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겨울을 알리고 아침저녁으로 옷깃을 여민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게 계절뿐이겠냐만

내가 힘든 건 능력이고 타고난 팔자라 변명이라도 하건만

잘 먹고 잘사는 인간들과의 인연은 내 탓이 아닌데

아무 관계 없으면서 왜 내 일상을 좌지우지하는지 모르겠다.

하나 같이 구국일념으로 우리 같은 서민을 위해 한다는 짓거리가

길냥이와의 관계만도 못한지.

나는 고양이를 혐오하지도 않지만 그리 애틋하지도 않다.

뱀은 죽어라 싫어하는 게 스멀스멀한 행동과 교활하고 혐오스러운 혓바닥이다.

어쩌면 연체동물은 다 싫은지도 모르겠다.

운전이 직업이다 보니 흔하게 보는 로드킬에 고양이가 유독 많다.

가끔은 애틋함보다 실소를 머금게 하는 날짐승들도 드물게 있지만.

예전에 몇 년간의 인연을 맺다가 로드킬 당한 녀석을 집 앞에서 발견하고

참담하고 미안한 마음에 짓이겨진 시신을 텃밭 구석에 묻어 주었다

그리고 일 년인가 이년인가만에 만난 녀석이 유독 그 녀석을 닮았다 싶었는데

하는 행동마저 똑같다.

베란다 아래서 부르다(1층이라) 안되면 올라와 문을 두드린다.

얼마 전에는 새끼 5마리를 물고 와 앞 동 텃밭에 물어다 놓고 나를 부르는 것이다.

그 녀석 자식 자랑까지 하는구나 싶어 대견하게 생각해 먹이를 좀 더 신경 썼더만

그것들이 텃밭을 망쳐놓아 이웃과 불화가 생겼다.

그렇게 이쁘면 집에서 키우지 왜 남의 밭을 망치냐고

엄니에게 대드는 젊은 아낙을 일하고 들어오다 마주쳤다

차에서 내리다 순간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 아낙을 쳐다만 봤다

그때 내 눈에 살기가 있었는지 후다닥 집으로 가더니 잠시 후에 남편이 나왔다.

“하하하 요즘 장사 안되죠.”

“힘듭니다.”

“저놈들 나도 가끔 먹이를 주지만 유독 사장님 댁만 찾네요”

“그게 저도 궁금하고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네요”

“집에서 키울 만큼 애정도 없지만 그럴 형편도 아니고.”

그리고 같이 담배 한 대씩 피우고 돌아서며 내가 말했다

“그래도 이놈들이 댁의 텃밭을 망치니 저위 텃밭에다 먹이를 갖다 줘야겠습니다.”

그러니 씩 웃고 돌아서 갔다.

자칫 큰 싸움이 날뻔했지만 그렇게 수습한 나도 대견했고 이웃도 고마웠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니 이년이 또 새끼를 놓았다.

이제 이웃의 텃밭을 망칠 일은 없지만 이 추운 날씨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래도 무전취식 하는 년이 매일 두세 번은 문을 두드린다.

사진을 못 올리지만 그 표정이 가관이다.

(미안하지만 한 끼 부탁합니다. 새끼들이 있어....)

눈을 게슴츠레 깔고 호소력 있는 소프라노로 야옹거린다.

누가 내칠 것인가.

동물농장에 나오는 천사 같은 집사들도 먹이만 주지 이런 사례는 흔치 않다.

먹이를 준다고 그들이 이런 식으로 친근감을 보이지 않는다.

엄니가 텃밭에 일하면 온종일 껌딱지처럼 따라다니고 배고프면 나에게 온다.

그리고 내 차 소리 문소리 우리 집 문소리까지 구분한다.

그들도 영역싸움이 치열하다.

내가 먹이를 가져다줘도 주변을 살피며 쉬 먹지를 못한다.

처음엔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되어 내가 잠시 곁에 있어 주면 허겁지겁 먹는다.

하찮은 미물과 짧은 인연에도 교감이 생기는데 우리는 뭔가.

서로에게 뱀 같은 행동을 하는 정치인들과 그들에 줄 서는 머리에 꽃 꽂은 인간들

나는 차라리 그들 중 누군가 되기보다 고마워하는 미물에게 여분을 주려한다.

그리고 혹여 기회가 온다면 그들에게 내가 길냥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