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술 문화는 만취 스타일이 많다

나도 그 부류의 한사람이고 시작하면 끝을 보는 타입 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만취에 이르도록 술을 먹지 않는다.

아니 못 먹는다고 해야 할 듯.

다음 날 일 나가는데 지장을 주지 않으려면 적당량이 있고 통제도 받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술 치매에 걸린 듯 도저히 복기가 안 된다.

딴에는 형세판단을 제대로 했다고 하는데 도저히 수순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직 술로 실수를 하지는 않지만 내가 한말들이 왜 떠오르지 않는 걸까.

어떤 경우에도 내가 취하는 행동은 정해져 있다

술이 취했다고 말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결과를 보면 정석의 수순을 밟았고

오히려 취하면 더 강하게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내세운다.

술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말과 행동으로 후회하지 않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문제는 복기다

당시의 심리상태와 상대의 반응 그리고 환경의 변화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하는데

뭐가 떠올라야 하든가 말든가 하지.

젊을 때는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셔대다가 필름이 중간 중간 끊어진 적은 있었지만

매끄럽지는 못해도 그래도 대강의 윤곽은 잡혔다

요즘은 양으로 과하지(?)않았으며 행마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걸로 기억될 뿐이다

동석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취한 것 같지 않았다는데. 나도 그랬던 것 같은데 말이다

가족들과 먹다보니 너무 편해서 인가.

그래서 몇 번은 정신 차리고 내내 긴장을 놓지 않고 마셔 보았다

조금 나은 듯 했지만 그래도 내가 한말들이 이 빠진 동그라미처럼 울퉁불퉁 거린다.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들고 잊고 살았던 나이가 혹처럼 불거진다.

죽는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지 오래지만 구차하고 짐스럽게 살아서야 되겠는가.

이제 겨우 나를 돌아보고 세상이 원하지 않아도 내가 있어야 할 이유를 알만한데.

까짓 실전에 지장 없으면 그런대로 살다가겠지

이제는 이성과 사고를 버리고 동물적인 본능으로 살아가야 되는가보다

그렇다면 짐승처럼 산다고라. 아니지 그건 아니지.

차선책은 술을 끊거나 그렇지 않으면 취해서 기억나지 않아도 언행에 차질이 없도록

평소에 모든 본능을 반복 다듬질하여 자연스레 행하도록 몸에 붙여야 되겠다는 것이다

술 담배를 배운지 40년이 되어 가지만 헤어 질 생각은 아직 없으니까.

사실 와이프도 그 부분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갈 때 되면 가라는 뜻인가.

하긴 우리 와이프는 로프도 던져주고 나이프도 던지는 스타일이다. ㅡ.ㅡ

술을 배우고 집에서는 일 년 내 있어봤자 음복 한 잔도 잘 하지 않았던 내가

산사기행을 시작하면서 집에서 먹기 시작하였다.

경비 마련을 위해 모임도 모두 접고 스스로 왕따의 길을 선택하면서 독대하기를 5년.

나름으로 삶속에서의 출가였다

술 마시는 분위기가 달라졌고 쉬는 날은 오히려 술을 못하던 와이프가 일정을 잡는다.

“내일은 우리 뭘 루 한잔하지.”(단. 안주는 만 원 선에서.)^^&

집에서 둘이서 아니면 어머님과 셋이서 마시니 경비는 오가는 차비로 오케이.

서로 격려하면서 문제점과 애로사항과 개선책이 자연스레 오가니 분위기 좋고

무엇보다도 내가 밖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게 경비도 경비지만 든든하단다.

이제 습관화 되어버려서 “여기 술하고 안주 한 접시 더요.”하는 말도 잊어버렸다.

술은 슈퍼에서 1100원하면 되고 안주는 만들어 먹거나 삐약이 시키면 된다.

사업하는 것도 아니고 승진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접대성 향응 술은 물 건너갔다

팔불출이 가족에게는 팔등신이더라는 말씀이다. ^^:

그러나 신세진 분들에게나 가족 같은 친구들이 찾아준다면 집으로 초대할 것이고

그들 또한 우리가 정성으로 차린 상으로 만족 할 테니까.

우리는 나이를 먹고 잃어버리는 것도 많지만 술로도 많이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젊었을 때도 건망증으로 깜박깜박했었지만 요즘은 술 아니라도 껌벅거린다.

한마디로 복기불능이 되어가고 있으니 수담도 물 건너가는 건가.

결코 유쾌하지 않은 깨달음(?)이다.^^:
앞으로 실수라도 할까봐 밖에서 술 먹는 것이 두려워 진다

인간이 미치지 않는 모든 이유 중에서 망각이 신이내린 최고의 선물이라 했고

어려웠던 날 잊기 위해 마셨던 술도 그중 하나로 보는 나로서는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