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마을의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하였다.
원배의 귀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십 수 명의 인원이었다.
캄캄한 밤에 불도 켜지 않고 이동하는 것을 보면 분명 정상적인 일은 아닌 것이 분명 하였다.
“웬 놈들이냐?”
원배가 호통을 쳤다.
산적들은 갑작스러운 호통에 순간 당황하였다.
자기들도 모르게 모두 칼을 빼들었다.
칼을 빼는 소리와 함께 살기를 느낀 원배가 먼저 움직였다.
앞으로 두 발짝을 뛰며 왼쪽 하단에서 우측 상단으로 비스듬히 세법을 구사하였다.
뭉클하고 살이 베어지는 느낌이 났다.
산적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원배는 이어서 너 댓 발을 앞으로 뛰면서 상단으로 칼을 쳐들고 인기척을 향하여 격 법을 구사할 준비를 하였다.
격 법을 방어하는 길은 세 가지가 있었다.
상대에게 돌진하면서 자 법을 구사하는 길이 첫째였다.
단 이 방법은 적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가 있지만 이어지는 적의 가격에 무방비가 되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상처를 입을 작정을 해야만 했다.
두 번째 방법은 자 법 인양 눈속임을 하면서 내려치는 상대의 칼을 자신의 칼로 무력화 시킨 다음에 공격을 가하는 방법이었다.
세 번째 방법은 그냥 도망치는 것이었다.
원배의 동작을 본 산적은 두 번째 방법을 써 먹을 작정이었지만 동료의 비명소리를 듣고는 마음을 바꾸었다.
도망치려고 한 걸음을 뒤로 빼었다.
그 순간 원배의 가격이 머리에 가해졌다.
신음소리 하나 뱉지 못하고 두 번째 산적이 쓰러졌다.
세 번째 산적이 칼로 원배를 내려쳤지만 원배가 가볍게 상대의 칼을 제치면서 목에 자 법을 가하였다.
이번에도 비명소리 하나 지르지 못하고 산적이 쓰러졌다.
 자기들 동료 세 명이 순식간에 쓰러지는 것을 본 산적하나가 혼이 반쯤 나가 소리를 질렀다.
“야 야별초다.”
야별초란 소리에 산적들이 우르르 도망을 쳤다.
원배는 반사적으로 산적들을 쫒았다.
“아아 그 때 냉정하게 쫒지를 않았어야했는데.”
뒤 쫒는 원배에게 화살 두 개가 날아왔다.
도망치던 산적의 궁수 한명이 원배 쪽을 향하여 화살을 날린 것이었다.
화살 하나가 원배의 허벅지에 박히었다.
화살을 날린 산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쳐 버렸다.

그 날의 부상으로 원배는 재작년의 야별초 시험을 포기해야만 했다.
박 상도와 두령들은 젊은 패들을 제대로 단속 못한 것을 땅을 치고 후회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 뒤로 도덕 봉의 산적들은 화산을 포위한 진잠 현의 관군과 도둑 굴을 들이친 유성현의 관군들에게 보름에 걸쳐 모두 토벌되고야 말았다.

허벅지의 상처는 이제 깨끗이 나았다.
내년의 야별초 시험에 대비하기 위하여 원배는 체력과 담력을 쌓는 중이었다.
병사 골 능선에서 원배는 장군봉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군봉 옆으로 학봉과 사봉의 풍경이 내려다 보였다.
샛노랗게 물든 논이 펼쳐졌고 논 가장자리 산비탈에 초가집들이 큰 버섯마냥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그러나 원배는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평화로운 풍경 속에 배어 있는 인간들의 삶의 애환을 어떻게 눈으로만 볼 것인가?

장군봉을 지나 다시 능선 길로 접어들었다.
멀리 앞쪽에 뾰족하게 솟은 삼불 봉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걸음을 재촉했다.
정오가 바로 지난 무렵에 청량 암에 닿았다.
남매 탑이 우선 원배를 반겨주었다.
탑을 향하여 합장을 하고 난 후 청량 암으로 들어섰다.
향원스님이 원배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바가지로 부엌에서 물을 한바가지 떠서 주었다.
벌컥 벌컥 찬 물을 맛있게 들이켰다.
힘든 산길의 피로가 단번에 풀리는 기분이었다.
청량 암에서 점심을 먹었다.
원배에게 청량 암은 자기 집과 같은 존재였다.

신라가 망한 후 서라벌에서 쫓겨난 신라 유민 중 검술의 달인과 창술의 달인이 있었다.
검술의 달인은 갑사에 정착하고, 창술의 달인은 동학사에 정착하였다.
이 후로 갑사에서는 검법이, 동학사에서는 창법이 대대로 전수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원배는 오전에 갑사에 가서 검법을 연마하였다.
이어서 청량 암에 들러 점심을 먹은 후에는 오후에 동학사에서 창법을 연마하였다.
십여 년을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련을 하였다.

타고난 자질에다 피나는 수련이 더해져 공주 목 일대에서는 무술로써 원배를 당할 자가 없었다.
원배는 골격으로 보나 재능으로 보나 앞으로 순기가 자라면 자기의 좋은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하였다.

삼불 봉을 돌아서 능선을 따라 관음 봉 쪽으로 향했다.
멀리 왼쪽에 쌀개봉과 천황 봉이 보이고 그 밑에 동학사 계곡이 고요히 자태를 숨기고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갑사계곡과 그 너머의 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계룡산의 몇몇 봉우리를 빼고는 주변의 모든 산봉우리들이 발밑에 있었다.
 “열심히 실력을 닦아 앞으로 장군이 되어 저 봉우리들처럼 많은 부하들을 지휘하리라. 그리고 고려를 탄탄대로의 반석에 올려놓으리라.”

관음봉 아래에 닿았다.
 정상으로는 올라가지 않고 봉우리의 어깨부분을 조심스레 가로질렀다.
수 억 년 간 서 있었을 봉우리를 위하여 어깨를 주물러드린다는 심정이었다.

쌀개 봉 능선으로 향했다.
길이 험하여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야했다.
바위에 올라 잠시 쉬었다.
뒤를 돌아보니 오른쪽으로 지금까지 지나온 길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문필봉과 연천봉이 보였다.
두 봉우리에 목례를 하고 방향을 돌렸다.
통천 문에 다다랐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동학사 계곡은 이미 어두운 심연에 잠겨가고 있었다.
오늘밤은 천황 봉 밑의 암굴에서 지내기로 작정하였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길을 서둘러야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