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매일 보는 거울 앞에서 늘 그렇듯 그렇고 그런 나를 건성으로 보다가

우연히 내가 낯설어졌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흰머리에 듬성듬성 해진 머리숱이 샤워를 하고나니 제법 윤기도 있고

염색한 효과로 가무잡잡한 머리칼에 얼굴이 훨씬 젊어 보였다

좀체 염색을 하지 않지만 내일은 딸내미 보러 가는 관계로 일종의 섭외(?)염색이다

어저께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한걱정까지 싸매고 들여보냈는데

벌써 한 학기가 후딱 지나고 방학동안 퇴소한다고 짐 가지러 오라는 것이다.

요놈의 가시나가 언제부터 콩밭에서 놀았다고 하는 말이 가관이다.

우리보고는 오는 길에 과일과 떡을 준비해 오라면서 지는 뒤풀이하고 온다나.

그러면 우리는 자가발전 택배맨이고 지는 우리 위해 큰 일하는 공주라고.

거울 앞에서 달라 보인 나 자신이 갑자기 서글퍼졌다

저거 얼마 전 내가 했던 행세였다는 생각이 드니 지금의 내가 누구인가 싶은 거다.

그리고 컴퓨터로 달려갔다

이 서러움을 낱낱이 기록하리라고.

자판기에 앉아 독수리 발톱을 다듬고 손가락근육을 스트레칭 한다.

물론 목 근육도 점검하는 건 필수다

되는데 까지 쳐놓고 하늘을 한번 씩 쳐다봐야 하니까.(다들 그러겠지만)

지금의 나이는 아직까지 숫자에 불과하고 나는 거울 앞에서 충격 받지 않는다.

늘 그대로인걸 뭐.

머리숱이 좀 그렇고 흰머리가 많아졌지만 젊을 때부터 있어왔던 일이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다시 보니 내가 잠든 사이 누가 얼굴에 장난을 했는지

아니면 내가 엎드려 잤는지 장판이 쭈글쭈글하다.

박박 문질러 보니 칠을 한 것은 아니고 깊은 골이라는 걸 알았고 늘 그랬듯이

이따 오후가 되면 풀리겠지 생각했다

오늘은 전국적으로 파업에 돌입하여 임시 휴무라 집안 밖으로 대청소에 들어갔다

그리고 완벽을 기한다고 염색하고 샤워까지 하고 봤는데 주름은 더 깊어 보였다

아뿔사. 염색과 면도가 오히려 주름을 더 강조하고 있었다.

선물로 받았던 스킨로션을 찾았다

아무리 뒤져봐도 없었고 나는 몇 년 묵은 그것들을 과감하게 버렸던 기억을 되살린다.

그랬다.

나는 진성 피부라 늘 얼굴에 개기름이 번들거리니 여태 뭘 발라보지를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화장품 선물하는 것을 젤 싫어했으니까.

“자기도 좀 젊어지도록 신경 써야겠어.”

“왜 비아그라 사줄라고.”

“퍽”

갑자기 마눌 님에게 벼개탄을 맞고야 알아차렸다

TV에 기생오라비 같은 놈이 간드러지는 제스처로 남성 화장품을 선전하는데

뭐 그 화장품으로 지금의 지가 있다나 뭐나. 츠암네.

“내가 저걸 바르면 저놈처럼 될 것 같아. 골타고 줄줄 흐르지.”

“요즘은 남자들도 화장해요”

“미친놈들.”

괜히 주름살에 예민해져 화장품까지 갔다 싶어 일어나 담배를 물었는데

나도 모르게 또 거울을 쳐다보았다

빌어먹을.

그런데 그 사이에 가지가 하나 더 뻗은 것 같지 않은가.

으 아……. 참. 참. 이거 미치겠네.

여태까지 거울 앞에 수 만 번을 서 보았지만 단정함만 봤지 주름은 못 봤다.

왜. 선조들의 입으로 내려 온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뇌 속에서 진동하나.

이놈의 가시나 는 왜. 짐 가지러 오라하느냐고.

왜. 친구들이랑 나눠 먹게 떡이랑 과일이랑 챙겨오라고 하는 거야고.

우리가 뭔 부자라고.

안 그랬으면 예전처럼 거울 앞에 섰다가 모르고 그냥 돌아섰을 거 아냐.

제 친구들 본다고 신경 쓰다가 스트레스만 생겼잖아.

에혀.

얼굴에 칼 들이대는 인간들은 참 목숨걸일 없구나 했는데.

지금 내가 돈이 없는 것이 다행이지만 갑자기 무심히 지나쳤던 성형외과 간판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 웬 거울이 이렇게 많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