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 (敗北)가 넘어야 할 에레보스(Erebus) 다섯개의 강

                                                                     저니

어느 바둑 대국에서던 승자에겐 승리의 환호와 스포트라이트가 따르고 패자에겐

고통스러움이 역력한 한 장의 기억이 남는다. 승리의 달콤함 뒤에는 얼마나 많은

패국의 고통이 쌓여 있을까? 패배도 카드처럼 마일리지가 쌓여 훗날 승리하는 대

국을 이끌 수 있는 것일까?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에레보스라는 암흑의 공간이 있다. 이 암흑의 공간에 이

승과 저승을 갈라놓은 다섯 개의 강이 있다고 한다. 그 첫 번째 흐르는 강은

아케론 (Acheron) 이다. 슬픔의 강으로 불리는 이 강은 바둑에 있어서는 승리를

얻지 못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첫 번째 고통이다. 이 아케론에는 카론(Charon)이

라는 뱃사공이 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동전 하나를 받는다. 슬픔은 동전 하나

로 지울 수 있다. 산 자에게 별거 아닌 동전 한 닢이 망자에겐 죽음을 동반한 동

전 하나이기에 엄청난 대가가 아닐 수 없다. 관전자에게 단순한 동전 같이 

받아들이는 승패의 결과는 패자가 건너는 슬픔의 강에 동승하기 어렵게 한다.

두 번째 강은 코퀴토스(Cocytos,Cocytus)라는 비탄과 통곡의 강이다. 첫 번째 강

에서 슬픔을 버렸지만 저승을 인식하고 느끼는 두려움과 시름을 갖게 한다.

바둑의 승부의 결과를 슬픔과 증오를 버렸다고 해도 그 결과가 가져온 자신감의

손상은 두려움이 되는 것과 같지 않을까? 과거 10년 전에 이창호 국수를 바라보

던 중국의 기사들은 이 코퀴토스 앞에서 좌절했을 것이다. 

이런 자신감의 상실은 패자에겐 도피처를 찾아 방황하게 한다. 나를 이기기만

하는 상대를 보고 어찌 통곡하지 않고 비탄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왜 하늘

은 나를 낳고 이 창호를 보내주셨단 말입니까?” 라고……

세 번째 강은 플레게톤 (Phlegethon)이라 불리는 불길의 강이다. 죽은 영혼들에

게 폭포처럼 이글거리는 불덩이에 자신의 혼을 태워 시름을 정화해주고 마음에

평화를 준다. 코퀴토스를 넘어선 패자에겐 평화가 찾아 오는 것은 승부를 피하거

나 포기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승부의 결과에 대한 평정이다. 명상(冥想)을 통

해 자신의 내면과 자아에 집중해서 몸과 마음에 조화로운 상태로 이끌어 평상을

찾는다 하더라도 화마의 흔적처럼 패국의 흔적은 남아 있다

네 번째 강은 혐오(嫌惡)스럽다는 뜻을 가진 증오의 강 스틱스 (Styx) 이다.

저승을 일곱 바퀴 돌아 흐르는 강이며 스틱스라는 여신이 올림프스의 신들과

티탄신족과의 싸움을 도운 대가로 모든 맹세는 신 조차도 그 강에서 흘러온

물을 떠놓고 이루어졌다. 새로운 승부에 대한 도전과 그것에 대한 선언과도 같은

스틱스의 맹세는 건너고 싶지 않은 증오이다. 타인 앞에서 보여지는 선언이라면

더더욱 피하고 싶거나 공포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선언은 미래를 그리는 표현이

고 스스로를 자극하는 명령어이다. 이세돌 사범은 과거 언론매체에서 공공연히

세계최강 이창호국수에 대해 반드시 이기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그의 선언이고 선언 없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섯 번째 강은 망각(忘却)의 강 레테(lethe)이다. 이 강물을 마시면 과거의

모든 기억을 지우고 전생의 번뇌를 잊고 새로운 영혼으로 태어나게 된다. 완벽한

망각은 죽음 같은 것이다. 

하지만 승부라면 마음을 비우는 과정일 것이다. 새로운 각오를 새웠으니 평온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물론 지난 패배의 슬픔과 두려움

은 비워야 하겠지만,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선언과 각오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다섯 개의 강을 건너도 끝이 아니다. 

오른 쪽으로 가면 낙원 엘리시온(Elysion)이 나오고 왼쪽으로 가면 지옥

타르타로스(Tartarus) 가 나온다. 바둑의 또 다른 승부의 결과가 승자와 패자가

갈리듯 말이다.

우린 매일 에레보스(Erebus)의 암흑 공간을 넘나든다. 

그렇게 승부의 블랙박스로 향하는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에레보스(Erebus) 넘어 

                                              저니

승부의 블랙박스 에레보스 (Erebus).

난, 동전 하나 없이 카론(Charon)에게 끝나지 않는 승부를 보여 달라고 한다.

적막보다 슬픈 아케론(Acheron) 의 통곡을 외면하고 승리의 환호를 달라고 한다.

고개를 떨군 패자에게 레테(lethe)의 물 한잔 권한 적 있던가? 

그에게 다가가 플레게톤(Phlegethon)의 불같은 응원으로 손을 잡은 적 있었던가?

그대여 이제 코퀴토스(Cocytos)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패자가 있다면,

손을 잡고 미로의 스틱스(Styx) 의 강을 건너자!

다시 에레보스(Erebus)의 땅을 밟는다 하여도 

그가 엘리시온(Elysion)을 맛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