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이 글을 지었다는 진감선사대공탑비에는

“그가 범패를 매우 잘하여 금옥 같은 소리가 구슬프게 퍼져 나가면

상쾌하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하여 능히 제천(諸天)을 기쁘게 할 만하였다”라는

대목이 기록되어 있는데 언제부턴가 쌍계사에는 범패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다고.

(진감선사대공탑비)

(칠불사 대웅전)

(아자방)

칠불사는 지리산 계곡에 자리 잡은 고찰로,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이곳에서 수도한 뒤 모두 성불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숱한 선승들이 머물렀는데,

조선시대 서산대사를 비롯하여 부휴 선수, 백암 성총 등의 고승들이 주석하였고,

이로 인해 예로부터 금강산 마하연선원과 함께 2대 선원으로 불리어졌으며

조선시대 후기에는 한국 다도의 중흥조 초의 선사가 머물며 차에 관한 명저

『다신전』을 짓기도 했다.

근세에서는

용성ㆍ석우ㆍ효봉ㆍ금오ㆍ서암ㆍ일타ㆍ청화 스님이 안거를 지낸 바 있는

유서 깊은 참선도량이라고 한다.

선방인 아자방은 우리나라 온돌의 시초로,

한 번 때면 한 달 동안 온기가 지속될 정도로 교묘한 구조로 유명하다고 하고

세계 건축사에도 등재 되어 있다고 하니

저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함께 지금까지 보존해 온 선조의 지혜가 새삼스럽다.

 

(쌍계사 템플스테이에 참석한 개구쟁이들)

섬진강의 아름다운 자태를 따라 지금은 싱그러움으로 뒤덮인

긴 벚꽃나무 터널을 지나며 하얀 봄날을 떠올려 눈이 부시었다

그리고 만남의 광장에 이르러니.

여유를 나누고 아쉬움도 채워가는 우리나라 5대 큰 장터였던 화개장터는

관광객을 위한 상설시장으로 변한 모습에서 옛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평생의 원한이 50여 년 만에 화해와 용서로 서로에 감사하게 되었고

진정으로 아버지라는 세 마디에 팔순의 안타까움이 실렸다

곧 팔순이 되는 어머님은 간병이 고행이라 보이지만 얼굴은 밝다

우리가 천륜이라는 터에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치고 아버지라는 지붕과

어머니라는 온돌에 누웠어도 모두가 안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의 울타리에서 누워보지 않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모자간의 교감보다 간병전우로서의 소통의 시간이 길었다.

그리고.

중풍 30년이 넘었고 버림받은 40년을 자식의 안위에 내 팽겨 쳤다.

그것이 어머니요 세상 모든 어미들이다.

교차로에 진입하면 무심한 신호등에서도 생각 차이를 느낀다.

빨간불은 통제와 구속으로 느껴지기 쉬우나 잠시 숨을 고르면

먼저 보았기에 오히려 고통을 줄이고 파란불이 가까움을 알 수 있고

파란불은 희망이지만 머무는 시간에 대한 불안으로 조급증을 부르니

오늘을 살아가면서 파란 빨간불에 너무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면

집착에서 벗어나 여유롭고 쾌적한 드라이빙이 될 수 있으리라

같이 머무는 1분여 동안 평생 모르고 스칠 인연들을 돌아보면서

내 몸과 마음은 습자지라 세속에 쉽게 젖으나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봉우리를 만들고 넓은 잎도 만들고 있다

무슨 꽃이 되고 싶다고 발원을 하면서 젖은 잎은 물기를 뱉어내고

봉우리는 그 껍질 하나씩 벗겨내며 아직은 모르나 한 잎씩 접어

그렇게 연꽃을 만들어 간다.

이제 저 깊은 진흙 시련 속에 있는 생각들이 고통이라 여겨지지 않으면

나도 언젠가 나의 연꽃을 피워 볼 수 있으리라.

2012.7 쌍계사에서 法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