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 내리는 빗소리가 처연하다하니 내 나이 문득 살갑지 않고

삶의 시련을 곱씹다 내일은 새암이 있고 구멍 난 하늘 아래 서 있을 것이며

무너지는 땅 그 꼭지점 위에 서 있을 것이라 위로하며 결국은 술잔을 채운다.

양보한다는 건방과 변명에서 포기를 배우고

나를 몰라주는 사람들의 야속함이 덤덤해 질 때 스스로에게 대견해 진다

이제 하산해도 되겠지

그래.

선달이가 이제 철들었구나.

빗소리가 잦아지니 오래된 컴퓨터 소음이 적막한 시간을 가르고

다시 채워지는 소주잔 소리마저 우렁차다

갑자기 들려오는 전화 벨 소리에  너울되던 상념들이 걷어차이고

나는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비벼 끈다.

이 시간에.

“친구야 근무중이가.”

“아니 방금 마치고 한잔 한다.”

새벽에 전화하는 사람이 있고 받아서 반가운 사람이 있다

한사람이 있어 외롭고 또 한사람이 있어 행복하다 했는가.

하지만 우리는 늘 한사람으로 외롭다 하면서 멀리서 불쑥불쑥 위로를 받는다.

그래.

우리는 서로가 연락하여 보고 싶다하면 내일이 없지.

고3 딸들의 안부를 시작으로 서로의 무능을 위로하며 따로 또 같이 술을 마신다.

그리고 친구는 술이 모자란다며 전화를 끊고 술을 사러 나갔다

나는 담배와 술을 미리 준비해 왔으니 그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접대 술 친구하던 바둑을 접고 자판에 앉아 친구가 올 때까지 두드린다.

뭔 말을 했는지 내일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올려 질 것이고 다시 내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동기와 과정과 결과를 따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인생관 때문에.

그렇다고 무책임하거나 글 쓰는 것을 헤프게 보지도 않으며 나름으로 신성시 한다

다만.

나에게 조금이라도 정직하기 위해 오늘의 충동을 미화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세상은 어쩌면 충동과 이성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희비가 엇갈리며

우리는 결과에 변명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정직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라 보기에.

술잔이. 아니 술병이 비워진다.

창밖에 빗소리도 야위어가고 나의 서글픈 넋두리도 가늘어진다

이제 친구가 올 시간이 됐다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강하게 솟구치는 충동은 한잔 더 하고 싶다는 유혹보다

친구에게 내가 전화를 하는 것과

내일 내가해야하는 의무가 가는 빗소리처럼 몽롱하나 선명하게 들린다.

지금은 취했으나 내일은 취한 척 않아야지.

늘 뭔가에 취해 살면서도.

친구에게.

늘 미안 하지만 애살스럽지 못하고 질책이 앞서는 아빠를 이해할 날이 온다면
우리 무능한 아빠들이 그때부터 술로 위로 받지 않는 날이 되겠지.

그날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혹 모르니
그 빈 벤치를 지키고 있어야 되는 것 또한 우리의 막연한 기다림일 테니까.
그때 까지 우리 술 한 잔에 위로 받으면서 가끔씩 연락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