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가게비우고 집나간 아버지를 찾아다닐 때 순서가 있었는데

당구장. 이발소. 그리고 마지막에 다방으로 갔다

당구장은 이층이라 먼저 가는 게 유리하다는 막연한 생각이었고

이발소는 당구장과 다방 중간이었으며

다방은 마지막에 가야 혹시 모를 로또가 기다리고 있었다.

배꼽인사 몇 번하고 삐줏거리면

아버지 지인으로부터 가끔 용돈이 생기거나 말표사이다 우유 한 잔이 얻어 걸리기 때문이다.

아이스케이크가 먹고 싶었고 형 누나들이 데이트하는 자리에 놓인 붕어빵도 먹고 싶었고

여름엔 단팥이 흐드러진 빙설이 겨울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과 어묵이

고구마 쪄서 엿으로 버무린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당시 고급간식도 있었고

그때 처음으로 나온 것 같은 호빵이 아직도 보임은 감회에 젖기까지 한다.

그러고 보니 호빵의 역사가 50년이 되어가네.

당면만 넣은 납작 만두도 떠오르고 행사 때 빠질 수 없는 솜사탕과 설탕 녹여 만든 뽑기

막걸리 공장의 고두밥까지 떠오른다.

젖 많이 나오게 한다고 막내 낳고 자주 막걸리 시키던 어머님 몰래 훔쳐 먹던 맛

지금은 달콤하고 시원했던 것들에 건강을 위해서 멀어지는 나이에도 마음은 군침을 삼킨다.

장날엔 장터를 배회하다보면 가끔 돈을 줍기도 했었지

하나 있던 극장에 아는 사람 오면 배꼽인사로 눈도장 찍으면 손잡고 공짜로 들어갔고

서커스 오는 날이면 개구멍 찾기에 혈안이 되었지.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끝까지 기다렸다 문지기들의 선심에 극장 문이 미리 열리면

마지막 장면이라도 보러 우르르 들어갔었다

여름에는 아카시아 꺾어 참호를 만들고 나무칼 싸움했었고

비 오는 날이면 모두 거의 팬티차림으로 시냇가에 몰려들었다

돌을 쌓고 못을 만들어 물을 가두었지 수문을 열어 누가 튼튼하게 만들었는지 가늠했고

종이배를 만들어 가라앉을 때까지 따라가며 순위를 정해 꿀밤 따먹기를 했었다.

집집마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거의 자전거 하나는 있었고

다리가 짧아 안장에 앉아서 타기엔 역부족이라 글로 표현하기 힘든 모습으로 탔었다

어린 동생을 태워 다니다 넘어져 혼비백산하기도 했고

신문배달을 하면서 가장으로서의 미미한 자부심도 느끼게 했었다

친구 과수원에 알바(?)로 과일을 따주고 해거름에 러닝셔츠에 한 아름 받은 수당을 들고

금의환향 하던 모습도 새록하다.

골목 벽에 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이름을 내가 싫어하는 아이의 애인이라 떡칠했지

그리고 그 여자 아이 다시 보지 못했고. (어떻게 내가 한 줄 알았을까)

그땐 시시티비도 없었는데.

전봇대를 등진 오너에게 머리를 박고 그 엉덩이에 줄을 달아 머리를 박은 채 말 타기를 했고

술래잡기와 딱지 구슬치기 못 치기 땅따먹기 타작이 끝나면 볏짚으로 미로를 만들었다

공기놀이와 돌을 세워두고 쓰러뜨리기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마당에 원을 거려놓고

놀던 놀이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고 단순한 놀이였지만 그때는 땀을 뻘뻘 흘리며 놀았었지.

그때는 상상도 못했던 삶을 살지만 그때보다 행복하지 않아 그리운 시절

허기에 맛까지 있으면 세상이 다 내 것 이였는데 이제 늘어진 맛에도 손 갈 곳이 없다

가끔은 돈이 모자라고.

요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면서도 충동도 자주 느낀다.

여태 죽어 왔는데 늘 이렇게 살 것 같고 내 의지대로 살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 삶

추억 한 자락 입에 물고 술을 따른다.

언젠가는 아니 조금 더 가까운 시기에 나도 내가 잊었던 그 사람이 되겠지

조금은 아쉽지만

그렇다고 애닯지도 않다

내가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듯 그들 또한 나를 알아주지 않았으니까.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가끔 청하기도 하고

원하지 않은 부름에 응하기도 하면서 나는 지킨다는 자위를 하면서 사는 건가 보다

지난날은 마른 술에 촉촉한 안주가 되고 나는  채우다 벙어리가 된 동그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