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으로 본 얽히고 설킨 이판사판 바둑판

                                                                                                               저니

사람들과의 관계나 조직내의 바람직한 관계는 상호 욕구가 충족되는 Win-Win의 관계이다.

이와는 달리 바둑판에서는 일시적인 타협은 존재하더라도 호선 바둑에서 Win-Win은 존재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의 돌을 죽일 듯 생사를 넘나들며 결판을 내는

바둑이 인간관계를 맺는 탁월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프로이드시대의 정신분석학에서 보는 것처럼 본능과 충동 그리고 성적욕망과 공격성을

표출하기 위해 바둑을 둔다고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현대 정신 분석학자들이 골

아프게 연구하고 있는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망, 즉 대상관계의 패턴으로 생각해 보았다.

여기서 대상관계라는 것이 실제적인 관계와는 구별이 되지만, 바둑이라는 매개 또한

실제적인 관계라기 보다는 자신의 성격 특성을 표현하고 주요 상대와 환경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통해 그 바둑 실력의 향상은 물론 정신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에 몇가지 법칙으로

비추어 보는 것도 의미 있다.

<생존방식 보존의 법칙>

학생의 경우 학년이 올라가는 것은 큰 두려움이 없이 받아들이는데 중학교 또는 고등

학교로 생활집단 바뀌면 심리적 동요가 크다. 경우에 따라서는 학교를 안 가겠다고 이유

없는 반항을 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학교에 자신만의 생활방식을 잘 적응시키지 못한

경우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살아온 방식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직장에서도 그 기분을

유지 하지 못하면 성질을 다스리지 못하고 사표를 아낌없이 던지는 이유가 된다.  그것처럼

바둑을 두다 보면, 나의 대마 옆구리와 허벅지를 몰인정하게 찔러대는 상대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상황을 피한다면 나의 대마의 삶은 어찌 되겠는가?

나의 허접스러운 대마를 보존하고 싶다. 치중하고 웃지 마라. 바둑판 엎는 수 있다.

<초심불변의 법칙 >

대국자 마음 속에 실리이던 세력이던 초반 포석에서 형성된 고유한 형태를 유지하려는

속성이 있다. 그것을 상호 깨지 않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되면 큰 다툼 없이 형태가 결정되어

심리적으로 평온하지만,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고자 침투와

삭감을 해온다면 관계는 파괴된다.

각종 속임수와 악수가 난무하고 그리고 자기 세력에 대한 무한 신뢰와 상대 집에 대한

무한한 노림은 바둑판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애초에 바둑돌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바둑을 질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 초심은 돌을

던지고 항서를 쓸 때까지 불변이다.

내 세력 근처에서 성질 건드리지 마라! 흑 눈깔에 먹물을 쪽 빼서 백김치 만들 터이니……

<네거티브 스타트의 법칙>

사람도 첫 만남에서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낙인 찍으면 그 인상을 바꾸는데 40시간

동안의 지속적인 접촉이 필요하다고 한다. 상대의 수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온순하게 두고

싶지 않고 응수를 비튼다. 저 수의 저의가 모냐를 놓고 아까운 시간을 쏟아 붙는다. 두 집

이 나지 않은 모든 대마는 곤마이고 상대의 집은 나의 묘수 퍼레이드를 환영하는 멍석이다.

그저 상대가 세력이고 집이라고 우길 뿐이다. 이런 부정적인 시각에서의 출발은 어이없는

착각을 만들기도 하지만, 국면 반전을 가져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패가 난 대마가 반은 살았다고?? 쌍립도 반은 끊어진 거다.

<상대성의 법칙>

요다 노리모토 9단에 조훈현 사범과의 대국에서 귀마개를 하고 나온 일화나 조훈현 사범

에게 흉내바둑을 두어 타이틀을 쟁취한 서봉수 사범의 일화에서 보듯 상대 생각을 뒤집어

놓아야 내속이 편하고 상대의 불편한 얼굴을 봐야 나를 방어 할 수 있다고 사고한다.

상대가 놓은 수에만 반응하지 않고 상대의 자세, 표정, 말투 등 보고 듣고 느끼는 감정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통해 반응한다. 또한 80년대 운당여관에서 조-서 대국에서 서봉수

사범이 주간지를 면전에서 들춘 일화가 있다. 대국 매너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전 대국에 조훈현 사범이 잠시 바둑 책을 보았다는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대접하는 태도 그대로 돌려주면 그만이다.

내 앞에서 다리 떨지 마라! 성냥개비 부러뜨리는 수가 있다.

<제로섬(zero sum)의 법칙 >

바둑에서 지던 이기던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생각과 경험들이 상대를 충분히 생각하게

된다. 나의 좁은 식견과 파괴적인 본능도 잦아드는 파도와 더불어 평온이 찾아 온다.

원수처럼 싸우던 조훈현 사범에 대해 무사독학 (無師獨學) 한 서봉수 사범은 말한다.

“조훈현 그는 나의 스승이었다”.

상대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하고 스스로를 개선하려는 배움의 계기를 준 스승이다.

그가 나의 대마에 시비를 걸지 않았다면, 그가 나의 생존 방식과 심성을 거슬리지

않았다면 나에겐 편하고 만만한 상대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나를 나태함 속에 머무르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관계는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이다.

빈 바둑판에서 생긴 관계가 다시 빈 바둑판이 되었다.

이처럼 바둑은 관계를 형성하고 심리 내적인 구조(intra-psychic structure)는

상대의 자극에 변화하고 관계를 형성하여 서로의 주관적인 체험을 외재화

(externalization)한다.

결론적으로 바둑은 단편적인 바둑승부에서의 Win-Win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서로간의 심리내적인 조절과 발달로 억압되어 있던

무의식적인 소망의 한계를 뛰어 넘게 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