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을 스치며 지나는 바람이 잠시 멈춰 묻는다.

“너 뭐하니.”

술 한 잔을 껴안고 몸부림 칠 때 나는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아집 속에서 나를 위로하고 환경을 탓하는 소리에 매달려 있으니까.

빗물이 창을 두드리며 말한다.

“나 모르겠어.”

담배 한 모금 내 뱉으며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지만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고독과 외로움은 나의 것이고 나는 지금 무기력 증에 빠졌다

노부모의 편안한 웃음이 감사하나 다가 올 이별을 탕감해 주지는 않고

아내와 딸내미의 간드러지는 애교에 용기백배 하다가 돌아서 한숨지으며

점점 일이 벅차오는 무거운 마음을 보이지 못한다.

그렇게 나는 가끔 외로움을 아는 사람에게 위로 받고 싶은 어린 아이가 된다.

창밖 방충망에 나비 한 마리 애처롭다.

무심히 바라보며 그냥 저 비바람에 씻기기를 바라지만 처절하게 버틴다.

취한 눈 내려 깔고 다시 잔을 채우는 동안 쓴 웃음 지으며 안주를 집어 들었다

내 이 잔이 차고 다시 고개를 들 때 까지 버틴다면 너에게 말미를 주마고.

담배를 피워 물고도 두 어 모금을 내뿜는 동안을 더 애태웠다가 방충망을 열었다

잠시 신의 모습과 가피의 품위를 흉내 내며 환상에 빠졌다가.

정신없이 날아 든 이름 모를 나방의 좌충우돌 부딪치는 소리에 오한을 느낀다.

문득 신에서 나방으로 전락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지금 나는 나비가 아니다.

나의 신이 바라볼 때 나도 저 나방일 뿐이다.

나도 비바람을 헤집다 마지막으로 신의 방충망에 매달려 있다.

신은 내가 나비가 아니라도 내 처절한 몸부림에 방충망을 열어 줄까.

그 방충망에 애걸복걸 매달린 모든 바람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많이 취하진 않았을까.

우리 때문에 외롭지 않은 건 아닐까.

돌아서 온 집안을 휘 젖고 다닐 성가신 나방에게 자비를 베풀까.

내가 신이라도 취하지 않았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신이 나처럼 취하길 바라고 취하고 있다.

삶은 누구에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동기설정에 순리를 따르고 임하는 과정에 최선을 다하면 그만인데.

하지만 어려울 때 마다 신에게 때를 쓰는 어리광은 나를 슬프게 한다.

내가 무엇을 보여 주었는지 조차 모르면서.

지금 무능한 나 때문에 외로워 질 사랑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워 외롭다.

열심히 살았건만 그렇지 못한 시간들이 채운 족쇄를 풀어 주지 않는다.

업이라 하더라.

한 번도 앞서가지 못하고 늘 뒤쫓으며 허덕이다 갈증에 또 업을 쌓는다.

내 욕구를 채우기 위해 희나리를 태우던 매캐한 시간들이 지나고

이제는 식구들 선잠 깨우지 않으려 뒤꿈치 들고 연장 챙겨 나선다.

그리고 새벽바람을 가르고 적막한 곳에서 이삭을 주워 모은다.

하지만.

자꾸만 추워지는 날씨에 아궁이 지필 땔감이 턱없이 부족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땔감을 마련해야 하는데 나의 호미가 원망스럽고

귀가 길 봉지쌀을 들고 새끼줄에 끼워 든 연탄 한 장이 민망하다

겨울이 다가오는데.

그러나 외로움을 허리춤에 달고 오늘도 달려야 한다.

쓰러지지 않는 굴렁쇠가 되어 채우지 못하는 무능한 삶을 성실로 변명하면서

그들이 양해하는 그날까지.

찰랑이는 술잔에 비친 무심한 관객

비. 바람. 나방

그리고 신 보다 먼저 취해버린 나

이 비가 그치면 일 나가야지.

그래 그래야지.

하지만.

슬픈 옹알이는 관객들의 야유에 묻혀버리고

어둔 방 컴퓨터 불빛아래 쓰러진

50대 삐에로의 외로운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