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시간에 딸 민희가 엄마 방으로 왔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굴이 많이 부어 있었다. 그런 자식의 얼굴을 보는 최선애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우리 딸, 일찍 일어났네. 잘 잤어?”

“엄마도 굿모닝!”

딸은 밝게 보이려는 듯 했다. 그래서 그녀는 더 불안했다.

“나 엄마 옆에 누워 있으려고 일찍 일어났어.”

민희는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지으며 엄마의 침대로 기어들더니 엄마를 꼭 안았다. 그런 딸을 바라보는 엄마는 그녀의 행동이 싫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더욱 불안해져 갔다. 한참을 엄마에게 붙어 있던 민희가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딸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도 딸을 꼭 끌어안았다.

“나는 엄마가 꼭 행복하기를 바라. 꼭 하시모토상과 결혼해야해.”

엄마의 품속으로 자꾸만 파고들면서 민희는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는 딸이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사실을, 품을 파고드는 그녀에게서 느꼈다.

“엄마는 우리 딸이 일본에 같이 가지 않으면 그 사람과 결혼 안 해.”

등을 쓰다듬으며 말하는 엄마의 손길을 느끼며 가만히 있던 민희는 말했다.

“엄마가 그 사람과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게 될 거잖아. 그럼 엄마, 우리 자식들은 세 조각이 된다. 나는 살면서 대한이와 나 이렇게 두 조각도 힘들었어. 세 조각은 엄마도 나도 대한이도 힘들어. 그래서 같이 안 가려는 거야. 나는 그냥 한국에 있게 해줘, 엄마!”

딸의 말에 그녀는 가슴이 미어져 터져버렸다. 비록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삶의 방식이었지만, 그 선택으로 자식들을 헐벗게 키우지 않고 잘 버텨냈다고 스스로 위안을 하며 지낸 세월이건만, 그 삶의 방식을 견뎌내는 자식들에게는 몹시도 버거운 삶이었던 것이다. 딸 민희가 그동안 내색을 하지 않고 살아내느라 얼마나 힘겨웠으면 저런 말을 할까! 숨이 컥컥 막히는 아픔으로 그녀는 딸을 안고 펑펑 울었다.

“미안해! 모두 엄마 잘못이야.”

“엄마가 우리들 데리고 살기 힘들어서 그런 거 나도 알아. 엄마 잘못 아닌 거 알아서 나 그동안 엄마한테 내색하지 않고, 엇나가지도 않고, 어른들 말 잘 들으며 살았잖아. 엄마. 나 나쁜 딸 아니었지?”

“그럼, 우리 딸이 얼마나 착하고 예쁜데.”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모녀는 한참을 이불속에 누워있었다.

언론이 또다시 떠들썩해졌다. 일본에서 총리대신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한 것이다. 십 수 년 전에도 다른 총리가 참배를 한 적이 있으나 그 당시에 그는 개인 자격으로 참배한 것으로 주장해서 이 문제가 크게 번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의도성을 가진 행위였기에 주변국들을 자극했다. 그곳이 가지는 상징성은 일본에 있는 수많은 신사들과는 크게 달랐다. 전범들이 합사된 그곳을 성역화하고 정치인들이 참배를 하거나 공물을 봉납하는 행위는 일본에 의해 자행되었던 침략 전쟁으로 아직도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주변국들을 업수이 여기고 지난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격이었다.

거실에 앉아 뉴스를 보던 중 설민국의 팔이 움찔했다. 그런 그를 돌아다보며 최선미는 살그머니 그의 팔에 팔짱을 꼈다. 일본 정치인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국내의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며, 그의 마음이 요동치고 있음을 그녀가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미안한 듯 그녀를 보며 그녀의 팔에 손을 얹었다.

“야스쿠니가 점점 더 일본 우익들에게 상징화 되고 있어.”

“응! 본래 일본의 신사가 가지는 순기능을 많이 상실했어. 역시 그곳에 전범을 합사한 것이 문제야. 그래서 전범들을 우상으로 떠받드는 우익의 심장이 되어 버렸네.”

“저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우익들이 여론을 주도하고, 그 여론에 편승해서 정치적인 입지를 얻으려는 정치인들의 욕망이 일본인들의 정서를 왜곡시키고 있는 거 같아.”

“말없는 다수가 가지는 문제지. 정치에 철저하게 무관심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감추니까 여론이 왜곡되고 저런 소신 없는 하급 정치인들이 득세를 하는 거야.”

“우리가 점점 우경화되고 과거 일본 제국주의를 그리워하고 부활시키려는 일본 우익들의 시도를 멈추게 할 방법이 없는 것도 문제야.”
“맞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네. 겨우 외교부 성명이나, 일본대사 초치로 항의하는 정도니 일본이 무서워할게 하나도 없어.”

“가끔 북쪽에서도 일본을 비난하는 뉴스가 나오던데, 스위치 오작동으로 야스쿠니에 대포 한 방 안 날려지나?”

“큰일 날 소리! 미국은 한국보다 일본이 우선이야. 늘 일본을 항상 감싸고도는데, 그러다 북쪽도 쑥대밭 되지. 외교적인 해결 방법도 없고, 일본인들이 스스로 통제할 능력도 안보이고. 이웃을 잘못 만난 죄라고 해야 하나.”

“맞아.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도 이웃을 잘못만난 탓이지. 우리나라도 못난 이웃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이 참 많다.”

가치관이 같은 부부의 대화는 늘 풍성하고 조화로워서 서로의 애정을 돈독하게 만들었다.

설민국은 다음날 이재길변호사를 찾았다.

“의장님! 보고 드리고 조언을 얻고 싶은 일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그는 이재길을 예전과 다르게 대했다. 조직의 우두머리로 그를 대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다.

“서로 모르던 사이도 아니고, 너무 딱딱하게 대하지 마세요. 부인도 건강하시죠?”

“감사합니다. 다른 단장들은 자주 연락이 오나요?”

“다들 생업이 있으니 자주 연락하지는 않고 간간이 소식을 전해주네요. 단원들과 앞으로 수행 할 과업을 협의하고 있는 수준들입니다. 설단장이 내게 듣고 싶은 말이 뭐죠?”

“예, 아직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로 과업 목표를 정하고 싶습니다.”

“그곳이 가지는 의미가 대단히 크죠. 일본 자국과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중국과 동남아까지 그곳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해요. 그만큼 과업에 대한 여러 가지의 접근 방법이 있겠네요.”

“제가 과업을 정하려면 그곳에 대한 자료와 공부가 필요합니다. 목표만 정한 수준이라서 아무것도 구체화 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들이 1~2년 안에 할 일들은 아니죠. 수십 년이 걸릴 일도 있고, 아예 실행하지 못할 과업도 있을 수 있어요. 차분하게 준비하고 계획해봅시다. 내 생각에는 야스쿠니 신사를 타겟으로 삼은 것은 좋아 보여요. 역사적인 부분을 연구하든, 저들의 의식에 관한 사상적인 부분을 연구하든, 일본 우익들의 행동에 대한 연구를 하든, 다양한 접근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곳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필요할 테니, 내가 얻을 수 있는 자료들을 모아서 단장님께 전달해 드리죠.”

“제가 의장님을 찾아뵙고 얻고 싶었던 것들을 모두 답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열의를 보여주셔서 제가 단장님께 더 고맙네요. 우리 잘해봅시다.”

최선애는 동생 부부를 같이 식사를 하자고 집으로 불렀다.

한동안 만나지 못해서 얼굴도 볼 겸, 자신의 신변에 일어난 일들도 말해줘야 했다.

“너희 아직 2세 소식은 없어?”

“언니,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할 거야.”

“너희들 나이가 있잖아. 지금 가져도 이른 거 아니거든.”

“아냐, 우리의 신혼은 아직도 멀었어!”

“어이구! 철부지인지 욕심쟁이인지.”

자매는 애정 가득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 사이에 설민국은 강대한과 거실에서 말없이 TV로 스포츠 중계를 보고 있었다. 그동안 서로 대화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두 사람은 약간 서먹했다. 그가 무슨 말이라도 꺼내 보려고 고민하고 있는 중에 강대한이 말을 꺼냈다.

“이모부, 우리 일본으로 가서 살 거 같아요.”

불쑥 건네는 처조카의 말을 그는 잠시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대한이 일본으로 여행가고 싶구나.”

“아니요, 여행이 아니고 이민요.”

그제야 그는 강대한의 말뜻을 이해했다.

“엄마랑 하시모토상이 많이 가까워졌구나. 일본에 가는 거 좋아?”

“아직 잘 모르겠지만, 한국보다는 좋을 거 같아요.”

“무엇이 기대되는데?”

“하시모토상의 집이 부자래요. 그럼 엄마가 고생을 덜 하잖아요.”

설민국은 그의 상체를 당겨서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 어린 조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 안타깝고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