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일본 열도는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가장 바둑이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그 기간 동안 일본 바둑은 타국에서 온 두 천재 기사 때문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창옥여운(敞玉餘韻)』 한 권만 달랑 지닌 채 세고에(瀨越) 7단의 문하로 입문한 후 일본기원으로부터 즉각 3단의 면허를 수여받고 후일 20세기 불세출의 기성(棋聖)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오청원이라는 중국인이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비록 비공식적인 바둑이었지만 도일 후 내기바둑꾼이든, 전문기사든 상대가 그 누구라도 개의치 않고 30회 이상의 대국을 치르는 동안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연승을 함으로써 일본 바둑계에 불멸의 족적을 남긴 추평사라는 조선인이었다.

평사는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동경에서 오사카로, 오사카에서 교토로, 교토에서 히로시마로, 또다시 후쿠오카로 거기서 저 북쪽 아오모리항까지, 승부가 있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평사의 발길이 닿았다.

직업 내기바둑꾼에게는 공포의 대상으로, 전문기사들에게는 기피의 대상으로 평사의 승부를 향한 행각(行脚)은 그칠 줄을 몰랐다.

거칠 것 없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던 평사의 발길이 멈춘 곳은 산간 오지나 다름없는 북해도(北海島)의 오타루(小樽)라는 조그마한 중소 도시였다.

1930년 9월 어느 날, 아오모리항의 어느 고급 여관에서 평사는 게이오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내가 추선생의 기보를 기록한 이유는 추선생의 대국 기보를 저희 도장으로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저희 산쓰이(三遂)도장에서는 내가 보낸 추선생의 기보를 자세히 복기 검토해 보고 추선생 같은 기재를 지니신 분께서 한낱 내기바둑꾼으로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침 추선생이 아오모리항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 기회에 관장님께서 실례가 안 된다면 뵙고 싶다는 뜻을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게이오가 자신의 신분이 산쓰이도장 출신임을 밝힌다.

「산쓰이도장은 어디에 있소?」

마쓰모토가 물었다.

「홋카이도(北海島) 오타루(小樽)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본토의 기원 4가 즉 홍임보가, 하야시가, 야스이가, 이노우에가의 4가가 득세하던 100여 년 전에 창설되었으나 지역적인 여건상 큰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하야시가와 야스이가가 후세의 부재로 단절되고 호엔사(方圓社)가 창립된 와중에 산쓰이는 결국 빛을 보지 못하고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해 가고 있습니다.

최근에 일본기원이 창립되고 바둑계가 사실상 통일되었지만 혼슈(本州) 위주의 기원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별종으로 취급받는 실정이지요. 그렇지만 산쓰이 출신의 기사 몇 명은 관주님의 허락을 얻어 일본기원에서 기사 생활을 하며 성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저나, 전날 추선생과 대국을 한 마사오 5단과 같은 경우가 그와 같은 경로로 혼슈에서 기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산쓰이는 해석을 하면 세 가지를 성취한다는 뜻인데 그 뜻이 무엇이오?」

마쓰모토가 시큰둥하게 게이오를 향해 다시 물었다.

「참으로 좋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세 가지 중에, 바둑의 수양으로 도를 이루는 것이 첫째의 목표입니다. 둘째는 그 수양을 기반으로 기원 4가 이외에 또 다른 명문으로 일가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꿈은 야스이가와 하야시가가 단절됨으로 해서 유명무실해졌지요. 게다가 실제로 일본 기계를 통일한 일본기원이 탄생함으로써 그 목표는 상실된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셋째는 뛰어난 기재를 발굴 육성하여 언젠가는 산쓰이의 이름으로 일본 기계를 석권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관장님의 의중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추선생을 북해도로 초청하는 이유는 아마 그 세 번째의 이유가 아닌가 사료됩니다.」

게이오가 자세하게 질문에 답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게이오는 평사가 자신보다 연하인데도 불구하고 추선생이라고 조심스럽게 호칭했다.

마쓰모토는 게이오의 대답에 의문이 생겼다.

「당신들의 의도대로 추선생이 만약 그 세 번째의 목표를 이루게 되면 당신들은 범의 새끼를 키우는 꼴이 되지 않소. 합방이 되었다 하나 추선생은 엄연히 조선인의 신분인데 그렇게 되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소?」

「기예를 논함에 있어 국경이 어디 있겠습니까? 조선인이면 어떻고 파란 눈의 서양인이면 어떻습니까? 또한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도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일 뿐 무엇 하나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해서 저와 같이 저희 도장에 한번 방문해 주십사 하는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

평사가 반응이 없자 게이오가 재차 설득을 한다.

「가능하면 저와 같이 가도록 합시다. 추선생 같은 분이 더 이상 떠돌이 기객으로 돌아다닌다는 것은 우리 일본 기계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큰 손실입니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관장의 기력은 어떠하시오?」

마쓰모토는 평사를 데려가려는 게이오가 못마땅하다. 관장의 기력이 언급되자 게이오가 머뭇머뭇한다.

「관장님의 연세가 이미 60을 넘어선지라……. 제 개인적인 판단입니다만, 저는 추선생과 필적할 수 있는 고수는 슈사이 명인을 비롯해 최정상의 기사 몇 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보는 게 정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게이오가 우회적으로 마쓰모토의 질문을 비켜간다.

「결심이 서면 이곳으로 연락을 주십시오.」

게이오는 자신의 연락처를 남긴 후 총총히 사라졌다.

평사의 장고는 길지 못했다. 오랜 떠돌이 생활에 평사의 몸과 마음은 많이 지쳐 있었다.

며칠 후 평사는 게이오에게 동행의 뜻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