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마음은 바다 같다고 했다

자식을 위해서면 세상의 모든 시련들을 말없이 받아들이고 행여나 하는 마음에

불면증으로 잠 못 이루고 철썩인다.

하지만 우리는 그 파도 소리의 의미를 모르고 자장가 삼아 잠들곤 했다

훗날 낙제자식은 가끔 울먹이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일등 부모노릇에 혈안이다.

자신도 모르게 바다가 되었고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에 회의를 느꼈는지 그의 부모가 그러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세상엔 각종 짐승들에게 자식의 애정을 빼앗긴 짐승보다 못한 부모 또한 많다

그래도 내리 사랑이라고.

우리는 열심히 자식 농사를 짓고 내가 그리했듯이 어음 한 장 받아들었을 뿐이나

복권보다 미덥고 때로는 요기가 되고 때론 갈증을 풀어주니 보람과 위로가 되어

늘 가슴에 품고 산다.

그렇게 혹시나 하며 살아가다 어쩌면 무덤까지 가져갈지도 모르지만.

“아빠 있잖아.”

“웅”

“나 어저께 면허 시험 봤는데 말이야.”

“웅”

“오빠가 자꾸 전화 하는 바람에 떨어졌어.”

(...................)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병원에서 호출이다.

병원이라면 환자거나 보호자지만 대개 호출한다면 환자 동행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비가 내리니 어째 내키지 않는 건 평소와 달리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갈까 말까.

(에라이. 내가 할일이라면 가랄 것이고 아니면 말 것이고.)

호출이 나왔을 때 내가 원한다고 가고 말고가 아니라 거리가 가까운 차에 지령이 내려진다.

예전과 달리 첨단 시스템으로(GPS) 배차를 하기 때문이다

(팔공선달 出)

(어련하시겠습니까..............)

뭔가 일이 꼬일라치면 내 의사와는 다르게 가거나 늘 하던 일마저 귀찮아질 때가 있다

20여 년을 해온 봉사활동도 가끔씩 회의를 느끼기도 하고 성가실 때도 있다

고마워 해주면 보람 있지만 바라거나 오히려 당연시 하면 의욕이 확 달아난다.

그리고 난들 왜 몸과 마음이 상할 때가 없겠는가.

어저께 집사람과 기분 좋게 한 잔하다가 딸내미 장래 문제가 민생고에 부딪쳐 한바탕하고

아침도 거르고 나온지라 만사 의욕이 떨어지고 집중력도 헤이해진데다 비까지 내리니.

“호출 하셨습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빠가 불편하신데 어쩌죠.”

병원 로비에서 만난 아가씨는 궂은 날씨에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저 안쪽에 시선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니 휠체어에 앉은 중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나도 난감하다

우산을 들고 부축하기는 자세가 안 나오고 빗줄기는 제법 굵어졌고 보호자는 아가씨고.

할 수없이 들쳐 업기로 했다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뭘요. 자주 하는 일인데요.”

“집에서 어른 때문에 30년 넘게 연습해서 이제 이 방면에 나름 장인입니다.”

“정말요.”

아가씨는 놀래면서도 상황에 대한 안도와 동료의식 같은 반가움이 스쳐갔다

실상이 그렇지 않아도 그랬음직한 말이었지만.

사실 간병하는 사람들의 생태계 그 허와 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당사자의 예민한 감성의 변화는 그 어떤 이론도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영역인데다

그리고 30여 년의 시간들.

일반적으로 자신의 인내는 태산과 바다에 비유하고 상대는 도덕경에 비유한다.

소통은 고사하고 당연한 것과 특별함의 오해는 평행선일 수밖에.

그래서 남대문이 잠겨 되돌아 온 사람은 말이 많고 다녀 온 사람은 필요할 때만 한다.

“아빠 1년 안에 일어나야 돼.”

“웅”

“휠체어 타고 나 데려줄 순 없잖아. 그지.”

“웅”

“나야 어째도 괜찮지만 그래도 낫는 게 좋잖아.”

“웅”

“아빠 우리 낼 팔공산에 오리고기 먹으러 갈까.”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럼 꿩고기.”

“아빠가 꿩 샤브샤브 좋아 했잖아.”

(...................)

“그럼 칼국수.”

“멧돼지 고기가 좋을까.”

아가씨는 짜증도 내지 않고 팔공산 먹거리를 죄다 읊어댄다

아빠는 “웅” 이라는 말 빼고는 머리를 가로 젓는 게 전부고.

20여 분 가는 동안 대화를 듣자니 요즘 보기 드문 참 참한 아가씨다.

조만간 결혼 날짜도 잡힌 것 같은데.

결국은 목적지에 다다를 때 쯤 “응” 이라는 소리가 나왔는데 냉면이었다.

미리 전화 연락이 되어 아파트 입구에 중년의 여인이 우의를 입고 우산을 들고 서있다

나는 이미 옷이 좀 젖었기에 입구까지 바래다 줄 생각으로 안전띠를 풀고 나서려는데.

“아저씨 이젠 됐어요.”

“아니 그래도…….”

“아니에요. 지금부터는 엄마랑 할 수 있어요.”

“아참.”

“엄마. 엄마.”

“아저씨가 아빠 업고 태워 주셨어. 근데 아빠 우산 받치다보니 아저씨는…….”

“옷 많이 젖었을 텐데 어쩌지.”

“저런.”

“근데 요금은 얼마 나왔어요.”

“아. 네 12000원 나왔습니다.”

“아 네. 여기.......”

2만원을 받아 들고 거스름돈을 내어 주려는데 극구 사양하고 가신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차를 돌리려는데 아가씨가 나에게로 달려온다.

(뭘 빠트렸나)

차안을 둘러보아도 그런 건 보이지 않았는데 창문을 두드린다.

창을 내리고 로비로 손짓을 하기에 바라보니 그 중년이 나를 보고 고개를 숙인다.

그는 뇌졸중인 것으로 보였고 팔과 다리를 쓸 수 없는 듯했다

순간 나는 가슴이 콱 막히고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창으로 몰아치는 비바람도 아가씨에게 민망함도 잊은 채 목 메인 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부디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아저씨.”

얼핏 보았지만 아가씨 눈에도 눈물이 고였던 것 같다.

촤촤촤촤...............

빗길을 달리는 소리와 차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새삼 시원하고 후련하다.

나는 지난 30여 년의 시간에 한 번도 저 아가씨처럼 애정 담긴 간병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리에 내몰리고 애증의 천륜을 원망하면서 끌려 왔었다

이제 막바지에 이르러 겨우 연민을 느끼는 정도니

부모를 공양함에 있어 모시려 말고 자식으로 받아 들이라는 좌우명이 부끄럽다.

그 아가씨 가족을 보니 나는 비록 부모를 자식으로 입양했으나

마음은 바다가 아니라 요강이었고 나는 그 속에 빠진 소금쟁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20여 년 버려졌고 30여 년 간병의 멍에는 소금쟁이에겐 요강만큼이나 두꺼우니

어리석은 중생 그리 살다 가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