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II

                                                                                              저니

양재천 변을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뜩, 문화촌 꼭대기 무허가 판자촌에서 살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세검정에서 문화촌으로 흐르는 개울이 넓게 펼쳐지는 문화촌 다리 밑은

한겨울 얼음을 지치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돌아가신 작은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앉은뱅이 썰매는 동네 형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 될 만큼 세련되고 멋졌지만, 썰매를 다루는데는 어눌해서

그저 제자리에서 맴도는 수준였습니다.

그러나 두발이 겨우 올라갈만한 넓이의 서서타는 썰매를 타고 달리는

동네 형들을 보면서 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썰매의 문제인양 넋을 내놓고

보다가 송곳막대 한 짝을 그만 잃어버렸습니다.

그 막대를 찾으려고 이곳 저곳을 뒤졌지만, 서쪽하늘로 지는 태양을 원망하며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산꼭대기 집으로 올라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음날, 굴러다니는 막대기에 손톱이 부르트도록 힘겹게 못질을 하고

송곳막대 모양을 만들어서 스스로 대견스러워했는데 막상 얼음판에 가서

얼음을 지치려고 하니  뭉뚝한 끝으로는 썰매를 지칠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가슴으로만 애타서 동동거리며 그해 겨울을 보내던 어느날.

개울가에서 버려진 송곳막대 하나를 발견하고는

하며  얼마나 기뻣는지 모릅니다.

봄이 되자 문화촌에는 철거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철거반원 들이 들이닥쳐 아랫동네 집들부터 하나 둘 철거 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우리집 코앞까지 함마질 소리가 울리고 붉은 동그라미 표시가

동네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끝까지 버티던 부모님도 이삿짐을 꾸리기 시작했고 그토록 애착을

갖고 모셔두었던 나의 앉은뱅이 썰매와 짝이 서로 다른 송곳 막대는

얼마 안되는 이삿짐 속에서도 차지할 자리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썰매를 볼때면 그때 어눌하게 얼음을 지치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겨울이 붉도록 땀흘리며 뛰어놀던 산동네 어린 시절에 아쉬운 추억으로

아직도 떨리는 저의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끼면서....

회상 (I)

 
                       저니

무너진 축대의 돌들처럼

산동네 아이들은

그리 엉켜 뛰었다

겨울은 길기만 한데

하얀 슬라브 지붕이

붉도록 신이 났다.

아이들 고운 숨결에

검은 밤이 눈뜰까

달빛도 구름에 가리웠다.

이젠 무너진 축대는

긴 겨울 속에서

붉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