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채 바퀴 돌던 살아가는 삶이 때로는 권태롭다 생각하지만

정작 그것을 돌리는 다람쥐는 쉬 알 수가 없다

아니면 평생 모르거나 짐작하거나 외면하며 일상이라 여기고 치열할 뿐이고

지켜보는 이만 느끼는 안타까움이지만 그를 지켜보는 이 또 있다

순리라는 물의 흐름에도 조그만 걸림돌에 돌아가기도 하고 때론 흐름에서 밀려나

맴맴 돌기만하다 그 자리에서 매 말라 버리기도 한다.

책임감이라고도 하고 사명감이라고도 하면서 그 외 여러 위로나 명분의 말이 있겠지만

우리는 뭔가에 뭔가로 움직이고 있고 나는 그것을 간단하게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연극 무대에 오른 한 사람으로 나만의 캐릭터에 그때그때 주어진 역할을 할 뿐이라고.

그러고 보면 운명이라는 함축된 말이 참 편리하게 느껴진다.

나의 과오와 무능에 대해 그만한 변명이 없으니까.

다만 나는 좀 중압감이 있는 운명보다는 역할이라는 말을 선호한다.

엑스트라를 위한 연극은 없지만 그들의 한사람으로도 완성도에 기여하였기에.

그동안 선악의 대본을 수 없이 받아 들었고 배역에 만족하지 않았지만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나는 내 역할에 충실했을 것이다.

끌려가지 않은 자존심은 대본을 든 배우로서 역할이라는 말이 유일한 위로니까.

관중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다람쥐로 살아가는 삶의 원심력마저 벗어나기 힘든 탓일까

삶은 휩쓸리기도 하고 거스르기도 하고 때로는 무심히 걷기도하지만

다람쥐의 용기 있는 일탈은 채 바퀴를 벗어 난 것이고 자아는 우리 안에서 이뤄진다

내 역할에 대해 묻지 말자.

어차피 나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본대로의 나는 존재하고

결국 나는 나도 궁금한 나로서 나일 테니까.

휩쓸려온 안일한 시간과 거스르며 불편했던 진실과 트레킹의 고독과 외로움은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않았고

경험은 가보지 않은 사람들의 논리와 부딪쳤다

서로의 안타까움은 질퍽한 인연의 구렁텅이로 몰아가 뒤꿈치를 든 나를 우습게 만든다

벗어날 용기도 없고 그래도 살아야하는 명분은 있고

나를 사랑할 수 없다면 포기하고 희생하면서 막이 내릴 때까지 역할에 충실하자.

주연을 위하는 것도 관객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들에서 소외되는 것이 두려운 것도 아니다

서포터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욕구불만은 소인배의 자격지심이라 내몰려도

사실이기도 하고 아닌 부분도 있다

팩트를 좋아하는 이들의 장점은 객관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한 냉철한 구분력에 있지만

단점은 감성이 없고 자기아집에 빠지기 쉬우며 소통이 어렵다

왜 그런지를 스스로 모르고 자기논리에 벗어 난 모든 것들에 안타까워하거나 적대시 한다

나는 꼭 필요한 그들의 능력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들의 멸시를 받을 경우가 많지만 그들에게 반문할 논리도 없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논리는 의무가 따르지만 감성은 자유니까.

나는 달이 좋다

비가 좋다

소쩍새 울음소리가 좋고

공허한 밤을 가르는 개 짖는 소리가 좋다

창가로 우연히 바라 본 유성이 행운이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다행이다

뽀드득 콩콩콩.

몇 홉인지 모를 공간을 채우는 소주 한잔의 여운이 행복이며

내가 유일하게 짐작하는 해피엔딩이다.

나는 보여주지만 역할을 다할 뿐 가식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

가끔은 보여주고 싶은 나도 있지만

그것이 진정한 나인지도 사실 확신이 서지 않음은 무엇이 나인지를 모르기 때문이고
선이 아니라도 악이 아니라도

나는 이 삶의 무대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선으로서 모범이 되었고 악으로서 선례가 되었기에 남은 시간도 무의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살아야 한다면 자기 전에 내게 주어 진 대본 한 번 더 읽어보고
아침에 내 가슴에 얹혀 진 대본을 들고 기억나는 몇 구절 흥얼거리며 일어나고 싶다
그리고 세월의 강에 나뭇잎 배되어 흘러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