에  죽어나간 세균들이 정화되는 뿌듯함.

하지만 이어진 저녁만찬에 대여섯개 나 되는 포크와 나이프 에 간지럽게

나오는  이름모를 음식들은 어제 저녁 먹은 청국장 한 숫가락을 간절하게

합니다.

사실 놀고 먹는데에 촛점을 맞추어서 글을 쓰긴 했지만, 너무 많은 것을

얻고 배웠습니다. 앞서가는 사람은 남의 길을 따라가지 않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자리를 했던 사람들을 이해하는 시간은

저의 미래를 소유하는 비전으로  벅찬 감동을 갖게 했습니다.

언제 또 이런 자리가 있으면 부급추사불원천리 (負笈追師 不遠千里)

찾아 갈 것을 다짐해봅니다.

                                      정방폭포에서

                                                                  저니

                      귓전 가득 전해지는 무현금성 (無絃琴聲)

                      낭군을 부르는 아낙네 속삭임.

                      한라산에 품은 희망  바람되어

                      만선(滿船)과 사라진 애닯은 눈물. 

                     천상(天上)에서 떨어지는  두 물줄기

                     운곡(雲谷)을 가르며 바다를 달랜다.

* 부급추사불원천리 (負笈追師 不遠千里)

    - 스승이 있다면 책상을 메고 천리가 멀다 않고 쫓아간다.

* 무현금성 (無絃琴聲) 현이 없는 거문고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