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들어 이 나라에 대한 애정이 많이 식었다. 해외 이민 같은 것을 생각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어서, 딸 내외가 영주권을 신청하여 함께 살자고 권했을 때도 시큰둥하고 매번 한 귀로 흘리다가 최근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해외 여행을 자주 할 기회가 없는 분들에게는 혹시라도 참고가 되도록 하는 의미에서 내 신상과 관련된 사적인 부분이지만 여행의 시작에서부터 종료까지 가급적 자세히 적어볼까 하니 이해 있으시기 바란다.  

딸의 가족들을 만나려고 비엔나까지 왕복 항공권을 서울이 아닌 비엔나에서 구매하면 더 싸다는 말에 딸에게 비용을 입금시켰더니 전자 항공권이 E mail 로 바로 도착했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항공료를 절약하기 위하여 국적선사가 아닌 루프트한자(LH) 항공권을 구매했다.

오랜 기간  우리 가족의 생계를 의탁하고 몸 담아온  KAL 이 아니라 외국 항공사를 이용하는 것에 대하여 근무했던 항공사에 괜히 죄스럽고 마음이 편치 못하다. ‘ KAL 회장님, 후배 여러분, 죄송합니다.  돈이 무엇인지 본의 아니게 OAL 을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

무비자 체류 허용 기간인 3 개월 짜리 3등석 왕복 항공권을 부탁했는데, 편한 여행을 하라고 사위가 자기 돈을 얹어서 2등석(Business Class)으로 업 그레이드를 하고, 이 참에 영주권 신청 절차를 밟으라고 체류기간도 3개월이 아니라 8 개월로 늘려서 발권을 한 것이었다. 아들이 없는 우리 내외에게, 아들 노릇을 하고 모시고 살겠다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해온 사위의 진심이 빈 말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금번 오스트리아(이하 ‘오지리’ 로 부른다) 여행은 4년 만이다. 모처럼의 방문이니 딸 가족들에게 줄 향토 식품과 선물로 가방들이 모두 가득 찼다. 항공기 수하물 무게가 개인 당 한도를 초과한다고 고춧가루는 빼자고 하니, 아내가 단호하게 거부한다.

‘ 2 등석은, 1인당 가방 한 개의 무게가22 kg 이 아니라 33 kg 까지고 가방 두 개 까지를 허용한다. ‘ 고 수하물 규정까지 빠닥하게 파악하고 있다. 항공사에 오래 근무한 덕택에 해외 여행은 자주 한 편이지만, 그래도 출발하는 당일이 되면, 소풍 가는 아이처럼 여전히 마음이 설렌다.  2016년 11월 3일 오전 11시 45 분에 출발하는 LH 719(인천/뮌헨/비엔나)편에 탑승하기 위하여 시간적 여유를 두고 08:00 시에 방화동 집을 출발하기로 Call Van 을 예약해뒀다. 여권, 항공권, 현지에서 사용할 외화, 의약품 등 누락된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나니 정시에 택시가 도착했다. (해외 체류 시 병이 날 경우 외국인은 병원비가 엄청 비싸기 때문 감기, 설사, 각종 연고 등 상비약 지참은 필수다).

택시비 5만5천원에 팁을 1만원 얹어서 아내가 기사에게 줬다. 차에서 짐을 내리면서 고마워하는 기사를 뒤로 하고 항공사의 발권 카운터로 발걸음도 가볍게 밀차(짐 카트)를 끌고 간다. 100 여명이 넘는 승객들로 카운터가 붐비고 있었지만 2 등석 카운터는 한산했다. 탁송대 위에 짐을 얹고 항공권과 여권을 발권 직원에게 내밀었다. 우리의 항공권과 여권을 살피던 여직원이 영주권 제시를 요구하는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어렴풋하게 항공사 입사 시험에 출제됐던 문제가 떠올랐다. ‘ 귀국 날짜가 3 개월을 초과하는 항공권인 경우, 보딩 패스 발권을 위해서는 그린 카드나 별도의 비자가 필요하다. ‘

오지리에 가서 영주권을 받을 것이라는 변명은, 입증된 증서가 아니기 때문 통하지 않음을 익히 아니 고집을 피우거나 사정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이를 어기고 항공사가 발권해줄 경우 해당 항공사는 도착 공항 국가로부터 많은 액수의 벌과금을 물어야 한다. 귀국편 날짜를 3 개월 이내로 단축하는 일정이 바뀐 항공권으로 갱신해 달라고 직원에게 부탁했더니, 직원은 여기서는 취급하지 않고 시내 지점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늘이 노래졌다. KAL의 경우는 공항 내 카운터에서도 바로 바꿔 주기 때문에 LH 도 당연히 그렇게 해줄 것으로 믿었었다. 더욱 억울한 것은, 날짜를 바꾸려면 추가로 위약금까지 물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알려주는 시내 지점에 전화를 걸어서 3 개월 이내에서 가장 요금이 싼 날짜의 비행편으로 예약을 변경해달라고 요청했다. 공항 청사내의 엄청난 인파들이 내는 잡음, 무시로 터져 나오는 출발 지연 도착 안내, 승객을 찾는 방송 등 시끄러움 때문에 전화 소리는 잘 들리지 않지, 상대방 시내 지점 직원은 우리가 요청한 조건에 맞는 항공편을 찾기 위하여 컴퓨터 예약 프로그램을 서핑하느라고 거의 30 분 이상 무응답이니 상대방이 무엇을 하는지, 전화가 끊긴 것은 아닌지 귀에 밀착한 전화기 때문에 귀에서 열이 나고 혈압이 저절로 올랐다.

충분한 여유 시간을 갖고 나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천신만고 끝에 위약금 36만원을 추가 지불하고서야 수하물이 실리고 좌석이 지정된 탑승권을 받을 수 있었다. 아내는 뮌헨에서 비엔나까지는 오지리 항공편으로 갈아타는 데 서울에서 탁송하는 우리 가방이 최종 목적지까지 자동으로 알아서 정확하게 우리와 함께 도착할 것인지가 무척이나 걱정이 되는지, 전직 항공사 직원인 남편이 확약해 주는데도 매번 항공사 직원에게 확인을 빼먹지 않는다. 해외 여행을 그래도 무던히도 한 아내가 매번 확인할 때마다 나는 카운터에서 멀리 도망가서 고개를 돌리고 웃고 있을 뿐이다. 

출국 사열을 위하여 출국장으로 들어서니 보안검색을 받는 여행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 시간대가 공항은 입출항이 가장 많은 소위 러시 아워에 해당된다. 상의 겉옷을 탈의하고 모든 소지품까지 엑스레이 투시기 검색을 받아야 하는 것이 번거롭지만 내가 탈 항공기의 안전을 위한 것이니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통과의례다. 

그 다음은 법무부 출입국 관리 사무소의 출국 사열이다. 이 곳 역시 보안검색을 마친 승객들로 붐비고 있다. 다행히 우리는 일전에 미리 조치를 취해놓은 자동출국 검색 절차 덕택에 단 1분도 지체하지 않고 별도의 자동문으로 카메라에 얼굴 한번 보여주고 여권 스캔을 하니 자동문이 열리고 그냥 통과다. 우리를 부러워 하는 무수한 시선을 뒤로 하고 보딩 라운지 회랑을 따라 Moving Walking 을 타고 걸어가면서 시계를 봤다. 10:15 분이다.

우리가 탑승할 LH 탑승 게이트를 확인하고 나자 이제 탑승만 하면 끝이다. 긴장이 풀리니 아침 식사를 걸러서 인지 배고픔이 느껴진다. 비행기에 탑승하면 첫 식사는 13:30 분은 되어야 먹게 될 것이니 그전에 뭔가 좀 먹어줘야 겠다.

발권 카운터에서 탑승권과 함께 준 공항 스카이 라운지 이용권을 갖고 OZ 비즈니스 라운지를 찾아갔다. (* LH 는 아시아나와 ‘스타 얼라이언스 ‘ 제휴 항공사로 LH 승객은 서울에서 OZ 라운지를, 반대로 OZ 승객은 독일 내에서 LH 라운지를 교차 이용한 후에 비용 차액은 두 항공사간에 정산하도록 협정이 되어 있다.)

라운지에 들어가서 쿠폰을 내고 식사를 했다. 수프와 빵, 스파게티를 먹고 아내는 오랜지 주스를, 나는 스카치를 한잔 마시고 커피도 덩달아 마셨다. 치즈 조각을 곁들여서 마시는 12년산 위스키의 향이 혀를 즐겁게 해준다. 술을 한잔 더 마시고 싶었지만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고 탑승시에 혹시라도 공연한 시비에 휘말리는 불상사가 없도록 하기 위하여 달랑 한잔으로 만족해야 했다. 라운지에서 신문을 보면서 쉬다가 시간에 맞춰서 Gate로 나갔다. 대기 줄을 길게 늘어선 이코노믹 석 라인과는 별도로 1, 2 등석 승객들은 대기 없이 바로 탑승이 이뤄졌다.

승객을 맞이하는 이국(異國)의 객실승무원들에게, ‘ 굿 모닝 ! ‘ 하고 인사를 한번 해주고 지정된 좌석을 안내 받아서 앉았다. 아내가 창가 좌석을 원했기 때문에 바꿔주고 당일 항공기 비행 항로에 대하여 질문하니, KAL 처럼 역시나 강릉을 통하여 동해로 진출하는 항로가 아니라, 서해를 통하여 중국 대륙을 지나는 항로라고 했다.

전문적인 항공 용어를 사용한 질문에 답변하는 사무장이 신분을 물어서 전직 항공사 직원이라고 하니, 이륙 후에 기장에게 건의하여 조종실 Observation 을 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기분 좋은 제의지만 재직시 업무 관계로 Cockpit Observation Flight를 여러 번 해봤기 때문에 분에 넘치는 제의를 정중하게 사양을 했다.

정시에 이륙한 비행기는 영종도 상공을 뒤로 하고 서해안으로 진출한 후에 백령도 남쪽으로 서해를 가로 질러 달려갔다. 청도 쪽의 산동반도 남단으로 중국 대륙에 진입한 후에도 한참 동안 경제 고도에 진입하지 못하는 것으로 미뤄보니 오늘도 이 일대 항로를 비행하는 항공편이 붐비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충분한 고도를 취하지 못한 우리가 탄 A-320 항공기는 시속 900 km 을 넘지 못하고 그 후로도 30 여분이 지나고 나서야 고도 35,000 피트 이상의 순항고도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우루무치 쪽으로 중국 국경을 넘은 비행기는 울란바토르 상공을 지나고 바이칼 호수를 옆에 두고 비행한 후에 모스크바 부근 상공과 상트페테르부르크 를 지나 핀란드 수도 헬싱키 밑을 통과한 후에 화란 옆으로 독일 영공에 진입한 후에도 한참을 지나고서야 오지리와 가까운 국경 도시 뮌헨 공항에 도착하였다.

키가 장대만한 독일 아주머니 승무원이 잔이 빌 때마다 와인을 따라준다. 호의가 지나치다 싶고 옆에 다른 승객의 눈치도 보이는데다가 과음할 것 같아서 사양했더니 와인 성향이 아닌가 보다면서 1등석에만 제공되는 자그만 병에 담긴 시바스 리갈 한병을 갖다주는 것이었다. 술로 누구 죽일 일 있느냐고 농담을 했더니, 사무장님의 특별한 배려라고 하면서 항공사 직원은 음주를 해도 결코 매너를 저버리는 일이 없음을 잘 안다고 웃음 섞인 경고를 하니 예쁜 쿼터 사이즈 위스키를 마다할 수 없어서 한병 챙겼다. 면세품으로 산 주류가 아닌, 식음료로 제공된 술은 갖고 내릴 수 없는 규정 때문에 위스키는 딱 두잔을 따라 마시고 아쉽지만 기내에 반납하고 내렸다.

두차례 제공된 기내 식사를 매번 깨끗하게 비우고 잠은 거의 못 잔 것 같다. 중간 기착지인 뮌헨 공항에서 입국사열을 받았다. 비엔나로 향하는 항공편에 환승 (換乘)하기 위하여 공항 청사의 회랑을 무려 15 분 이상이나 걸었는데 초행이어서 그런 것인지 안내 표지가 시원치 않아서 인지 엉뚱한 곳에 도착하고 말았다. 묻고 물어서 겨우 대합실 입구를 찾아서 줄을 서서 다시 한번 보안 검색을 받고서야 오지리 항공편에 탑승할 수 있었다. 불과 80 여분 단거리여서 그런지 투입된 항공기는 우리나라 국내선 항공기처럼 좌석간 거리도 좁고 항공기 상태도 좀 초라해 보였다.

서울과의 시차가 8시간인 비엔나 공항에는 같은 날 오지리 시간으로 깜깜해진 저녁 7시 경에야 도착하였다.  순수 비행시간만 11시간에 달했던 그날  여정은 그럭저럭 잘 끝났고 우리를 픽업하러 나온 딸 내외와 포옹을 하고 손녀 딸을 품에 안으면서 무사히 끝났다.

3개월이 넘는 체류기간 문제로 인천공항에서 겪었던 불편을 들은 사위 녀석이, 내일 당장 영주권 신청을 하자고 해서 증명 사진을 찍고 신청을 했다. 국제 원자력 기구(IAEA) 에 근무하는 사위의 유엔 외교관 여권과 IAEA 재직증명서를 첨부한 신원보증서 덕택에 말로만 듣던,  그린카드가 불과 며칠만에 나왔다. 그런데 체류 기간이 ‘영구’ 가 아닌 24 개월이 아닌가?  처음 5년은 2년 단위로 단기 체류증이 발급된 후에 그 기간 동안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고 심지어 교통 위반 딱지도 떼이지 않아야 그후에 비로소 체류기한에 제한이 없는 영주권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일단 ‘거주증’ 이 나왔으므로 우리 내외는 금번 체류기간을 8 개월로 연장하여 2017년 6월 26일 귀국하는 항공편으로 다시 항공권을 갱신하였다. 때문에 다시 추가 수수료 36만원을 내야 했다.  그렇지만 금번 출국 항공편은 추억에 남을 상큼한 여행으로 기억하고 싶다.

2 편에 계속 -> 2편에는 필자가 체류하는 오지리에 대하여 소개드릴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