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짓기와 집 짓기
                                                                                         

                                                                                                        저니

여러 해 전에 원룸에 산 적이 있는데, 빨래거리는 세제만 부어주면 물의 양까지 세탁기가

알아서 해주었지만, 밥을 지어 먹는 일은 골치 아픈 일 중에 하나였다.

누구나 스위치를 꾹 누르면  전기 밥솥이나 압력 밥솥이 밥을 다 알아서 해주는 세상이지만,

맛있는 밥을 짓는다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이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찬에만

신경을 쓰는데 실상 주인은 반찬이 아니라 밥이다. 왕후의 찬에 미소 지으면서 걸인의 밥을

먹고 있는 현실이라고나 할까? 

 
왜 밥을 짓는다는 표현을 했을까? 콩은 삶는다고 표현하고 떡이나 고구마는 찐다는 표현을

한다. 삶는 것은 물에 넣고 끓이는 것이고 찌는 것은 뜨거운 김을 쐬게 하여 익히는 방법이다.

이와 달리 짓는 것은 밥솥 밑에 물이 증발하여 밥이 약간 눌어붙어 단당류 탄소화물(누룽지)이

되어 맛을 주며 뜸이 들면서 밥알 전체에 고루 맛이 베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 어머니들의 밥솥에 물 대중과 불 대중 맞추는 시집살이는 밥맛을 따지던 문화의 산물이다.

 
이처럼 맛있는 밥짓기도 어려운 일인데 바둑에서 멋진 집을 짓는다는 것이 쉬울 이가 없다.

밥맛을 결정하는 첫 번째 조건이 좋은 쌀을 고르는 것처럼 집을 지으려면 집을 지을 터를

잘 골라야 한다. 이스라엘 가나안 땅 만큼 젖과 꿀은 흐르지 않더라도 바늘방석 같은 집터는

피해야 한다. 실력에 따라 사방팔방 뚫려 있어 집이 되기 어려운 곳이라고 하여도 제갈공명의

팔괘필진도(八掛八陣途)을 능히 펼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집터는 또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밥을 지을 때 쌀 눈이 떨어지지 않게 쌀을 씻는 기술이 필요하듯 집을 짓는

비전이 상실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내 집에만 집착해서 상대에게 오히려 세력을 내어주어

판세를 넘겨주거나 근거의 요충처럼 지킬 자리에 지키지 않아 일방적으로 쫓겨서 자신만의

바둑을 두지 못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상대의 대마는 물에 쌀을 불리듯 적당히 불리고

자신의 근거는 쌀눈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듯 지켜야 한다.
 

세 번째 조건은 뜸 들이기이다. 뜸을 들이는 과정이야 말로 집이 지어지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뜸을 들이는 순간은 불의 화력도 줄이듯 집이 지어져 가는 과정에서 완력은 금물이다.

다지어진 것 같은 집도  아차 하는 순간에 밥이 설익듯 상대의 잽 한방에 무너지기 십상이다.

뜸을 들이는 과정은 상대의 대마를 절명시킬 때도 사용한다. 마치 맹수가 마지막 숨을 조이며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기다린다.

 
마지막, 밥상에 밥이 올라가기 전에 밥주걱으로 밥을 골고루 저어주는 것을 잊어주면 밥알이

서로 밀착되어 밥맛을 잃게 된다. 판 전체를 맛사지 하며 큰 끝내기부터 작은 끝내기까지

위아래로 밥을 섞어주면 맛있는 밥을 먹게 될 것이다. 아니 멋진 집이 지어졌을 것을 것이다.

내 말을 의심한다면 형세분석을 바로 눌러보길 바란다.

그래도 안 된다면, 솥을 나무랄 수도 없고 바둑판을 엎을 수도 없으니 콩밥을 지어먹듯

검은 돌을 줄줄이 깔아 놓는 수밖에….

새해에는 맛있는 밥 그리고 멋진 집에 미소를 지으며 살아봅시다.