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시련을 이겨 낸 결과고 시련을 견뎌 낼 수 있는 희망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화창하지도 않고 인고의 대가를 받는 것 또한 아니다

어쩌면 봄을 기다리지 않는 고사목의 무심한 인내가 우리네 몫인지 모른다.

잘나고 못난 것을 고루 나누어 주는 인생사

비교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상처를 받지 않고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내가 하는 일 나는 무엇일까 생각하면 무엇인가가 나를 가로 막고

결국 그 무엇이 내가 무엇인지를 망각하게 한다.

그냥 무엇이기를 추구하며 살다 가는 게 후회를 적게 하는 길이 아닐까.

긴 겨울을 시간을 잊게 해준 술과 바둑과 글쓰기

이젠 바둑도 나이가 들어 역전패가 많고 그냥 살아 온 이야기들에 아집이 들어간다.

뭔가 나의 이야기에서 공유할 공간을 만든다 했는데.

바둑이 싫어지고 글쓰기가 민망해지면 나는 무엇을 붙들고 버틸까.

남은 것은 배신하지 않는 술이다

죽고 싶으면 죽는 고통을 주고 살려고 하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일깨워 주면서

잠시나마 변명의 시간과 죽어도 충분한 면책권도 준다.

그 시작의 저녁과 달리 깨어 난 아침이 다시 갈등으로 내 몰지만.

술에 취하는 것은 무기력과 자아발견의 몸부림일 수 있다면

의식적으로 끌어낼 수 없는 그 무엇은 신을 만나기보다 술에 취하는 게 빠르다

순리대로 살려고 해도 시냇물 중생은 물길을 거스를 수 없고

해탈이 좋은 생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선지식에 연민을 느낀다.

우리야 가다마는 중생이지만 순리를 깨달을 동안 얼마나 많은 오류를 접했을까.

울며 겨자 먹듯 따라가지만 그래도 살았노라 변명거리는 있어야겠다.

도리를 다하지 못하더라도 약속을 다 지키지 못하더라도 가끔 망가지더라도.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하다가.

어길 때 어길 수밖에 없는 명분을 찾고 남을 해롭게 하지 않을 것이며 결과에 책임을 지자.

우리에겐 늘 봄이 지나간다.

들판에서 화단에서 가로수와 미물에서도 눈과 귀와 코로도 느낀다.

그러나 마음의 봄은 숨어 쌓아가는 나이테처럼 영원히 시련의 결만 남길 수 있다

다년생으로 살고 있지만 매일 죽기도 한다.

어제를 기억하기에 오늘로 내일을 짐작하지만 정열의 여름과 추억의 가을은 그냥 스쳐가니

삶은 늘 봄을 기다리며 엄동설한을 지새운다.

또 봄을 맞았지만 나그네처럼 보내는 맘 탓하는 이 없겠나마는 해탈하고는 별개겠다

나의 봄이 무엇이니 너의 봄 또한 무엇 일뿐.

삶의 오류는 원하지 않아도 바람처럼 비처럼 때로는 천둥 번개처럼 일어난다

그렇게 살다보면 봄은 온다

다만.

봄을 아는 것이 문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