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대장군은 각박한 시절을 지나 겨우 굶주림을 벗어 난 시기에

천하호테의 맏이로 태어났다

50여 년 전 어느 시골 면소재지에서 시계방으로 나름 자수성가하고

뒤 늦게 명예욕에 신문기자를 하게 된 천하호테는 자전거도 귀한 시절에

250cc 오토바이에 00신문사 깃발을 휘날리며 카메라를 마구 들이대더니

급기야 검은색 지프를 타고 다니게 되었다.

여기서 천하호테 본색은 시작 되었고 세상은 손 볼 것이 너무나 많았다

문제는 그 시작이 잘못 되었다는 것인데.

사나이가 궁색 떨면 안 된다고 수신제가를 접었고

머리에 포마드기름 떡칠하고 카메라를 목에 걸고 치국평천하에 나섰으니

명분과 허우대는 그럴듯했으나 싸가지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풍차를 보고 달려드는 우매함은 차라리 순수하기라도 하지

적당한 명분에 만만디만 골라 바람개비를 돌려 되고

지금도 벽에 걸린 도지사 원호청장 경찰서장 등등의 감사패 상장 등은

아마도 구두닦이 소년들과 그 때는 형이라고 불렀지만

그들을 우리 집에 숙식하며 돌보았을 때 받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데려오기만 하고 상을 받은 셈이다.

나머지는 납작여장군 우리 모친의 몫이었으니까.

아.

목욕시키고 사진 찍어서 신문 구석에 몇 줄 올랐던 것도 같다

해군하사관 출신으로 참전 용사에 의협심 강했고 젊은 나이에 자수성가하여

큰아버지의 술과 노름빚으로 넘어 갈 뻔 했던 문전옥답을 회수하고도

소도 한 마리 몰고 가 외양간에 떡하니 밀어 넣고는 호탕하게 말했다고.

“형님 안주가 싱싱하고 푸짐하지요.”

“이 사람아 싱겁긴……. 나도 인자 정신 차렸어.”

큰아버지의 민망스런 변명에 할아버지를 보고 다시 한 번 큰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형님에게 절대로 소고삐는 주지 마소.”

(.....................)

“대신 칼을 주소.”

(..........................................................)

“맛있는 부위를 골라 술안주로 조금씩 베어 먹게.”

그리고 돼지 한 마리를 잡아 동네잔치를 벌였는데 동네 아가씨들의 호감을

독차지하게 되었고 거기서 골라잡은 숙주로 천하대장군을 잉태하게 되었다.

무남독녀에 홀어머닐 선택했던 것부터가 어머님의 미모나 순박함은 뒷전임이

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오는 50여 세월에서 쉽게 파악 되었다

근본이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생활이 좀 여유가 생기자 오만해지기 시작했고 어수선한 시절에

그것은 특별한 이권이 되어 주었다

밤새워 일하던 사람이 수제자를 만들고 가게를 맡겨두고는

여색을 밝히고 실내 화전놀이에 다방에서 음담패설로 시간을 보내다가

당시 고급 취미생활로 여기던 당구장에서 하루를 죽치고 살았다

머리 터지라 기술을 배우려고 안달하던 사람들에게 그는 굳건했다

우리나라 특유의 장인정신을 철저히 지켰던 것이다

뭣이야.

자기가 가진 기술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먹고 설사를 할지언정 남이 허기를 면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

그런 그에게 수제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바로 뛰어 난 미모를 가진 누나의 미인계에 무너졌던 것이고

시대를 변명삼아 수신제가를 무너뜨리고 훗날 가게도 그에게 넘기게 되었다

그것이 천하호테의 수 십 명의 여자 중에 첫 여자였고 순박한 아내의 인내와

나 천하대장군의 철없는 시절이라 야금야금 잠식했던 것이다.

지금도 미스터리가 어떻게 수제자에게 빚으로 가게를 넘겼을까 하는 것이고

그 이후의 사건들은 악몽이라 이만 접는다.

천하대장군은 어린 시절부터 지켜 본 천하호테의 망나니 짓거리에 치를 떨었고

제대로 배울 게 없다고 무엇이든 반대로 하기로 했다

그래서 술을 못하는 호테와 반대로 체질이 아닌 듯 했지만 술을 배웠다

진정한 남자는 호탕하고 대범해야지 잔대가리를 굴리면 안 된다는 기치아래

오바이트를 해가면서.

여기서.

실리주의자들이 누누이 강조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기법이 있다

그것은 악조건 속에서도 이빨을 깨물고 해야만 손실이 적다는 이론인데

몇 번을 시도하다가 도리어 코로 쏟아져 질식할 뻔 하고는 다시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일에 무심하고 여자를 멀리하고 절대로 배신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은 머리를 깎고 입산수도 하는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피는 못 속인다고.

여인들이 수려한 용모에 유머와 달변에 공부도 잘하는 자신을 가만두지 않았다

그리고 운동신경 또한 남들에 앞서 언제나 주전에 주장이었다.

반장은 도맡아 했고 가방 들어주는 비서진과 머리 둔한 어깨도 늘 곁에 있었다.

골목에 “대장군 애인은 누구다.” 라는 낙서를 보면서 등교를 했는데

누군가 질투해서 그랬거니 생각했지만

어느 날 뒷집 순이가 다른 아이 이름을 지우고 제 이름을 쓰는 것을 우연히 보고는

어린 나이에도 이것이 업이구나 생각했었다.

(휴... 촌 가시나들이 잘난 것은 알아가지고.)

지금 생각하면 방앗간 딸 혜경이 주유소 딸 은숙이 양조장 딸 인애.

모두 아까운 애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체육 시간에 배 아프다고 남았다가 내 가방에 사탕을 넣어주던 혜경이

석유 사러 가면 우리 숙이 데려 가거라 든 아버지 말에 얼굴 붉히던 은숙이

술밥인지 뭔지를 한 주먹씩 안겨주던 인애.

아. 그때 못 이기는 척 앵길 것을.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군엘 갔다 오니

가산을 탕진하고 뇌졸중으로 쓰러져 데리고 살던 애첩마저 야반도주하고

집을 나와 식당에서 일하던 어머니와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조달하던

우리에게 앵긴 세월이 벌써 30년이 넘은 호테는 그래도 아직 천하호테다

언제 철이 들는지.

천륜을 지키는데서 부터 인내하며(기실 반항의 시간도 쬐끔 있었지만)

도리와 명분을 중시하고 수신제가를 원칙으로 살아 온 천하대장군은

늘 천원에 착점하였고 사통오달의 자리요 순리의 꼭지점이라 강조했다

그런데 마주 한 여인의 착점은 삼삼이다.

“천원 가지고 뭘 해요.”

“기껏 오뎅 2개나 핫도그 1개 값인데”

“하긴 9원을 얻으려 몸부림치는 것 보다야 부자네”

지하여장군의 실전적 실리주의 논리에 부닥쳤고 행마가 어렵다

인간 도리를 하면서 실리를 챙길 수 없다

하지만 인간답게 사는 것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련을 극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수많은 세파의 뭇매를 맞으면서도 지금껏 링에서 버티고 있으니

세상살이 맷집은 천성인지 단련인지.

호테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가정을 중시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기에

스스로 이만하면 대장군이라 했거늘.

드디어 대장군의 현란한 실전초식이 펼쳐졌다

“새벽 3시에 기상해서 8시까지 일하고 아침 먹고 당신 출근시키고

그리고 돌아와 설거지하고 청소기 돌리고 물론 그전에 밥해놓고 가야지

다시 저녁 5시까지 일하고 당신 퇴근시키고 밥 먹고 설거지 하고

찌개 국걸이도 수시로 준비해야하고

좀 쉬었다가 새벽에 다시 일어나 일 나가고 비번 전날은 새벽까지 일하고

밖에서 일하는 시간이 주 70시간이요 비번 일 때는 집안 대청소까지 시키지

그리고 또 호테 병간하시는 어머님 교대해야하고.

이제 날씨 풀리면 어머님 텃밭 일까지 해드려야 하는데

실제 내가 하는 일은 하루 15시간도 넘어.

내가 한 바쁘하잖아.

이걸 천하대장군이 아니면 누가 하겠어. 내가 괜히 대장군이야. “

(.....................)

뭔가 먹혀들어 가는 가 하는데.

“요즘 자기 나이에 안 그러고 밥 얻어먹는 사람 봤어.”

“그 사람들 죄다 대장군이야.”

(.....................)

“열심히 하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장군감은 아니야 무전불편.”

딱 삼 초식에 행마가 나오지 않는다.

연속극 보러 가는 사이에 슬며시 일어 나 냉장고 문을 연다.

양파와 배추 파를 썰고 애호박 조금에 멸치를 넣고 찬장에서 칼국수를 꺼낸다.

마눌님이 좋아하는 칼국수를 끓여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뭐 해용”

“갑자기 칼국수가 먹고 싶어서 자기도 같이 먹을래.”

“당연하지용.”

다다다다닥.

뭔가 속보이는 것 같고 마눌님의 킥킥대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도마소리를 크게 낸다.

(여자들이 어찌 남자의 깊고 넓은 속을 알리요)

혼자 중얼거리며 수신제가는 그럭저럭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다음코스가 뭐였는지 도대체 가물가물 혀끝에서 뱅뱅 돈다.

치고 빠져. 이건 아니고

치고 펼쳐라. 에이 뭔가 비스무리 하지만 아냐.

집밖에서 하는 그럴듯한 야외용인데 나이 탓인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내가 뭐 나라를 구할 것도 아니고.”

국수가 삶아 질 때까지 음식물 쓰레기 분리하고 화장실 쓰레기통 비우고

설거지 남은 거 하고.....

갑자기 대장군의 일손이 바쁘게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