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르륵. 콩 콩콩……. 작은 소주잔을 채우는 소리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시월인데 개 짖는 소리도 풀벌레 소리도 없다

소주 따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적막을 가르고 창가 야윈 달과 서로를 애처롭게 보는데

귓가에 원인모를 윙 하는 소리만 소음같이 들린다.

간혹 멀리서 들리는 타이어의 굉음소리와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만 들리는 밤

방충망에 부딪치며 타닥거리던 나방소리도 멎어 이제 내 자판소리만 홀로 타닥거린다.

구석진 곳에 몇 마리 매달려 있는 걸 보니 지쳐 잠이 들었나보다

처절하게 뭔가를 갈망하며 몸부림치는 게 내 삶과 별반 없는데 불이나 끄고 놀아야 했나.

신도 어쩌면 저 나방처럼 나를 귀찮아하는지도.

감기몸살로 며칠간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들락날락했다

내일 비번인데 여느 때 같으면 새벽까지 일하고 들어와 쓰러졌을 시간인데 일찍 마신다.

일은 컨디션 탓인지만 술은 관계없다 숙면을 위해 필요악이니까.

한 번 걸리면 일주일

사실 병원에 가도 최하 일주일이니 면역차원에서 술과 생강 끓인 물에 뀐지님표 꿀이 전부다

그것도 밑바닥을 보이고 있고.

그리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정도.

모니터 앞에 코푼 휴지가 가득 쌓였고 한 병은 기울기를 끝내고 부동자세다

“어쩔 껴.”

“끝내. 아님 다른 애 불러 줘. ”

마누라보다 구이 집 여사장보다 더 생뚱맞게 쳐다보는 놈.

(그려 한 병으론 좀 그렇지)

“선달아. “

“네 형님.”

“내가 말이야........................”

요즘 비몽사몽 헤매는데 식구들도 걱정은 하지만 그렇게 낫는 걸 봐왔으니 말리지도 못한다.

그런데 그 시절님 병문안 일로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태**님이 의외의 말을 했다

약술이 선물이 들어왔는데 자신은 별로니 갑자기 술 좋아하면서 안주 잘 안 처먹어 밉상인데

그래도 쪼매 고생하는 선달이가 생각나서 보내신단다.

가난하다고 생각하신건지 안주 안 처먹는다고 그러신 건지 햄도 3캔 곁들여서.

근데. 요즘 흔한 카놀라유 작은 것 한 병은 또 뭔 뜻인지.

택배 보내기가 여의치 않아 몇 번을 거부당했다고 연락을 받고 관두시라했건만

기어이 고속버스 편으로 보냈다고 기별이 왔다

몸살 나 비실거리는 놈 이왕이면 때깔 좋게 죽으시라는 건지.

다른 때 같으면 식구들에게 힘줄 일이지만 지금 술병 들고 뭐라 해야 되는지.

(이건 강원도 어디에만 나는 뭐고 이건 제주도에만 나는 뭐라는 건데…….)

그래봤자 식구들에겐 술이다.

여자를 이해시키기 가장 어려운 게 도리와 명분이고 실속 없어 보이는 우정이다

더 재미없는 건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겠지만.

어쨌든 성의가 고맙고 무엇보다도 잊지 않고 기억해준 것이지만 선물까지 보내셨다

그것도 선달이가 좋아하는 공짜 술이다.

갑자기 엔도르핀이 마구 솟아오름을 느끼며 달려갔다

연휴라 터미널이 복잡한데다 약식으로 전달받아 각 화물 코너를 일일이 섭렵하여 찾았다

소주병 두 개 정도의 양이라기에 별 생각 없이 갔는데 큰 선물상자에 무게도 묵직했다

담은 술병이라 길었고 또 이것저것 챙기신 데다 포장까지 겹겹이 하신 게 여간 아니었다

차라리 푸는 내가 힘들 정도였다면 어떠했겠는가.

오는 길에 잠시 손님을 모셨는데 웬걸 짐을 바리바리 싣는 게 아닌가.

분명 길가에 혼자였는데 차를 세우니 아들딸과 부인이 우루루 달려들었다

골프채. 캐리어. 배낭. 그리고 여자들의 이런저런 소지품에 가방.

“잠깐만요. 저도 방금 택배를 받아 오는 길이라....”

트렁크를 열어 놓고 난감해하자.

빈 택시가 터미널에 줄을 서 있었는데 몇 십 미터도 안 되는 거리라 다른 빈차를 권했더니

“그게 그렇습니다. 가까운 거릴 가는데...........어떻게 안 될까요.”

허참.

“어떻게 하기가 쉽지 않지만 어떻게 해봅시다.”

트렁크에 못다 실은 짐은 앞좌석에 싣고 뒤에 애들까지 4명이 포개 타고서야 정리 됐다

벌써 몇 대를 놓쳤다며 감사해 했다

줄 선 차들은 이짐과 식구에 가까이 가면 못마땅해 하는 건 둘째고 자칫 욕까지 먹는단다.

가족여행 잘하고 와서 욕먹기 싫어 그랬다는 것이다.

가히 용달을 불러야 할 짐들과 식구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가까운 거리지만 정체로 요금이 4100원 나왔다

“4000원만 주세요.”

“아.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동전이 없던 차에...............”

짐을 내려주고 멀어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하늘을 향해 내뿜는 연기 속으로 그 사람의 동전 같은 소리가 꼬리를 물고 날아간다.

동전이 없던 차에.........동전이 없던 차에.......

기분을 완전 잡쳐 일을 접고 오늘 선물 받은 술로 달래기로 했다

옛날 통닭에 한잔하고 내일도 새벽에 다시 출발하자.

선물 꾸러미를 풀고 닭다리 하나를 접시에 담아 컴터 앞에 상을 차렸다

자자. 모든 건 지나갔어.

나만의 향연을 위해 한껏 부풀어 이왕이면 예쁜 주전자를 찾아 술을 따르기로 했는데

이건 또 뭔가.

마개가 따지지 않는다.

선물을 믿고 따로 술을 준비도 않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오. 酒여. !!!

별의 별 짓을 다하다가 결국 슈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일하는데 연락이 왔다

“그래 문자 봤어. 잘 받았으니 다행이고 몸에 좋은 것이니 한 번에 과음하지 말고......”

“네네.”

“그런데 형님.”

“응”

“마개가 안 열려요.“

“그래. 그건 나도 잘 모르지”

“그래서 상 차려 놓고 슈퍼 가서 소주사다가 한번 쳐다보고 소주 한 잔하고 그랬어요.”

“아하하하하하하”

즐겁기도 하겠다.

“나도 몰라 구멍을 뚫어 스트롱을 박든지 병을 깨서 핥아 먹든지 네놈이 알아서 해라.”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 호탕하고 통쾌한 웃음.

음. 이건 음모닭.

그럴 듯한 약술 병을 쳐다보면서 한잔 또 한잔을 꺾다보니 사람이 고맙고 정이 고맙다

술을 보내주신 성의를 더 새기며 마시라는 계시로 보고 천천히 오픈하기로 했다.

그리고.

또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들 내가 잊고 내가 잊혀 진 사람들이 술잔에 떠다녀

그리워하기 좋은 계절에 사진으로나마 더듬어 보기로 한다.

















천천히 업그레이드 합니다.(천 여장이 넘는 사진들 속에서  찾기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