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가 빽빽해도 물이 흐르는 데엔 지장이 없다는 말이 있다.

어느 선사가 주먹을 쳐들고 이게 보이는가 묻자, 답하던 승려가 보인다고 하자

나무랐다고 한다. 그러자 그 순간 취지를 알았다고 하는데

무얼 알았다는 거냐고 묻자, 대나무가 빽빽해도 물이 흐르는 데엔 지장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문맥을 보니 조금 비유가 이상하지만, 제상이 비상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스피노자가 말하길 모든 양태가 실체의 변용이라고 하듯이, 진여가 생멸과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항상 공존한다는 말을 물이 흐르는 데에 지장이 없다는 말로 비유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선종에서 하는 말의 핵심자체는 단순한 것 같기도 하다. 우물이 당나귀를 본다는 말도 비슷한 것 같다.. 당나귀가 우물을 보면 우물을 통해서 자신을 인식하지만, 우물은 만상을 비추어준다. 거울과 같은 것이다. 다만 거울이 별도로 있지 않다는 게 조금 다르다..

하지만 거울은 형태가 없고, 모습들은 있어보이니, 모습을 구하는 입장에선 난해하게 들릴 수도 있는 것 같다.. 봄비가 온 후에 낙숫물 듣는 소리라고 하니 미기축물이라고 했었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우물이 있어서 낙숫물이 보이는 것인데, 우물은 못보고 낙숫물만 본다고 나무라는 셈이다. 우리 일상에 비추어보면 황당한 말이나, 그러나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없다면 어떻게 그것이 드러날 수 있겠는가? 유명과 무명이 같은 것인데, 유명이 있고나서야 둘에 별도의 이름이 필요해졌다고 하는 말이나 아마도 다 같은 뜻일 것이다.

러샤가 크리미아 반도를 먹어도 지구는 그대로 지구인 셈인데, 이것도 조금 비유가 다를지 모르겠다.

집단생활은 그 나름대로의 상황과 요건들이 있으므로 개인의 정의가 바로 실행되긴 힘들다.. 아마도 고전과 철학의 효용이 이런 곳에 있는 줄을 안다면 누구나가 이런 주제를 사랑할 것 같다.. 전체와 부분을 동시에 보는 유단자의 안목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열한줄 바둑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