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진취적이면서도 온화한 민족성을 가진 듯하다

고구려와 발해를 기억하면서도 신라와 백제를 품으니.

단일민족의 학술적 근거는 모르겠지만 근사치의 문화권이 융합된 탓일까

어쨌든 압록 두만강을 선으로 단일 언어로 통한다.

그러나 옛 삼국시대의 잔재인 듯 작은 나라가 소통에 장애가 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크게는 둘로 갈라져 있고 그 아래 또 둘로 갈라져 오랜 소통부재를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다.

지난 주 벌초를 다녀왔는데 종가 집 장손의 문제가 크지만 자본주의의 산물이고

인간성의 차이로 본다.

문중 땅으로 시시비비가 쌓이면서 벌초도 지척에서 따로 하였다

한 핏줄의 가까운 집안이 이러할 진데 단일민족으로 그 이해관계가 쉽겠는가.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고사하고 형제들마저 등을 돌렸으니

우리는 아마 조상들 등에다 술을 따르고 절을 하고 왔을 것 같다

살아생전처럼 시시비비를 엄하게 꾸짖어 주면 좋겠건만 싸가지가 활개를 더치고

돈이 진리가 되니 가난하여 궁색하거나 내려놓은 듯 포기하거나 비굴할밖에.

산 너머 큰집 롯데가는 최악의 상태에 몰려 있는 시점인데 그래도 인산인해다

열 명도 채 안 되는 인척들이 모여 앉은 자리를 피해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바라보니

신작로가 삼켜버린 소먹이로 가던 길.

마른장작 한 아름 지게에 올려놓고 감자 구어 먹던 자리는 마천루 같은 고가기둥이 삼켰다

우리의 할아버지 아재들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깻잎 옥수수 따고 밤 줍던 골짜기 텃밭은 쥬라기공원도 아니고 거대한 사슴들이 메웠다

울산이 가까웠지만 늘 걸어 다녔던 30리길 골짜기가 이렇게 발전하였고

일 년에 한두 번 찾는 나에겐 황폐화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 엄니는 파마도 하지 않고 살뜬 물에 감아 빗은 생머리가 좋고 고향도 그러길 바란다.

나 죽을 때까지 내 놀던 동산에 떠오르는 달처럼.

방앗간에서 호스로 몇 번씩 들이마시며 회충들 다 죽였다며 객기부리며 훔친 벙커시유로

횃불치기로 송사리 잡던 개울도 잡초가 덮어 버렸고

고향에 와도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갈 고향처녀들을 못 본지도 수 십 년이 되었다
아이들은 고사하고 아예 사람들이 안 보인다

그 흔하던 개소리와 소울음소리도.
그리고 오늘도 나는 고향의 달을 보고 옛일을 그려 볼 시간이 없다

모깃불 피워 논 평상에 누울 곳도 없지만 흐린 날처럼 마음이 메말라 별을 헬 여유도 없다

일상이 내 목을 끌어 다니니까.

낯선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동구밖에 잠시 차를 세우고 소와 닭이 되어 서로 힐끗거리다

내년엔 올수 있을까 반문하며 비장한 듯 포기한 듯 담배를 꺼내 문다.

산새소리 개울 물 소리 변함 없건만
잡초 같은 나이가 삼켜 버린 동구 밖 정자나무 아래의 고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