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개 짖는 소리도 소쩍새 소리도 없다.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키라지만 그게 그건 것 같으면서

품세가 조금 다른 듯도 하다.

끌려가는 듯 자학하는 모습과 즐기지는 못해도 적응하는듯한 차이랄까.

그렇게 세상 산다는 게 피차일반인 듯하면서 체감은 다른가 보다.

하루를 마쳤다면 몹시 지친 상태일 것이고 나처럼 시작한다면

어제의 피로에서 거듭나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다

열심히 살았다고 열심히 산다고 자신을 위로하지만 그 경계의 정점에서

서민의 하루는 작은 대가를 품고 쓰러지고 큰 희망을 안고 나설 뿐이리라.

잠시 인터넷 접속을 하고 낯익은 분들과 안부를 묻고 하루의 안녕을 나누며

커피를 내리고 계란 하나에 들기름 한 숟갈 들이킨다

새벽에 일 나가며 이것저것 챙길 수 없다

이 새벽에 나가는 것은 수십 년 습관이기도 하지만 작은 명분과 변명이기도 하다

열심히 살다 간다는 것.

거기에 30여 년 전 한 노인 내외와의 인연도 이유가 있다.

추운 날이었는데 그날은 우연히 일찍 나서게 되었는데 어둠 속에서

몽둥이를 들고 길가로 뛰어드는 할머니를 보고 깜짝 놀라 차를 세웠다.

“할머니........”

화도 나고 어이없어 창을 내리고 고함을 질렀는데 사연은 그게 아니었다

인도에 보따리를 잔뜩 쌓아 놓고 그 옆에 일행도 있었다.

할아버지였다

뭔지 모르지만 채소를 트렁크 뒷좌석 가득 싣고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앞 좌석에 앉으셨다.

할머니 무릎에 할아버지가.

“왜 어르신께서 차를 잡지 않고 할머니가 위험하게 그러셨어요.?”

나는 첫 손님부터 험한 마수를 하면서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때 할머니가 팔순이었던가.?

그리고 아버지가 중풍으로 누워 있었기 때문에 노인들에 대한 연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10년 후 할머니가 치매가 오면서 집안과 내 사생활이 엉망이 되었지만

사람 도리 하며 살았기에 후회되지 않는 삶을 마무리하려 한다.

“영감이 중풍이 걸려서 잘 걷지를 못해요.”

“아 이 웬수 같은 영감이 장사하러 가는데 꼭 따라나서니 우짜겠소.“

그러면서 할머니는 할아버지 다리를 연신 주무르셨다.

짐 많고 노인네라 차를 잘 세워주지 않아 매일 한 시간 이상 고생하신다 했다

마치 내가 죄인이 된 듯 집에 할머니 아버지 엄니 생각에 울컥했다.

한 시간 만에 한 번 만나는 사람이라........

그런데 지금은 하루 만에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칠성시장까지 20여 분 걸리는데 할머니의 수다가 성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귀엽다고나 할까.

진심이었는지 객기였는지 나는 그분들에게 약속을 하게 되었다.

”제가 술도 사람도 좋아해 매일은 안 되지만 일주일에 3일은 모시께요.“

쉬는 날 2일 빼고 5일 중에 3일이면 변수를 감안해도 엄청난 조건이었다.

약속을 지키려 새벽길을 나서며 처음엔 후회하던 일이 습관이 되었던 것이다.

2.~3년 후 그 내외분과 헤어지던 날 할머니가 저에게 만원을 꼬낏꼬깃 접어서

내 손에 꼭 안겨 주시며 하신다

”우리 이제 아들에게 가요. 그동안 고마웠소. 복 받으소.“

그날은 이상하게 짐이 없어서 궁금했는데 물어보려던 참에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난전에서 채소를 파시든 그곳을 한 바퀴 돌아 보시곤 말없이 눈물을 흘리시던 할머니

자식분들이 모신다니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좀 늦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그 동네가 곧 재개발 되었다.

말도 없이 제 손을 잡아 주시던 할아버지. 아니 그냥 할머니가 얹어 놓으셨던 것이다.

움푹패인 그 처연한 눈빛.

30여 년이 지난 내 얼굴을 보면서 지금에서야 마음에 와 닿는다.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셨을까.?

별의별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그분들의 안녕을 빌며 마음 여릴 때 떠올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