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저녁이었다. 

다섯 평의 공간이 온 우주처럼 넓어보였다. 열 개의 좌석이 모두 텅 빈 채였다.

식당 안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타들어가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몸을 움직여야만했다. 

 청소를 하고 또 청소를 했다. 

완전군장을 하고 400km 행군을 했을 때만큼 몸이 괴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가 차라리 그리웠다.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또 있을까? 

마음을 비워야하나, 아니면 신을 부르짖어야하나?

식당 문을 열어두었다. 

차가운 바람이 밀려왔다. 

그 정도 차가움은 충분히 참을 만 했다. 

사람들이 띄엄띄엄 지나가고 있었다. 

제발 단체손님들이 우르르 밀려들어왔으면. 아니 단 한 명이라도 손님이 들어왔으면.

식당을 처음 개업했을 때는 손님들이 제법 모여들었었다. 

일을 시작하기를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닥치고 부터는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계속 바깥을 내다보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계속 쳐다본다고 해서 손님들이 들어온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쳐다볼 용의가 있다. 

저절로 고개가 바닥으로 숙여졌다. 

바닥에는 물청소를 한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청소 자국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그 위에 세계지도가 겹쳐보였다. 

보스포루스해협을 지나 흑해가 보이고, 크림반도가 보이고, 우크라이나가 보였다.

얼마 전 모임에서 K형은 우크라이나에 의용군으로 참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은 기원전처럼 서로 다른 나라를 침략해 약탈하고 포로를 붙잡아 노예로 팔아먹든 그건 시대가 아니다. 

또한 식민지를 지배하며 자기나라의 부를 축적하는 그런 시대도 아니다. 

세계는 이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전쟁에 대한 피해를 뼈저리게 느꼈고, 그로인하여 세계의 국가라 할 수 있는 UN이 창설돼있는 시대이다. 

지금은 남의 나라를 침략하여 이득을 취하려고 하기 보다는 서로 절제력을 발휘하고 기술을 개발하여 인류의 긴 생존을 모색해야하는 때이다. 

지금 시대에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온 인류가 멸종되는 사태를 가져올 수 위험한 일이다. 어찌 두고만 볼 수 있는가? 자기의 미약한 힘이나마 침략자에게 따끔한 경고를 하고 싶다고 했다. 

동생인 L과 나의 동참을 권유했다.

다혈질인 L은 즉시 동의했다. 

“형님이 가신다면 저도 가겠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맡겨만 주십시오. 즉시 거행하겠습니다.” 

L은 매사에 시원시원했다. 

우리 셋 중에서 체격이 가장 좋고 힘도 좋았다.

나는 망설였다. 

나라들의 관계는 아직도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닌가? 

힘이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의 침략을 불러들일 수 있다. 

그러니까 평상시에 힘을 길러두어야 한다. 

게으르게 힘을 기르고 있지 않다가 남에게 도움만을 청하는 것은 너무 불공평한 처사가 아닌가? 

힘을 기르려면 그만큼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힘든 훈련에 매진하고,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참고 돈을 절약하여 무기를 마련해 놓아야한다. 

무엇보다도 나를 망설이게 한 것은 아직 우리나라가 참전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참전만 했다면 나는 기분 좋게 병사에 지원했을 것이다. 

아직은 참전은 고사하고 그 나라에 입국하는 것도 불법이라고 막아놓은 상태였다. 

나는 결국 K형의 의견에 반대했다.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행군의 절반에도 이르지 않았는데 벌써 체력이 고갈되었다. 

특수부대원들 모두가 산비탈에 들어 누웠다. 

어디선가 짙은 향기가 풍겨왔다. 

어릴 때 산 밑에서 자란 나이기에 무슨 냄새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더덕 냄새였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만치에 더덕넝쿨이 보였다. 

야전삽을 꺼내어 더덕을 캐었다. 

더덕 몇 뿌리를 캐고 보니 근처 숲속에 산딸기가 담뿍 익어 있는 것이 눈에 띠었다. 

산딸기도 몇 움큼 땄다. 더덕과 산딸기를 먹으면서 대원들의 원기가 상당히 회복되었다.

행군의 절반이 지나면서 또 다시 대원들의 체력이 바닥나버렸다. 

모두들 포기하자고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대장인 K소위가 한사코 만류시켰다. 

행군은 체력이 아니고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이라고 누누이 설득했다.

행군의 막바지에서는 K소위마저 쓰러질 지경이었다. 

정신력도 한계에 다다른 것이었다. 

체력이 좋은 L이 K형의 소총을 대신 들었다.

식당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정리할 것도 없다. 오늘은 한 팀의 손님밖에 없었다. 

한 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의자들을 탁자 밑으로 집어넣고는 문을 걸고 밖으로 나왔다.

저녁때가 지났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러나 좌절감으로 가득 찬 막막한 가슴을 안고는 도저히 그냥 집으로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술이라도 한잔 해야지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포장마차의 휘장을 걷고 들어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