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반.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선달이. 눈도 뜨이지 않는데 더듬거려 찾는 것은 담배다

탁탁 ..

환하게 밝아지는 성냥불로 시계를 비추어 보고는 담배에 불을 댕긴다.

후~우

천정으로 달려가 온방으로 퍼지는 담배연기에 집사람이 잠을 깬다.

캑캑.

아. 이 양반은 새벽부터 방안에서 담배를 피워 물어요.

뭔가 말투부터 가시가 돋쳐 있음은 어저께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거의 인사불성 되어

들어 온데다 그대로 골아 떨어졌으니 당연한 결과다.

달이는 앞으로 상황에 한숨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에 아내의 칫솔이 거꾸로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뭔 문젠가.

아니다 아주 큰 메시지가 담겨있다

아내의 칫솔이 거꾸로 꽂혀 있는 날은 숙제(?)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은 일찍 귀가하는 날이고 저녁에 두 사람은 괜히 심각을 떨어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아이들의 안방 출입을 경계 시킨다

이 성스러운 날에 술을 퍼마시고 근무태만을 했으니 어찌 앞날이 걱정되지 않겠는가.

우선 자존심 상한다는 말에 합당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무엇으로 그자존심을 세워 줄 것인가.

아침을 시작하는 달이는 머리가 아프다.

굶고 나가는 게 당연하고 분한 생각이 들 때마다 날아 올 문자를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오늘 하루도 엉망이 될 것 같다 아내는 일찍 깨어 기다린 듯하다.

어떤 때는 아침에 일찍 숙제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기척마저 보이지 않으니 더욱 화가 난 것이다

달이는 나이를 원망하고.

여느 때의 새벽길과는 완연히 다른 기분으로 나서며 달이는 은근히 당근형님이 원망스럽다

어저께 잠시 기원에 들렀다 독립군대장에게 걸려서 7만원을 잃고 있는 당근형님을 보고

평소 그리 좋지 않은 관계라 괜히 오기가 발동하여 대타로 앉은 것이 발단이었다.

노련한 독립군대장에게 평소의 반치수를 얹어주고 조금 무리하게 시작되었지만

집중력을 발휘하여 잃은 돈 과 덤으로 3만원을 뺏어왔다.

두 사람은 곧장 나와 3만원의 전리품으로 평소대로 아양교 밑으로 소주 몇 병을 싸들고

신문지를 깔아놓고 앉았는데 달이의 영웅담이 길어졌던 것이다

팍팍한 독립군 그것도 대장이라는 사람에게 평소보다 반치수를 얹어주고 이겼으니

대단한 일인 것은 사실이니까.

그러나 두 사람은 간단하게 뒤풀이 한다는 게 노래방까지 내달렸던 것이다.

사실 달이는 나름의 징크스가 있다.

그 하나가 첫 손님으로 노약자나 애기를 동반한 손님을 모시면 그날은 괜찮은 날이 되고

아침에 싫은 소릴 들으면 그날은 죽 순다.

이상하게 그것이 맞아 떨어지는 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첫 손님이야 골라 태울 수가 없으니 그냥 맡길 수밖에 없는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아침에는 싫은 소리 하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오늘은 어쩔 수가 없다. 자업자득이라 생각하고 무심하려 하는데.

첫 손님을 태우는데도 한 시간 이상 돌아다닌다.

길 건너 손님이 보이면 신호가 걸리고 그사이 우회전하는 차가 태워간다.

어쩌다 이제는 내 손님이다 싶어 느긋하게 가면 1차로에서 대각선으로 차가 달려와

나를 가로막고 손님을 태우고는 내가 다가가 쳐다보면 고개를 돌려 버린다.

아엠미쵸.

그렇게 2등만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데.

밥도 못 얻어먹고 나와서 속도 쓰리고 점심도 건너 뛴 마당에 저녁을 먹으려니 돈이 없다

하루 종일 뭘 했단 말인가. 가스를 넣고 나니 빈털터리니 기가 막히는 노릇이다

맥이 풀려 있는데

예쁜 아가씨가 횡단보도에 줄을 서 있는 나에게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내 앞에도 두 대나 있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창을 내리니 얼굴을 빠끔히 내밀며 이렇게 말한다.

“아저씨 장거리 가실래요.”

네? 

가.. 가야죠 뭐. 속으로(안갈까 겁난다) 하는데.

태백으로 갈 건데요 차비는 가서 드리면 되죠?

네~ 그러세요. (사실 남자라면 좀...^^)

뒷좌석에서 날아오는 여인의 체취가 속살음까지 들리게 하는듯하고 아침에 근무태만 하던

놈이 고개를 치 든다.

이놈이 타이밍을 못 잡고 헤매고 있어 갑자기 괘씸한 생각에 한손으로 탁 하고 쳤다가.

욱. %$#&*

일단은 마눌 님에게 전화를 올린다.

여보세요.  (저쪽은 냉담하다)

왜.

나 있잖아.

...........

지금 장거리 가거든. 태백에

거긴 뭐 하러.? 손님 ?

그래 왕복 6~7시간 걸릴 거야. 신경 쓰지 마 다녀올게.(신경은 누가 쓴다고.) ^^;

“알았어. 조심해.” 

짧지만 조금 풀린 듯한 목소리를 듣고 달이는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여자 손님이 넘 고맙고 천사 같아 보였다.

추석은 다가와 있고 어제일도 있고 이것으로 모든 것을 회복 하리라 생각하니

흥이 절로 오른다.

출발할 때 잠시 대화를 나눈 후 여자 손님은 줄곧 책만 보다가 잠시 후 잠이 들었다

차안은 조용한 침묵만 흐르고

달리는 바람 소리와 간간히 들려오는 과속 알림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산과 들판밖에 없는 곳에서 갈림길이 나왔는데 이정표가 없다

잠시 차를 세우고 두리번거리는데

모퉁이 논두렁에 뭔가 비슷한 게 쓰러져 있는데 태백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이정표가 누워서 가르치는 태백은 어느 태백이라 말인가. 이태백? 저태백?

(어떤 놈이 하필이면 고추를 들이 받았어.)

투덜거리며 차로 돌아 왔지만 손님은 깊이 잠이 들었고 담배를 피워 물고 궁리하는데

저만치 코너에 사람 그림자가 보인다.

흠칫 놀랐다가 손전등을 비추니 권총을 차고 스피드건을 든 경찰이 아닌가.

너무너무 반가운 구세주였다. 냅다 달려가 구원요청을 했다

“헉헉. 수고 많습니다. 저 대구서 올라오는 길인데 태백을 가려면 어디로 가죠.”

......................

“저기 사고가 났더군요. 어떤 놈이 하필이면 그걸 들이 받았을까요.”

...................

고요하다.

이건 뭐지.?

이상한 생각에 손전등을 천천히 비추어 보았더니 꿋꿋한 부동자세의 그는 바로~~~~~

마네킹이었다. ㅡ,ㅡ

아... 시팔 네발 오리발.

이리저리 헤매다 밤 열 시경에 태백의 어느 이름 모를 동네에 도착하였다

여자 손님이 가리키는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불이 하나도 없는 집으로 여자는 성큼성큼 들어갔고 시골에는 일찍들 주무시려니 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기척이 없기에 들어가 보니 아무리 둘러보고 사람을 찾아봐도

인기척이라곤 없다 순간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오한이 든다.

달아나듯 나와 이리저리 다니다 불이 켜진 집으로 달려가 대문을 두드렸다.

사실 문을 열려 있었는데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이윽고 황급한 소리에 할머니 한분이 이상한 눈을 하고 다가온다.

무슨?

아. 에 저기 저 집에 손님을 태우고 왔는데 아가씨요. 근데…….

내가 가리키는 쪽으로 한참을 보다가 할머니는 달이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어데서 왔소?

대구요.

요즘 촌에는 젊은 사람은 씨가 말랐소. 그리고 저 집은 오래전에 비워둔 집이요.

하고는 다시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돌아선다.

순간 달이는 다리가 휘청함을 느꼈다

돌아서 오는 길에 룸 밀러도 쳐다보지 못했다.

그 아가씨가 앉아서 웃고 있을 것 같았고 씨익 웃으며

“나 찾았어요.”

하는 날이면 개 거품 물고 넘어 갈 테니까.

오면서 집으로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알리니 마눌님 고함소리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지랄 떨고 자빠졌네.

“지금 어디야. 바른 말 해.”

나 지금 태백 맞는데.....

그랬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자빠졌나

끼이이익.

차를 돌려서 다시 그 동네로 달려갔다.

손전등을 들고 그 집으로 다시 들어가니 똑 같은 분위기였지만

아까와는 달리 두려움 보다는 괘씸함에 울화가 치밀었다.

아까는 경황이 없었지만 다시와 보니 화장실 옆으로 덧문이 있었고

문이 열려서 삐거덕 거리고 있었다.

문밖으로 나와 보니 20여호가 보이고 도로를 두고 이곳저곳에 마을이 보인다.

여기만 다 뒤진다 해도 그런데 어떻게....

선달이는 달을 쳐다보았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

그런데 하늘의 둥근 달도 웃으며 혀 바닥을 내미는 것 같았다

달이는 담배를 피워 물고 머리를 감싸 쥐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