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예전에 경산과 대구를 가르는 경계점 담티고개에서 뭔가 분산하다

경찰과 견인차에 앰뷸런스까지.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구경하는 사람과 경찰과의 실랑이에 가족들인 것 같은

황망해하는 사람 사람들.

택시한대가 전봇대를 들이박고 빗물인지 눈물인지 흠뻑 젖은 채 쓰러져 있었다.

운전수 쪽에 사람이 많이 붙은 걸로 봐서는 아직도 운전수가 나오지 못한 것 같다

119구조대가 이어 달려왔고 뭔가 기구들을 꺼내더니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문짝이 떨어져 나갔고 이어 잡다한 소리가 뒤섞여 들려온다.

“괜찮아요.”

“조심해”

“ㅇㅇ 아버지…….아빠…….”

“살아있네”

혼잡한 분위기에 119대원이 의식을 확인하기 위해 몇 번인가를 물어본다.

“괜찮아요.”

“다친데 는. 어디가 불편하세요.”

“,,,,,,,,,,,,,,,,,,,,,,,,,,”

“의식은 있는 것 같아요”

‘이봐요. 불편한데가 어디죠“

한참 만에 그의 입에서 나온 말.

“귀신”

“네”

“...........................”

‘뭐라고요“

“귀신..............”

경찰관이 다가와서 그의 입에다 코를 갖다 댄다.

“술은 마시지 않았어.”

“뭔가 헛것을 본 모양이야”

“일단 병원으로 옮기지”

“자자 모두 물러들 서세요. 환자 이송해야 됩니다. 협조해 주세요.”

참 구경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특히 나쁜 것) 지지리도 말 안 듣는다.

모르긴 해도 남의 흉사에 안타까움보다는 위로를 더 받는 심리가 아닐까.

옆 사람들을 종용하며  “자자 비켜줍시다.” 하고 물러서려는데.

순간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면서 발이 얼어붙었다

“아니. 아저씨는 뭐해요 ”

응급요원들의 재촉에도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턱으로 가리켰다.

“저기. 저…….”

“거기가 뭐요.”

분명 하얀 소복을 한 물체가 이쪽을. 아니 나를 보고 있었는데 금방 사라져 버렸다

“그 참 싱거운 사람이네 얼른 비켜서세요. “

떠밀리 듯 비켜 선채로 한참동안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

주변이 조용해져 가면서 불현듯 정신을 차리자 더욱 공포가 엄습해 왔다

왜. 하필 나에게 보였을까.

징조.

다음이 나라는.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하는데 발걸음이 천근만근 떨어지지 않는다.

부리나케 차로 달려가 시동을 걸었다.

“선달이 여태 뭐해서”

으아아악.

뒷좌석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질책을 한다. 분명 문을 잠갔는데.

머리털이 천정에 붙었고

고개가 뻣뻣해져 돌아가지도 않았지만 룸 밀러도 볼 엄두가 안 났다.

모든 게 순간 마비상태에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컥. 컥. 거리며 막힌 숨을 고르자 뒷좌석이 환하게 밝아져오고 굉음이 들렸다

빵빵.  빠~~~~~~~~~~~앙

엉겁결에 돌아보니 거대한 덤프가 상 라이트를 쳐들며 재촉하고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 고맙다. 네가 날 살렸구먼.)

룸 밀러를 힐끔거리며 온건 아는데 어떻게 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금 나는 지독한 가위에 눌려 있는 걸 거야.

비몽사몽 소주 두병을 싸들고 집에 돌아오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방마다 스위치가 있는 곳은 죄다 눌러 집안을 환하게 밝혔다

뽀드득.

조르륵. 콩 콩콩

소주잔을 채우는 소리가 예나 다름없이 경쾌하건만 왠지 성글하다.

중학 때인가.

엑소시스트 영화를 보기 전에 책을 먼저 접하게 되었는데 첫 장이 그랬다

“이 책을 접하는 당신은 야심한 시간에 홀로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뭐 대충 그랬던 것 같다.

그때도 혼자고 지금도 혼자지만 그때는 무서워 무조건 옆집으로 달려갔으나

지금은 그러지도 못하는데 하얀 달력과 펄럭이는 커튼까지 신경 쓰인다.

한잔 두잔 마시며 투덜거렸다.

택시기사가 호구X이가 뻑 하면 택시기사에게 귀신을 갖다 붙이나.

비오는 날 공동묘지 모퉁이에서 하얀 소복을 입고 차를 세우지를 않나

예쁘다고 태워 줬더니 부모가 나와서 오늘이 제삿날이라고 울고불고 하는 바람에

차비는커녕 댓바람타고 달아나지를 않나.

룸 밀러에는 보이지 않고 돌아보면 웃고 있는 여인을 그가 원하는 정신병원까지

태워주는 역할도 우리 몫이다.

왜. 

쌀집 아저씨 트럭도 있고 중국집 철가방 통닭집 오토바이도 있는데 하필이면.

시팔 니팔 하면서 한 병을 비우고야 좀 덤덤해졌다

하지만 도저히 잠이 들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분명히 봤다.

하얀 소복 입은. 그리 멀지 않아 여인임에 틀림이 없었고.

그렇다면 사고도 그 여인 때문이고.

그리고 왜 나에게만 보였나.

이제 나에게 과연 어떤 일이 닥칠 것인가.

다시 한기가 들고 공포가 몰려와 소주를 병으로 들이 마신다.

벌컥 벌컥.

밤새 뜬눈으로 새우고 멍한 상태로 아침을 맞았다

띠리리.

아침부터 뭔 전환가 했더니 이번에 조합 이사장으로 출마한 지인의 전화다

목소리를 가다듬었으나 상대편이 먼저 알아듣는다.

“어저께 많이 마셨구나.”

“ㅎㅎㅎ.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만.”

“어째든 만나서 얘기하지”

“네”

일단은 약속 장소를 정하고 대충 씻고 나갔다.

벼슬을 하려면 인맥이 중요하고 지인도 그 맥락의 행마를 하고 있었다.

제법 짱짱한 산악회 회장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병문안 가잔다.

음료수 두어 박스를 들고 병원으로 찾아가니 스쳐가는 한 무리가 눈에 익다

지인의 가는 신음소리.

음.

상대편 출마자가 선수를 쳤다

“뭔 대숩니까. 얼굴만 내민다고 모두 눈도장 찍히는 게 아닙니다.”

“그래도”

“건성으로 대하면 상대도 압니다. 우리는 좀 더 인간적으로 갑시다.”

아예 한 시간정도 잡고 사건전말과 본인의 입장을 들어주고 해결책도 의논하고

다른 일정을 잡지 않고 특별히 다니러 온 것을 인지시키기로 했다.

“김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여~ 이게 누구신가.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

“뭐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죠. 여기 오는 게 젤 바쁜 일이던데요.”

하하하.

서로가 한바탕 웃어젖힌다.

일단 시작은 좋았고 우리는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풀게 만들었다.

나와 김 회장이 서로를 쳐다보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바로 어저께 사고의 당사자와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사실을 공유함에.

“가능하다면 제가 증인이 되겠습니다.”

단호하게 말했지만 지인도 김 회장의 식구들도 무덤덤하다.

하여간 우리의 경험을 잡다하게 늘어놓으면서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흘렀다.

지인은 뭔가 눈치를 주면서 끝내기를 강요한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니면 이 사건이 어찌 가슴에 와 닿겠는가.

우리는 서로 아직 많은 것을 알아야했다.

그래서 일단 지인을 따로 불러 우연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마무리 하겠다 하고

먼저 보내면서 이 사건은 정말 우연이 아니라고 몇 번을 강조 했으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의 나를 봐서 실없는 소리 안하는데 하면서도 사안이 그랬으니.

한참을 서로의 경험을 주고받으며 공감대를 형성 하는데.

“저. 실례합니다.”

경찰관이 들어오면서 분위기는 다소 가라앉았다.

“김 아무개 씨 맞나요.”

“네. 그런데요”

“어저께 사건 때문에 조서를... 그런데 당사자와만 얘기하고 싶습니다.”

가족들과 나서려는데 김 회장이 불러 세운다.

“어저께 사건이면 자네는 있어도 되네.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괜찮죠.”

“뭐 본인이 괜찮다면...”

약 5분여의 경찰관의 사건경위를 듣고 두 사람은 멍하니 창밖을 보는 남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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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담티고개에 있는 시립화장터에서 문상객들의 술심부름을 나온 여인이

상복을 입은 채 도로에 나와 차를 기다리다 지나는 차들에서 물이 튀는 바람에

나무 뒤에 숨었다가 김 회장의 빈차등을 보고 황급히 나와 차를 세웠는데

김 회장이 순간적으로.........

사건이 황망하여 멀리서 지켜보다가 나와 마주쳤고.

그리고 양심에 걸려 경찰에 신고하였단다.

그날 병원옥상에서 대낮부터 술잔을 기우리는 말없는 두 사람이 있었다.

허접한 글 여기까지 오신 분들 새해 복 마니 받으실겁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