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를 하고 나서 승우가 말하였다.

 “어째 병만이 얼굴이 많이 빠졌는데?” 

 그 말을 듣고 병만은 실망과 함께 걱정에 휩싸였다.

오늘은 네 친구가 부부동반으로 모이는 날이었다. 

병만은 아침에 샤워를 하였다. 

샤워는 적어도 이틀에 한 번꼴로는 해야 한다는 딸애의 의견을 무시하고 병만은 사흘에 한 번 꼴로 샤워를 한다.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닷 세 만에 샤워를 하기도 했다. 

병만은 어디선가 너무 자주 목욕을 하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된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 글 때문은 아닐 것이다. 

원래 병만은 게으르고 나태한 성격이다. 

시골에 살던 병만은 어릴 때 추석 전에 냇가에서 한번 씻은 후에는 온 겨울 내내 안 씻고 있다가 봄이 되어 학교에서 신체검사를 예고하면 부랴부랴 냇가에 가서 예방주사를 맞을 팔뚝만 대충 씻고는 했었다. 

고등학교 때였던가? 

앞의 친구가 코를 막고는 “야, 어디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 고 말하였다. 

냄새의 근원은 병만 이었다. 그 때 병만은 일주일도 넘게 머리를 감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시차를 조절해서 오늘 아침에 샤워를 하도록 타이밍을 맞추었다. 

사흘 전에는 이발도 했다. 

보름정도 더 있다가 이발을 해도 상관없겠지만 오늘은 부부동반의 모임이 아닌가? 

최상의 몸 상태로 모임에 참석하고자 했다. 

아침에 거울을 보니 훤하게 밝은 사내의 모습이 그 안에 있었다. 

“야, 병만이 얼굴이 많이 좋아졌구나.”하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았다. 

그런데 승우가 그런 말을 하다니.

병만은 아침마다 일지권을 단련한다. 

험한 세상에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목숨이 위험한 순간에만 사용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평생에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수행을 하지만 그래도 수행을 하면서 마음만은 든든하다. 

오늘 아침에도 신체를 단련했다. 

단련이 끝나는 순간에는 항우에게라도 맞대응할 수 있겠다는 자만심이 들 정도로 기운이 넘친다. 

친구들과 악수를 하는 순간에도 그 기운은 넘치고 있었다. 

그런데 승우가 한 마디 말을 하자마자 그 기운이 어디론가 쑥 들어갔다. 

급하게 피곤이 밀려왔다. 

그 탓인지 요즈음 평상시에도 자주 피곤을 느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나이 탓이려니 여겼다. 

이 나이에 기운이 펄펄 넘친다면 그 힘을 어디에 쓸 것인가? 

도무지 쓸데가 없다. 공연히 사고나 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저 적당히 피곤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이 최상이라고 다짐하고 있었다.

병만은 현재 어금니가 4개 빠진 상태였다. 

임플란트 시술을 받는 중이었다. 

이빨이 빠진 상태이기 때문에 얼굴이 빠져보일지도 모른다고 위안을 삼았다. 

그러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몇 달 전의 바둑 모임에서였다. 

“얼굴이 많이 빠지셨네요?” 

친구가 기원원장에게 인사차로 말을 건넸다. 

“예, 임플란트 치료중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보일 겁니다.” 

원장이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하였다. 

병만 이네는 한 달에 두 번씩 두 번째 화요일과 네 번째 화요일에 기원에서 모임을 갖는다. 

바둑을 두고 나서는 저녁을 함께하고 술을 마신다. 

모임의 주목적은 바둑을 두는 것이지만 그것보다는 아마도 술을 먹는 것에 더욱 집착을 하는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술을 같이 마시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 기원에 다음 달에 갔을 때에는 원장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그 달을 넘겼다. 

그리고 그 다음 달에 충격적인 답을 들었다. 

임시로 원장을 맡은 사람이 이야기 해주었다. 

전의 원장님이 대장암으로 세상을 뜨셨다고. 

전의 원장은 풍채가 아주 좋았다. 

얼굴도 혈색이 돌고 온화하였다. 

바둑실력도 좋아서 고교 동문 바둑대회에도 대표로 나가서 활약하는 장면이 크게 사진으로 찍혀서 기원 벽에 걸려있다. 

그런 양반이 이렇게 졸지에 유명을 달리하셨다니. 

기원의 전 원장은 무슨 신념에서인지 그동안 건강검진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하였다.

병만이의 어금니가 빠진 것은 꽤 오래전이었다. 

처음에는 어금니가 2개가 빠졌다. 

그 때에 바로 임플란트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 때는 임플란트 값이 지금보다 훨씬 더 비쌀 때였다. 

의사가 브리지 시술을 권했다. 

빠진 이의 양 옆의 이를 지지대로 삼아 크라운을 씌우는 시술이었다. 

가운데에 두 개나 이가 빠졌기 때문에 조심해서 사용해야 했지만 별 탈 없이 2년 이 지나갔다. 

그런데 말썽이 생겼다. 

지지대를 삼은 가장 끝의 어금니 옆의 잇몸이 붓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었다. 

평상시에는 별로 붓지 않다가도 피곤하면 많이 부풀어 올랐다.

 전에도 한번 잇몸이 부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나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붓는 것이 정도가 점점 심해졌다. 

할 수없이 치과에 가서 잇몸을 치료하였다. 

의사의 말에 병만은 풀이 죽었다. 

지금 치료해도 일시적으로는 버틸 수 있지만 또 다시 재발할 경우에는 이를 빼야한다고 말하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이를 빼게 되면 어금니 3개가 나란히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병만은 걱정을 하면서 제발 잇몸이 다시 붓지 않게 되기를 신에게 빌면서 양치질도 정성껏 하고 조심조심 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잇몸병은 다시 재발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그냥 붓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제법 아프기까지 했다. 

병만은 잇몸이 그냥 낫기를 기원하면서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았다. 

그러나 잇몸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파왔다. 

할 수 없이 병원을 찾았다. 

미련 없이 맨 끝의 어금니를 뽑았다. 

앓던 이를 뽑는다는 말이 있듯이 일단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병만은 빠진 어금니 3개에 임플란트 시술을 하기로 작정했다. 

다행히 두 개까지는 보험으로 싸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시술을 하는데 거의 9개월이 소요된다고 하였다. 

눈앞이 캄캄하였다. 9개월 동안 왼쪽으로만 음식을 씹어야한다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