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마치고 야학에 갔습니다.

내가 할 수업은 9시 넘어 있었지만 그날은 너무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회사를 마치자 말자 바로 가게 되었습니다.

야학 입구에 들어서니 얼마전 결혼한 선생님이 보입니다.

선생님께 다가서면서 보니 떡상자와 수박을 내리고 있습니다.

인사를 했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선지 못보네요.

그래서 교무실에서 다시 인사를 해야했습니다.

저녁에 떡과 수박을 먹게 되었으니 먹을 복이 있다고 해야겠지만

아침을 컵라면으로 점심을 김밥과 라면, 떡볶이로 먹은 탓에

저녁은 왠만하면 야학에서 같이 먹을 사람을 구해서 좀 차려진 것을

먹고 싶었는데 떡과 수박으로 떼우게 된 것이었습니다.

야학에 꼬맹이가 하나 있습니다. 초등학교 4-5학년정도인데

수업 듣는 고모를 따라왔다가 학교에서 노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수업도 들어가고 했는데 수업에 방해도 되고 수업에 재미도 없어해서

그냥 교무실과 컴퓨터실을 오가며 야학선생님들과도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지냅니다.

그런데 애가 바둑을 두네요. 그래서 관심있게 봤습니다.

"선생님, 제발 바둑 한판만 둬주세요"하면서 바둑을 못두는 선생님을 졸라

바둑을 두는 것이었습니다. 보다보니 한마디로 입이 딱벌어지는

관경이었습니다.

'자살수' 어릴때 그렇게 불렀는데.

바둑을 조금만 둘 줄 알게 되어도 두지 않는 수인데 말입니다.

갇힌 돌에 상대가 한수만 놓으면 죽는 상황에서 그 수를 스스로 두고 있습니다.

바둑룰에는 착수가 불가능한 수일텐데...

하두 오랜만에 그렇게 두는 것을 보니 착점이 가능한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더 놀란 것은 그렇게 두고 모른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수를 놓고 그다음수로 상대방 돌을 따낼려고 가만히 있는 음흉함을 보이는 것입니다.

구경꾼인 내가 "야^^ 자살수네~"하면서

바둑에 문외한인 선생님의 편을 들어 그돌들을 들어냈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바둑을 보다가 관심은 바둑판에서 멀어지고 예전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따먹기하던 바둑이 기억나십니까?

포석도 모르고 행마도 모르고 그냥 이길라고 따먹기만 하던 바둑을 두던 시절말입니다.

규칙도 모르는 탓에 축인데도 계속나가고 자기집도 스스로 메우고

죽은돌에 돌을 보태기도 하던 처음 바둑을 배우던 시절말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수이지만 그 바둑을 보니 정말 까마득한 초보시절이

나도 저렇게 바둑을 두었는데 하는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