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하게 야윈 달도 숨은 날 오랜만에 자판을 당긴다

갑자기 몸이 안 좋아 보름 정도 누워있었는데

하루하루 벌어 버텨가는 일상이 무너지는 중압감보다

영원할 것 같은 삶의 종말마저 느꼈던 시간들.

동안 늘 생각하던 마지막 날을 수없이 돌아보았다.

신세졌던 사람들에게 술 한잔 사고 바둑 한판 두고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감사하는지를

약간의 취기로 회한을 나작에 한 줄 남기고 미안한 마음 부여잡고

어쩌면 조금은 잘한 것도 있을지 모를 것들을 떠 올리며

애써 웃음 지으며 마무리하고 싶었다.

지금이 그때인가 생각한 보름.

눈에 채이는 사람들중에 유독 안스러운 것은 엄니였다

할머니 아버지 간병 30여 년을 같이 하면서 모자지간이 아니라 전우 같은 엄니.

내가 기력이 쇠진한 이 순간에 모든 걸 내려놓고 전우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생각이 더 짐을 안겨 주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제 88세

세파의 총알과 지뢰를 밟아 내가 먼저 쓰러졌지만 나를 부축할 기력이 없다.

남은 길을 모르시기에 나를 두고 가시지도 못하신다

아마 나의 마지막을 지키시다 내 옆에 쓰러지실 것 같다.

일어나야 했다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아야 하는 의무. 책임이었다

부러진 다리 끌고 내상을 부여잡고 내가 앞장서서 길을 나서야 했다.

그렇게 뒤따르는 엄니의 눈에 안타까움과 안도의 평온을 본다

내가 몇 안 되는 선한 일을 하는가 보다.

이제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고 있고 그렇게 할 수 있게 배려한 모든 것에 감사한다

새해에는 좀 더 성실하고 건강한 일들로 나작을 찾고 싶다.

동안 뭇 사람들의 비웃음을 감내하면서 삶의 회한을 나누려는 나작님들의 용기

그 열정과 소신에 감사함을 전한다.

오늘이 그 길었던 어둠이 끝나는 날이다.

이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밝은 날이 많아지고 길어질 것이다.

나에게도 여러분에게도 그리고 내가 미워했고 나를 미워했던 사람들에게도

골고루 비춰져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했으면 좋겠다.

나와 너의 진실은 없다고 본다.

나는 나로서 나고 너는 너지만 우리로서 존재하고 서로에게 신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